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2' 위기의 MCU에 새로운 나무 심었다
[원종빈 기자]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2> 스틸 이미지 |
ⓒ 디즈니+ |
*주의! 이 기사에는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가 '계속 존재하는 자'(조너선 메이저스)를 죽인 후, TVA에 돌아온 '로키(톰 히들스턴). 갑작스럽게 생긴 타임슬립 능력 때문에 고생하는 와중에 로키는 TVA가 위기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시간선이 무한대로 증폭하기 시작한 나머지 시간 직조기가 파괴되기 직전이고, 이를 막지 못하면 모든 우주가 붕괴할 테니까.
이에 '모비우스'(오언 윌슨), TVA 가이드북의 저자 '우로보로스/OB'(키호이콴)와 함께 시간 직조기를 고치기 시작한 로키. 그는 '렌슬레이어'(구구 음바타로)의 방해를 뚫고 계속 존재하는 자의 변종 '빅터 타임리'(조너선 메이저스)를 찾아내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실패를 맛본 로키는 마침내 깨닫는다. 운명의 딜레마 속에서 결단을 내릴 때가 됐음을.
<로키 2>, MCU 드라마의 최고점
<완다비전>부터 <로키 2>까지 총 9편. MCU가 디즈니+에서 선보인 드라마 숫자다. 사실 MCU 드라마는 양에 비해 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속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가 메인 스테이지라면, 드라마는 사전 작업에 가까웠다. 실제로 <완다비전>은 <닥터 스트레인지 2>를, <팔콘과 윈터 솔져>는 <캡틴 아메리카 4>와 <썬더볼츠>를, <미즈 마블>과 <시크릿 인베이젼>은 <더 마블스>를 준비하는 단계였다.
자연히 여러 설정을 설명하느라 바빠서 주인공 이야기에 집중할 여력도 없었다. <로키>만 해도 멀티버스 설정을 알리느라 바빠서 로키의 분량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나마도 로키의 변종 중 하나인 실비와 나눠야 했으니. <변호사 쉬헐크> 역시 헐크와 데어데블에 밀려서 정작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선후배 케미가 돋보인 <호크아이>에서도 바튼보다는 케이트 비숍에게 비중이 쏠렸다.
따라서 <로키 2>에게는 과제 두 개가 있었다. MCU 드라마로서 독립적인 완결성을 증명해야 했다. 로키의 단독 작품으로서는 주인공에게 온전히 집중해 달라는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로키 2>는 해냈다. 2011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로키의 성장 서사를 더 바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고 감동적으로 매듭지었다. 다만 물음표도 여전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처럼 <로키 2>도 MCU의 구원자라는 확신만큼은 주지 못했다.
그 시절 우리가 로키를 사랑한 이유
2011년 <토르: 천둥의 신>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로 로키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MCU 빌런이었다. 본래 <토르: 다크 월드>에서 죽어야 했지만, 사전 시사회에서 관객이 좀처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되살려야 했을 정도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도 죽음을 잔인하게 연출하고 몇 차례에 걸쳐 죽었다고 언급한 후에야 관객들은 그의 사망을 수용했다.
관객은 신의 결핍에 공감했다. 그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고,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토르 주위에 친구가 가득한 것을 질투하고, 냉소하며, 비웃는 거만하고 까칠한 신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외로웠다. 자기 종족이 아닌 이들 사이에서 길러졌고, 아버지에게서 버려졌으며,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따른 어머니가 죽는 발단을 초래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토르가 자기를 동생으로 인정하길 바랐고, 기꺼이 형의 오른팔이 되었다.
