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바쳤다

장소영 2023. 11. 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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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 이어가는 튀르키예 참전 용사 가족과 한인 기념사업회

[장소영 기자]

의 좋은 형제 이야기를 모르는 한국 사람도 있을까. 형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을 생각해 자신의 쌀가마니를 몰래 창고에 가져다 주고, 동생은 아이들이 많은 형을 생각해 자신의 쌀가마니를 몰래 형의 창고에 넣어준 전래 동화이다.

'의'에 '의' 하나를 더 붙이면 어떨까. '의 좋은 의형제'라고. 아침마다 챙겨보는 한국 뉴스에서 오랜만에 튀르키예 소식이 전해진다. 미국에서 한국 뉴스를 통해 튀르키예 소식을 보다니. 좋은 시절을 사는구나 하고 있는데 역시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가 소개된다. 낡은 가옥 수리, 장학금 전달, 참전 자료 채집 등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의 꾸준한 섬김은 오래전부터 여러 방송을 타고 잘 알려져 있다. 그저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참 의형제로 살아가는 분들이다. 

마침 그간의 봉사에 대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게 되었다니, 축하 인사도 건넬 겸 기념사업회에서 활동 중인 오수용 선생께 연락을 드려 보았다. 20년도 넘게 그곳에서 지내셨으니 참전용사나 가족분들을 지근거리에서 살펴오셨을 테고, 행사가 아닌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독일 출장 중에 바쁘신데도 반가워 하시며 기꺼이 튀르키예 참전용사분들의 이야기를 나눠 주셨다. 

이 지옥에서 제발 나를 건져줘 

올해는 평소의 활동뿐 아니라 지난 2월 지진 피해 구호 사업과 한인회관 및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관 개관식으로 더 바쁜 한 해를 보냈다고 한다. 피해 복구는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대한민국 면적 크기만 한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워낙 피해 규모가 커서 정부 차원에서의 집중적인 복구 작업 외에는 효과적인 도움을 드리기가 어렵죠. 그러나 우리도 나름대로 각 마을을 돌며 여러 차례 현장 점검을 하고, 도와주시는 여러 기업과 후원금을 모아 주택 지원 사업을 꾸준히 하는 중입니다.

컨테이너 하우스로 한국 마을 준공식도 지난 7월 가졌고요, 9월에는 집이 완전히 무너져 천막에서 지내던 참전용사 미망인 가정이 새 집을 완공하여 입주도 했지요. '이 지옥에서 제발 나를 건져달라'고 간청하셨던 분인데 한국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집을 완성해 주니 이웃들이 엄청 부러워한다고 이제는 자랑을 하신답니다." 
 
▲ 참전용사 미망인 가옥 재건축 완공과 입주  지난 2월 발생한 튀르키예 강진으로 참전용사분들의 마을과 집도 큰 피해를 입었다. 평소에도 참전용사분들의 낡은 가옥 수리를 돕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는 여러 기업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주택사업과 구호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오수용
 
 
▲ 참전용사의 집 지진 피해 복구 지난 2월 발생한 튀르키예 강진으로 참전용사 분들의 마을과 집도 큰 피해를 입었다. 평소에도 참전용사분들의 낡은 가옥 수리를 돕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는 여러 기업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주택사업과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 오수용
 
 그렇다면 참전용사 분들만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럼요. 한국전쟁이 있은 지 긴 세월이 흘렀고 2만여 명의 참전용사들도 거의 다 돌아가셨죠. 이제 500여 분 정도 살아계십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고 소식, 장례식 소식이 들려오죠. 미망인과 후손들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장학금이요? 직계 후손이면 신청이 가능한데요, 장학금을 받으려면 할아버지와의 사진이나 추억들을 에세이로 적어야 한답니다. 손자·손녀들이 직접 할아버지가 하신 일을 찾아내고 글로 써보면서 윗세대를 이해하고, 공로를 알게 되고, 세대 간 서로 협력하는 길을 가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거든요.

