정신병동에 쨍 하고 해 떴다, 장률 [홍종선의 신스틸러①]
3년 전,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 전미도를 봤을 때…급의 신선함과 완성미가 주는 만족감을 안기는 발견이다. 공교롭게도 또,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고 다시 의사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눈길이 멎는, 카메라는 아직 그를 비추지 않고 있는데 자꾸만 눈이 가고 ‘줌 인’으로 당겨 보고 싶은 배우를 발견했다.
분명히 봤던 배우인데 누구더라? 검색하지 않고 생각날 때까지 계속 드라마를 봤다. 그러다 보니 촘촘히 등장하지 않는 게 아쉽고, ‘대번에 출연작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데 이토록 까다로운 캐릭터에 이 정도 큰 비중의 배역이 맡겨졌다니, 역시 이미 많은 이가 알아본 완성형 배우구나!’ 생각하며 기억의 저장소를 더듬었다.
아…앗! 허탈했다. 배우들 이목구비 잘 기억한다는 말은 이제 어디서도 할 수 없다.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 김민에게 의뢰를 맡긴 여인의 남동생, 김민(김명민 분)이 마구간처럼 생긴 허름한 곳에 묵게 된 집의 아들(최재경)로 등장했던 배우. 영화 ‘몸값part.1’에 이어 티빙 드라마 ‘몸값’에서도 아버지께 이식할 콩팥을 구매하러 온 아들, 영혼을 끌어모은 1억 원 대출로도 모자라 간과 안구를 담보 잡힌 고극렬을 연기했던 배우였다. 그 절박함이 어찌나 절절한지 효심 지극한 아들, ‘리얼’로 전해 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네임’은 말하면 입 아프다. 왼쪽 눈썹 위와 목줄기 전체에 강렬한 문신을 하고, 최무진(박희순 분)의 동천파 소속 조직원이었으나 윤지우(한소희 분)와의 체육관 격투에서 밀린 뒤 성폭행을 시도하다 쫓겨난 문제아. 이후 마약상으로 재등장하며 체육관에서 살벌한 설욕전을 펼치는 도강재! 와, 너무 무섭고 살벌해서 양아치라는 말로는 부족한, 두려움을 안긴 빌런이다.
이보다 앞서 tvN ‘비밀의 숲2’에서는 경찰구조혁신단 주임으로 여진(배두나 분)에게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듣고 보면 맞는 얘기긴 하나 참 인간미 없는 얄미운 인물이었고. 일찍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영화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건물 청소하는 박기훈 앞에 노란 스포츠카 옆자리에 기훈이 좋아하는 배우 최유라(권나라 분)를 태우고 와서 “감독님 저 기억하시죠? 저 감독님 하고 작업했던 조감독인데…”라고 말하며 약올렸던 인물이었다(‘나의 아저씨’ 관련은 네이버 지식in 참조). 지난해 호평받은 MBC 드라마 ‘금수저’ 속 비밀클럽 수장 서준태로 분한 모습은 아쉽게도 못 봤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정신병동에서 아침이 와요’에서 어떤 남자가 눈에 띄었다. 정신병원 복도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서 있다. 복장으로 보아 의사이고, 주임교수(임혁수, 김종태 분)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신참은 아니다. 아직은 대사가 없는데 정다은(박보영 분)과 주고받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아 조연 이상으로 추측된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다은을 보고 무척 의아해하고 기막혀하는 눈빛인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과거 연인이었던 건가 생각해 보는데 아련한 미련도 아니고 융기하는 ‘빡 침’과도 다른, 연인 사이는 아닌 것 같은 뺀질거림이 보인다. 이야, 저 아웅다웅 티격태격은 무엇이고, 나이를 떠나 저 남자가 다은을 향해 ‘내가 위’라고 내비치는 서열은 또 무엇인지 궁금했다(뒤에 보니 다은의 고교 시절 과외선생님이 여환).
어라, 저 배우가 누구길래 화면에서 ‘셀프 음소거’를 하고, 대사는 듣지 않고 저 남자 캐릭터만 보고 있지? 눈썹 아래까지 내려온 앞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얼굴을 확인하고 싶을 만큼 궁금했다.
이어진 다른 장면에서 목소리를 유심히 듣고, 발화하는 입 모양과 표정을 세심히 보며 범위를 좁혀 간다. 그 와중에 ‘깐족거리는 건조한 말투는 익숙지 않은데, 매력 있네!’ ‘일부러 볼륨을 낮춰 말하는 설정도 캐릭터에 딱 인데~’ 생각한다.
실토하지만 정말 한참을 보고야, 이미 명신대병원 정신과 의사 황여환의 매력에 빠지고야 알아챘다. 배우 장률이구나! 알고 나니 연기력을 요구하는 까탈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캐릭터, 천재인 듯하면서도 연애나 일상에선 바보로 보이는 황여환에 적역을 캐스팅했음이 보였다. 알고 나니 고난 연속의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간호사 민들레(이이담 분)를 향한 여환의 진심이 어서 전해지기를 내 후배 일처럼 응원한다. 어머 감성적으로 세미나 발제만 해도, 어설피 김밥만 말아도 너무 멋지다!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꾼 건 아니었지만 연극 ‘우리 읍내’ 공연을 마치고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자신을 보며 ‘연기가 내 길이구나!’ 각인했다는 배우 장률. 그인 줄 모르면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건, 대사 없는 순간에 카메라가 나를 잡든 잡지 않든 작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며 극을 풍성히 해서다. 그 장면을 입체적으로, 도톰히 만들었다.
그런 순간들에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이 어디 한둘이랴. 사실 모든 배우가 그렇다. 그런데 장률은 자신의 표현 수단들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도 반짝반짝 빛날 줄 아는 재주가 있다. 그것이 실력이고 재능이다.
갑자기, 출중한 배우를 재빨리 알아채지 못한 필자의 부족함을 배우 장률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는 작품마다, 배역마다 모습뿐 아니라 얼굴이 다르다. 내뿜는 색과 향이 제각각이다. 좋은 배우는 텅 빈 백지라던가. ‘백지’ 장률은 새로운 인물을 맡을 때마다 새로운 색감과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더 욕심내자면, 캐릭터가 바뀌어도 그 고갱이에 장률이라는 각인을 새겨 놓는, 자신의 연기 DNA를 분유해 놓는 숙제는 차차 완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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