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의 한국 시리즈, LG팬은 웁니다
공生공死, 공 하나에 죽고 사는 스포츠의 세계. 그러나 치열함으로 가릴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모두가 환호하는 경기장에서 '프로 불편러'를 자처하고 싶다. 이 차별적인 판이 콜드게임으로 끝나지 않길. <편집자말>
[이진민 기자]
▲ 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 한국시리즈 2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5-4로 승리를 거둔 LG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23.11.8 |
ⓒ 연합뉴스 |
MBC 청룡 시절부터 잠실에 청춘을 걸었던 40년 차 LG 팬 A씨. 게다가 올 시즌은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 시리즈 우승을 노린다지만 정작 그의 발길은 경기장을 향하지 못한다. 온라인 티켓 예매 형식으로 바뀌면서 모든 티켓을 딸의 손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기 때문. 다행히 '엘린이'로 자란 딸이 적극적으로 티켓팅에 나서지만, 티켓이 있어도 경기장에 입장하는 게 일이다.
더이상 지류 티켓이 아닌 모바일 QR 코드로 입장이 가능해져, 티켓 예매부터 경기장 입장까지 모두 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시리즈 직관은 꿈도 꾸지 못했다. 현장 판매를 한다면 새벽에라도 나서고 싶지만, 온라인 세상은 골수 LG 팬에게 '집관'만을 택하게 한다.
온라인 예매에 허둥지둥, 중장년층만이 아니야
프로야구 예매처 직원 B씨에게 A씨가 겪은 난감한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그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고 한다. 온라인 예매가 낯선 중장년층 말고 일반 시민이나 팬들도 현장 예매를 시도하지만, 온라인 예매만으로 매진된 상황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처음 야구를 접하러 온 시민이나 팬들에게 새로운 진입장벽인 셈이다.
워낙 예매 경쟁이 치열한 한국 시리즈의 경우,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에게도 예매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올해 처음 한국시리즈 예매에 도전했다는 LG팬 C씨는 예매창을 띄웠을 때 대기 순서가 13만 번째였다고 토로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대기인원을 뚫고 입장했지만 예매에 실패했단다. 그는 "좌석을 직접 선택하지 않고 알아서 배정되는 자동 배정 좌석조차 예매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예매가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LG의 오랜 팬 A씨와 같은 사람들이 좌석을 구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매처 직원 B씨는 "(예매도 어렵지만) '모바일 티켓'으로 선택해서 예매하면 현장에서 실물 티켓으로 발권이 불가능한데 이 점을 헷갈리시는 분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티켓 예매 시, '모바일 티켓' 유형으로 선택할 경우에는 현장에서 별도의 지류 티켓으로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불필요한 지류 티켓과 영수증 출력을 줄여 환경 파괴를 막고자 공연, 스포츠, 전시 등에서 시행되는 관람계 전반의 시류다. 그러나 모바일 QR코드를 보여줘야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A씨처럼 종이 티켓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주변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다.
온라인상에서 '선물하기' 기능으로 티켓을 받았지만, 사용법을 몰라서 혼자서 입장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많단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을 통해 타인에게 온라인 티켓을 양도받을 경우, 예매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 후 모바일 QR코드로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복잡한 과정 탓에 일부 관람객들은 현장 판매 직원에게 따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프로야구 관람객이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서비스지만,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B씨는 "편리함을 목적으로 한 기능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반해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서비스 이용자에게 불친절한 경우가 많아서 매번 표 없이 돌아가는 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편리함을 겨냥한 온라인 서비스가 특정 이용자에게는 불편함을 넘어 문화 환경에 대한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이에 웹 접근성이 낮은 사용자의 처우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 엘지 트윈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온라인 예매 안내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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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는 웹 접근성이 낮은 팬들을 위해 지난 2021년 구단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온라인 예매 및 발권, 온라인 예매 취소, 모바일 티켓 사용법에 관한 안내 영상을 게재했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안내 영상을 올린 건 LG 트윈스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웹 서비스에 친숙하지 않은 관람객에게 여전히 복잡한 방법이며, 안내영상조차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등 실질적인 접근성을 향상하는 데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중장년층 팬들이 쉽게 예매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MLB(메이저리그)는 KBO처럼 공식 사이트를 비롯한 여러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예매를 진행하고 있고 장애인, 노년층 관람객을 고려한 접근성 문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상대 팀, 경기 시즌, 좌석에 따라 가격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에 KBO 못지않게 티켓팅은 하늘에서 별 따기.
스포츠를 벗어난 다른 관람계에선 신선한 사례가 주목받기도 했다. 인터파크 티켓은 지난 9월 14일 임영웅 전국투어 콘서트 '2023 아임 히어로(IM HERO) 서울' 예매를 앞두고 전용 상담 전화를 개설했다.
팬덤 연령층이 높고 많은 문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최초로 특정 콘서트 전용으로 전화번호를 개설한 것. 또한 지하철역부터 공연장 곳곳까지 여러 보안요원을 배치해 입장 안내부터 티켓 발권, 응원봉 연동 등 팬들에게 낯설 수 있는 서비스를 사전에 대비했다.
프로 스포츠 또한 관람 연령층이 다양하며 구단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팬덤이 있다. 다양한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전되고 복잡한 기능이 추가되고 있는 요즘, 어느 팬도 소외하지 않는 웹 접근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7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1차전 kt wiz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LG 팬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2023.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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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A씨만이 아니라 '청룡' 팬들이 경기장에 찾아가지 못한다는 소식에 일부 팬들은 SNS나 당근 마켓을 통해 티켓 무료 나눔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장에 입성할 권리는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닌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시스템에 기반되어 이뤄져야 한다. 특히 LG 트윈스는 29년 만에 정규 시즌을 우승했고 이젠 한국 시리즈를 향하고 있다.
2023년에 경기장을 찾지 못하는 그들이 어쩌면 29년 전, 1994년의 잠실을 지켰을 팬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LG 트윈스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고, 마음껏 소리치고 사랑할 기회다. BE THE ONE, 모두가 하나되는 순간. 그토록 열광해 온 당신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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