동시에 로키는 자유의지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다. 패배자라는 운명을 이기려는 욕구로 가득했기에 그는 괴로웠다. 아스가르드의 두 번째 왕자이기에 결코 왕이 될 수 없는 2인자의 설움. 어떻게 해도 잘난 형 토르를 이길 수 없었던 패배자의 회한. 장난의 신은 죽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이길 수 없는 운명을 수용했다. 세상을 재창조하며 신 노릇을 하려는 타노스에게 "너는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물론 로키는 토르 트릴로지, <어벤져스>, 그리고 <인피니티 워>를 통해 자기 약점과 결점을 모두 극복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드라마 <로키>의 영리함이 드러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재등장한 2012년도 로키를 활용해 그 시절 팬들이 사랑했던 로키를 재소환해 두 번째 기회를 줬다. 자유의지를 발휘해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그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2> 스틸 이미지 |
ⓒ 디즈니+ |
실비가 계속 존재하는 자를 죽이고, 시간 직조기는 폭증하는 시간선을 버티지 못하며, 모든 시간대가 파괴될 상황. 페이즈 1부터 혼자였고, 항상 자유를 갈망한 로키는 이제 딜레마에 직면한다. 겉으로는 우주와 TVA를 지키려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노력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실비의 지적대로 로키는 또다시 혼자가 되기 싫었다. 모비우스를 비롯한 TVA 동료가 본래 시간선에서 자기를 잊고 살아갈 때 외롭게 남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실비가 계속 존재하는 자를 죽이기 전에 먼저 그녀를 죽이면 신성한 시간선과 TVA를 모두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다른 모든 시간선의 붕괴도 지켜볼 수 없다. 함께 사라질 모든 자유의지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그래서 그는 타협점을 찾는다. 빅터 타임리를 찾아내 시간 직조기 수리를 맡기고, OB의 지식을 모두 전수받아 새 장치를 만든다. 그러나 끝내 실패한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로키는 결심한다. 신성한 시간선을 지키기 위해 다른 변종을 죽이고 세계를 파괴하는 대신, 모든 존재의 자유의지를 지켜주기로. 계속 존재하는 자의 역할을 대신해서 모든 시간대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기로. 언제나 자기를 괴롭힌 자유의지에 몸을 맡겨 자기 결핍을 채워내기로.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자기 이야기를 새롭게 쓰기로.
그렇게 로키는 신성한 시간선과 멀티버스의 종말을 막았다. 비록 혼자 남았지만, 친구와 애인은 지켰다. 장난의 신이 아니라 이야기의 신이 되어 항상 떠들던 '영광스러운 목적'도 이뤘다. <어벤져스>에서 인간에게 모든 자유를 빼앗아 평화적인 질서를 이루겠다던 로키는 모든 이의 자유를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그렇게 13년에 걸친 그의 성장은 끝났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만나야 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감동적인 마무리다.
멀티버스 사가에 뿌리내리다
<로키 2>는 로키의 이야기를 끝맺으면서도 위기의 MCU에 새로운 나무를 심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특히 영리하게 활용한 신화적인 모티브의 함의가 의미심장하다. 모든 시간선을 손에 쥔 채 왕좌에 앉은 로키. 수많은 시간선이 그를 감싸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나무 같다. 북유럽 신화 속 우주의 중심에서 모든 세계를 연결하는 '위그드라실'을 닮았다.
위그드라실 덕분에 멀티버스 사가가 시작 이후 갈피를 못 잡던 MCU는 비로소 안정감을 갖는다. 위그드라실과 신성한 시간선의 차이 덕분에 비로소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 신성한 시간선은 직선적이다. 멀티버스 전쟁을 막는다는 미명 하에 모든 시간대(branch)의 자유의지를 파괴한 결과다. 위그드라실은 다르다.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지(branch)에는 각 우주의 자유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 덕분에 MCU는 비로소 멀티버스 사가의 큰 그림을 어렴풋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 <앤트맨 3> 속 사건이 짧게나마 언급되듯이 로키가 살려두고 보호하는 자유의지로 인해 멀티버스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그 전쟁에서 로키에게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로키 2>는 곱절로 감동적이다.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여태 흔들리던 세계관에 단단한 뿌리를 잡아주니까.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키2> 스틸 이미지 |
ⓒ 디즈니+ |
다만 <로키 2>도 극복 못한 한계가 있다. 우선 결말의 임팩트와는 별개로 평균적인 완성도는 높지 않다. 특히 3화까지는 흡인력이 약하다. 빅터 타임리를 찾고 TVA를 구하려는 내용이 펼쳐지는데, 이 대목의 전개가 다소 느슨하기 때문. 또 20세기 런던이나 시카고 박람회 정도를 제외하면 시즌 1과 달리 공간적 배경이 TVA와 시간 직조기 통제실로 한정적이다. 자연히 타임슬립의 재미가 떨어진다. 이를 만회할 액션 신도 부족하다.
작품 외적으로는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MCU는 페이즈 4부터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인피니티 사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멀티버스 사가를 안착시킬 수 있는가?" 여태 답은 '아니요'였다.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앤트맨, 블랙팬서 모두 길을 잃었다. 스파이더맨도 기존 프랜차이즈의 인기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가 그나마 성공적이었지만, 인피니티 사가의 에필로그에 가까웠다.
<로키 2>도 마찬가지다. 물론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 <로키>는 멀티버스 사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인피니티 사가에서 가장 사랑받은 캐릭터 중 하나를 빌려온 작품이기도 하다. <가오갤 3>처럼 인피니티 사가의 또 다른 에필로그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로키 2>가 멀티버스 사가의 회광반조일지, 아니면 부활의 서막일지는 아직 물음표다. <가오갤 3>의 다음 주자가 <더 마블스>인 걸 고려하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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