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경영대표팀 총감독, "AG 계영 금메달이 목표라니까 미쳤다고 했죠...이젠 올림픽 금이 새 목표" [IS인터뷰]
이은경 2023. 11. 13. 07:37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을 뜨겁게 달궜던 대한민국 수영 대표팀이 더 뜨거운 2024년을 준비하고 있다. 항저우에서 역대 AG 최고 성적을 거둔 준비 과정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에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정훈(51) 경영대표팀 총감독에게 항저우의 짜릿한 성공에 대한 비하인드와 한국 수영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에 관해 직접 들어 봤다. 한국 경영대표팀은 지난달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0개를 따내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특히 남자 계영 800m에서 따낸 금메달은 한국 수영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단체전 우승이었다.
이정훈 감독은 이달 초 진행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파리 올림픽 목표는 계영 800m 금메달”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 종목의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단체전 우승을 최우선 목표로 두겠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2020년 11월 경영대표팀 총감독으로 선임될 때부터 ‘단체전에 먼저 집중하면 개인 성적도 따라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이 감독은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한수영연맹에 제출한 계획서에 ‘2022 항저우 AG 남자 계영 800m 금메달이 목표’라고 썼다. 당시 대부분의 수영 관계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이정훈 감독은 당시 분위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미친놈이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나 3년 뒤에 이는 현실이 됐다.
이정훈 감독이 가장 크게 신경 쓴 건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오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박태환의 경우 후원사를 통해 호주 등 해외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 다른 선수들은 ‘박태환도 촌외 훈련을 하는데 우리가 굳이 선수촌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생각을 암암리에 했다. 이 감독은 이런 분위기가 대표팀에 독이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뛰어난 자유형 선수들을 모아 계영 훈련에 집중했다. 가장 기록이 좋은 황선우(강원도청)가 끌고 나가면서 김우민(강원도청), 이호준(대구시청) 등 다른 선수들도 황선우 페이스를 기준으로 따라가게 됐다. 계영 팀이 함께 나가는 호주 전훈을 했고, 계영 전담 코치가 이들과 함께했다. 계영 팀의 기록이 함께 올라가자 전반적인 대표팀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훈련 분위기도 어느새 뜨거워졌다. 이정훈 감독은 “지난 2년간 수차례 진행한 호주 전훈에서 호주의 이언 포프 코치가 선수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 보고 그걸 잘 배워 온 것 같다. 계영팀을 맡은 전동현 코치가 젖산 훈련(단거리 위주로 체력 소모가 크고 스피드를 끌어올리는 훈련)과 유산소 훈련(상대적으로 훈련 때 스피드를 많이 올리지 않는 장거리 위주의 훈련) 방법과 비율 같은 부분을 세부적으로 잘 흡수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정훈 감독은 “호주의 코치들은 오히려 선수의 컨디션이 너무 좋을 때 훈련에서 오버페이스하는 걸 철저하게 막더라. 대신 강도 높은 훈련을 할 때는 가차없이 몰아친다. 선수들의 특성과 스타일에 따라 맞는 훈련을 시키는 방법 등 호주 전훈을 할 때마다 우리 것과 잘 융합해서 우리만의 훈련 체계를 만들었다. 또 이를 우리 코치들이 자신들이 맡은 부분에서 너무나 훌륭하게 잘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수영 지도자들이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다만 국제대회 금메달 선수를 배출한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것뿐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 지도자들도 큰 자부심을 얻었다”고 했다.
계영팀의 페이스가 눈에 띄게 올라가면서 전체 경영대표팀의 훈련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정훈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대표팀에 들어가서 훈련하면 무조건 실력이 더 좋아진다’는 믿음이 선수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종목별로 자신의 기량보다 몇 단계 높은 목표치를 제시한 것도 분위기를 바꿨다.
수영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던 김서영(경북도청)은 항저우 대회를 마친 후 “솔직히 이전까지는 많은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갈 때 ‘경험하고 오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항저우에서 확실한 목표치가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회 때는 서로 응원하는 하나의 팀이란 느낌이 정말 강했다”고 말했다.
2021년 도쿄 올림픽을 거쳐 2022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면서 김우민과 이호준의 기록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이유연(한체대)과 양재훈(강원도청)은 계영 800m의 남은 한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고, 항저우 AG 결승에 나선 양재훈은 놀라운 기록 향상을 보여줬다.
이처럼 대한수영연맹의 전폭적인 지원, 이정훈 감독의 현실적이면서도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극대화시키는 코칭을 비롯해 전문적인 영역을 효율적으로 나눠 선수들을 끌어올린 코칭스태프의 노력이 선수들의 노력과 어우러져 한국 수영을 한 단계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여기에서 안주하는 게 아니다. 이정훈 감독은 ‘계영팀 경쟁 업그레이드’를 예고했다. 그는 “항저우 계영 금메달리스트들이 파리 올림픽에 그대로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 고등학생들 중에 김준우(광성고) 김영범(강원체고) 노민규(경기고)처럼 체격이 뛰어나고 기록 향상 추이가 눈에 띄는 유망주들이 몇 명 있다. 이들도 계영 800m 경쟁 풀에 들어갈 것”이라며 무한경쟁을 예고했다.
오는 23일에는 수영 대표선발전이 열린다. 이후 내년 2월에는 도하 세계선수권이 예정돼 있고, 8월에는 파리 올림픽이 열린다.
이정훈 감독은 “대표 선수가 확정되면 계영팀은 올림픽 전까지 세 차례 정도 더 해외 전훈을 진행할 계획이다. 계영 800m 팀은 큰 국제대회 결승 때마다 목표치에서 늘 0.6초 정도 덜 나왔다. 이 부분을 보완하고 끌어올린다면 세계선수권,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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