한 손녀가 시골 할머니 집을 찾아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물어보고 사진들도 찾아보며 큰 감동을 받고 많이 울었다고 해요. 어렴풋이 한국에 갔었다고만 알고 그간 조부에 대해 잘 몰랐던 거죠. 그리고 자신들을 잊지 않고 세대를 이어 도와주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사히 돌아왔다고 해도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가진 참전 군인도 있다.  가족이라 해도 반복되는 고통 호소는 힘에 겨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다들 가지고는 있지만 남편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의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받은 상처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랑스러운 아버지, 할아버지로 마지막 시간들을 살아가실 수 있도록 가족 모두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 참전용사 가족 장학 후원회 모임 한국전 참전용사기념사업회는 2009년에 설립된 한인들의 모임으로, 참전용사 돌봄뿐 아니라 후손을 위한 장학 사업도 해오고 있다. 후손들에게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작성해보도록 하고 있는데 잘 몰랐던 할아버지의 헌신에 대해 알게되어 세대를 넘는 감동이 있다고 한다.
ⓒ 오수용
 
역사가 되고 작품이 되는 참전용사들의 자료

'연대의 딸'이라는 오페라가 있다. '마리'라는 고아 소녀를 프랑스의 한 연대가 입양하여 데리고 다니며 정성으로 길렀다. 어엿한 숙녀, 아니 말괄량이 아가씨가 된 마리의 사랑과 결혼, 귀족 가문에 재입양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린 오페라이다. 오페라를 보고 있자니, 사람 사는 동네는 어디나 비슷하다 싶다. 우리의 의형제, 튀르키예 부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술레이만씨가 가장 기억에 남죠. 2009년에 이 분 댁을 방문했을 때 우리에게 작은 사진 2장을 보여 주시며 죽기 전에 꼭 이 딸을 찾고 싶다고 부탁하셨거든요. 이 사진을 근거로 한국에 계신 김은자씨를 찾아 드렸었어요."

참전용사 슐레이만 딜빌리이. 한국전쟁 60주년 MBC 다큐 '코레아일라'의 주인공이자 영화 <아일라>의 소재가 된 분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진도 그렇고 기록과 기억도 중요한 역사 자료가 되거든요. 그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를 가끔 만나요. 댁에 가지고 계시면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다가 버려지고 말 텐데, 어떻게든 잘 설명드리고 찾아내서 채집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도 요양병원을 찾았더니 우리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던 바질 바쿠마라는 참전용사 분이 계셔요. 불과 몇 달 만에 돌아가셔서 지난여름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렸어요.

접근조차 힘들었던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생각하면 참 다행한 일인데 용사분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을 이럴 때마다 하게 되죠. 그럼요. 팬데믹 때도 정부에서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게 잘 전달하고,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며 다시금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상기시켜 줘서 고맙다고 말씀들을 하시죠."

정부도 할 일을 잘했지만 평소에 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살뜰히 보살펴 온 참전용사 기념사업회 분들의 수고가 깊다. 회원들은 튀르키예에 거주한 지 5년이 넘어가는 주로 개인 사업을 하는 평범한 한인들이라 한다. 이주민으로는 쉽지 않은 봉사의 길. 마음이 가니 시간을 내고 힘들다 여기지 않고 섬기게 되는 것일 테다.

오수용 선생도 OK정보통신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자이다. 주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지진 발생 후 기쁘게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어 그저 달려갔다고 한다.

한국으로부터 지진 구조대가 파견되었을 때 기꺼이 학교 공간을 숙영지로 내주었던 셀림 네브자트 샤힌 중고등학교. 대한민국 정부는 감사의 마음으로 학교 음악실, 도서실, 컴퓨터실을 개선해 주었다. 무려 30대의 새 컴퓨터와 모니터, 65인치 스마트 TV와 무선 네트워크 시스템을 하루 종일 실어 나르며 설치했다. 학생들도 신이 나서 도왔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신명 나는 하루였다. 

