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일 숨겨준 친구는 '유죄', 이은해는 도피죄 '무죄'…왜

문현경 2023. 1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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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일간의 도주 끝에 지난해 4월 체포된 이은해·조현수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가평계곡 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은해·조현수씨가 검찰 수사 당시 넉 달 간 숨어 지냈던 일에 대해선 추가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두 사람의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판결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씨와 조씨는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특별법 혐의로 지난 9월 같은 대법원 소부에서 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확정받았다.

‘가평계곡 살인 사건’은 2019년 이은해씨가 내연 관계인 조현수씨와 함께 남편 윤모 씨를 독살하려다 실패하자(살인미수)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계곡에서 뛰어내리게 함으로써 죽게 만든(살인) 사건이다. 이후엔 윤씨의 사망보험금(약 8억원)을 타내려고 했다(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이런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이들은 2021년 12월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도주해 2022년 4월에야 체포됐다. 장기 도피는 조력자들이 있어 가능했다. 이씨의 오랜 친구 A씨와 그의 지인 B씨가 은신할 오피스텔을 구해줬고, 또 다른 친구 D씨와 그의 연인 E씨는 공개수배 직후 양주 펜션에 갈 때 차량을 제공했다. 검찰은 A·B·C·D씨를 범인도피죄로 기소하고, 이들에게 조력을 요구한 이씨와 조씨에겐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 혐의에 범인도피교사혐의를 추가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기 가평군 용소폭포의 모습. [뉴스1]

‘통상의 도피’냐 ‘방어권 남용’이냐


도피는 수사과정에서 강력한 구속 사유가 되지만, 모든 도피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범인도피죄는 벌금 이상 죄를 저지른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를 처벌하는 것이므로(형법 151조), 죄를 저지른 자 스스로 도망다니는 건 이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범인이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해석해 왔다. 피의자에게 도피 행위란 방어권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방어권이라도 남용하면 안 되고, 도움을 요청한 타인에게 거짓말을 시킨 정도라면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1·2심은 이씨와 조씨가 타인의 도움으로 120일 넘게 숨었던 건 ‘통상의 도피행위’를 넘는 ‘방어권 남용’으로 보고 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인천지법은 “이씨와 조씨는 A씨와 B씨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와 휴대전화, 컴퓨터, 생활용품 등을 확보하고 손쉽게 이사해 추적을 피했다”면서 “A씨와 수사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등 단순한 도피의 부탁을 넘어선 관계였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이씨와 조씨가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진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 이병준 기자


하지만 대법원은 “수사를 피하기 위해 친구 등을 통해 은신처를 제공받고 그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통상의 도피의 범주”며 방어권 남용이 아니라고 봤다. 도주 시기가 검찰이 강력한 증거’라 부르는 텔레그램 대화를 발견한 때였다는 점, 도피 생활이 장기간이었다는 점, 수사상황에 대해 논의했다는 점을 다 고려해도 그렇다고 봤다. 이씨와 조씨가 A씨·B씨 등을 통해 검찰을 속이는 정도에 이르렀어야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도움의 핵심은 은신처 제공과 은신처를 옮기기 위한 이사행위 등으로, 수사기관을 적극적으로 속이거나 범인의 발견·체포를 곤란 내지 불가능하도록 적극적 행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범인도피죄’ 확정…‘교사’는 무죄


사건을 돌려받은 인천지법이 두 사람에게 범인도피교사죄 무죄를 선고하면, 이씨와 조씨는 ‘추가 1년’은 피하고 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만 살게 된다. 한편 한편 범인도피죄로 기소된 A씨와 B씨는 각 징역 1년을, C씨와 D씨는 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확정됐다. 대법원은 “범인의 ‘통상적인 도피’는 처벌되지 않으며, 범인의 요청에 응해 범인을 도운 타인의 행위가 범인도피죄에 해당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은해는 2020년 11월16일 남편의 사망보험금 8억원을 달라고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선 지난 9월 5일 패소했다. 이은해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같은달 23일 확정됐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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