 
▲ 긴급구호대 숙영지에 대한 대한민국의 보답  튀르키예 지진 구호차 파견된 긴급구호대를 위해 기꺼이 숙영지를 제공한 셀림 네브자트 샤힌 중고등학교에 정부가 시설 개선과 컴퓨터 지원으로 보답하였다.
ⓒ 오수용
"튀르키예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줍니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 큰 계기가 되었구요. 최근 들어서는 한류 열풍으로 젊은 층의 호감도도 아주 높아졌죠. 한국어과에 입학하려면 1등급 수준의 실력이 있어야 하고 세종학당과 민간 한국어 학습소, 한국 식당들도 엄청 늘었어요. 

구호품 준비 사진 속 '코레마루'요? 아내가 운영하는 작은 한식 가게입니다. 원래는 한국 이민 사회를 대상으로 도시락이나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높아진 K-푸드와 K-문화에 대한 관심 덕에 튀르키예인들 사이에서도, 국제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국 음식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내는 한국의 입맛 그대로를 맛보여 주길 원해요. 전에는 한국 음식 한 입 먹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두려워하고 할랄푸드의 한계도 있고요. 지금은 김밥, 떡볶이는 물론  김, 참기름, 고추장 같은 전통 식자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한마디로 없어서 못 먹습니다!" 

 
▲ 구호품과 위로용품 준비중인 오수용 선생과 자원봉사자들 '코레마루'는 오수용 선생의 부인 이연경씨가 꾸려가고 있는 한식당이다. 튀르키예에서도 K-푸드 열풍이 일어 김밥, 떡복이, 만두 등이 인기를 누리고 한식 도시락도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한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튀르키예인도 크게 늘어 세종어학당과 민간 한글학교도 북적이고 있다.
ⓒ 오수용
 
미국은 엊그제 11월 11일이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었다. 튀르키예에도 이런 특별한 날이 있을까? 매년 10월 19일이면 한국으로 파병되었던 룰레부르가즈 65보병여단과 지역민이 함께하는 '한국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 한국의 날 기념식  매년 10월 19일이면 한국으로 파병되었던 룰레부르가즈 65보병여단과 지역민이 함께하는 '한국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 오수용
 

당신들의 내일을 위해 우리의 오늘을 드렸다

한국전쟁에서 터키 군인들은 우리 한국의 내일을 위해 그들의 오늘을 헌신했다. 이것이 그대로 참전용사 기념사업회의 모토가 되었다. 참전용사뿐 아니라 남은 가족과 후손들의 내일을 위해 한인들의 오늘을 드리고 있다. 이스탄불에서 900km를 내달려 지진 피해 지역을 오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향후 후손들과 중·장년, 대학 청년 모임도 만들어 민간 차원에서의 우호를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다. 
  
지진 피해 지역 방문중에 천막에 앉아 힘겨워하시는 참전용사 미망인 메리예 알칸 부인에게, 아내인 이연경씨가 가지고 간 숄을 둘러드렸다고 한다. 한국 국기, 터키 국기가 새겨져 더 의미있어 보인다. 서로를 감싸는 이 마음과 돌봄은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국경과 문화, 언어와 종교, 시간과 거리 모두를 넘나들면서 서로의 무너진 터전을 위해 함께 싸우고 서로의 고아와 과부를 반세기 넘게 돌보고 있는 현실판 '의 좋은 의형제' 이야기. 이를 이어가고 계신 참전용사분과 기념사업회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 숄을 두른 참전용사 부인 참전용사 미망인인 메리예 알칸 부인이다. 지진으로 가옥이 피해를 입어 천막에서 힘겹게 생활중인 부인을 보고 이연경씨가 튀르키예와 한국 양국의 국기가 있는 숄로 감싸드리고 왔다 한다.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사업회는 기업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옥 수리와 구호를 병행하고 있다.
ⓒ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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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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