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판사의 사적 복수극…문유석이 '비질란테' 작가 된 까닭

윤지원 2023. 11.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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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전직 판사 문유석 작가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3년간 형벌을 관장했던 판사가,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작가로 돌아왔다. 지난 8일 첫 방영된 디즈니 플러스 ‘비질란테’(Vigilante·자경단)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부장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를 12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동명의 웹툰(작가 김규삼)이 원작인 비질란테는,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 학생 김지용이 밤이면 범죄자를 찾아 응징하는 8부작 다크히어로물이다. 김지용은 “법이 뭔데 나 대신 용서한다는 거야. 내가 이제 법의 구멍을 메운다. 널 풀어준 법을 원망해”라며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온 악인을 두 손으로 심판한다.

자칫 사적 응보를 조장한다는 우려를 받았던 원작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을 총괄한 게 문 작가다. 이미 전작 JTBC ‘미스 함무라비’(2018년), tvN ‘악마 판사’(2021년)를 통해 ‘법치의 한계’를 풀어냈지만, 이번 작품에선 더 서슴없고 노골적으로 법치의 틈새를 파고들어야 했다.

문 작가는 “사법부 일원이었던 내가 이런 작품을 맡는 것은 직업윤리 위반이란 생각에, 처음엔 크리에이터직 제안을 거절했다”며 “그런데 원작을 두 번째 읽곤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비질란테는 사적 제재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은유하는 작품”이라며 “판사 아닌 작가 문유석의 입장에서, 시스템에 희생된 작은 개개인을 위한 해원(解冤), 일종의 씻김굿 같은 이 작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배우 이준혁(왼쪽부터), 최정열 감독, 배우 김소진, 유지태가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비질란테'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스1

199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던 문 작가는 법원행정처 정책담당관, 광주지법·인천지법·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20년 법복을 벗고 전업 작가가 됐다. 문 작가는 “나는 법원 안이나 밖에서 한 번도 혁명가를 자처한 적 없는 개인주의자”라면서도 “시민들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대중 매체에 담아냈을 때, 실제 세상은 바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내부에서 70년간 꿈쩍 않던 성폭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2011년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삽시간에 변화하는 것을 목도했다”며 “변화는 결국 많은 공감대를 저변 삼는데, 그런 공감대 형성의 계기는 늘 내부보다 바깥이며, 그 지점에서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문 작가와의 1문 1답.

Q : 전작 ‘미스 함무라비’, ‘악마 판사’와는 어떻게 다른가
A : 앞선 작품은 모두 판사가 주인공으로, 법원이란 시스템 안에서 내부자들이 부조리에 저항하는 얘기다. 반면 비질란테는 가장 낮은 곳의 사람들이 법대 위에서 내려지는 판결로 인해 쌓인 울분을 표출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이 서 있는 장소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지 않겠나.

Q : 사적 제재물을 전직 법관이 다루는 게 아이러니하다
A :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때는 내가 야단맞는 느낌이었다. 나 역시 시스템에 복무했던 사람인데, 이런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란 부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적 제제물이 정말 응보의 시대로 퇴행하자는 게 아니지 않나. 결국 ‘시스템, 너희가 더 잘하라’는 것이다.

Q : 법치의 한계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A : 우리나라 법치의 오랜 문제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잘 안 지켜졌단 것이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이란 도그마를 금과옥조 삼아, 솜방망이 처분을 지속하고 엄벌주의를 포퓰리즘이라고만 간주해왔다. 이게 전문가의 함정이란 것을 판사 시절부터 제기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법관의 무심함이 누적돼 시스템이 약자를 위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결국 사법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게 된 거다.

드라마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전직 판사 문유석 작가가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문 작가는 판사 시절 2014년 에세이집 ‘판사 유감’에 “법원이 윗분 눈치 보고 아부하고, 얄팍한 수로 분칠하는 판사들만 인정받는 조직이 된다면, 아무 미련 없이 그런 조직 일부로 남는 것을 사양하련다. 나는 소중하니까”라고 적었다. 그리고 6년 뒤 문 작가는 법원을 떠났다. 그가 ‘양승태 대법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된 직후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그는 중앙일보에 “그냥 퇴직하는 겁니다. 이제 글 쓰고 여행하며 지낼 것”이라고 말을 아꼈지만, 이날은 조금 더 솔직했다.

Q : 2014년 8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세월호 특별법 옹호’ 칼럼으로 양승태 대법원의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올랐다.
A : 판사 시절 예민한 이슈들에 대해 칼럼을 다수 집필한 것은 어느 정도 조직 내 출세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시작한 일이다. ‘맡은 바 열심히 하되, 틀린 말 안 하겠다’면서 조직 내부에서 줄타기를 잘해보겠다는 취지였다. 그게 얼마나 나이브한 생각이었는지는, 사법 농단이 폭로된 뒤 알았다. 부정적 평가를 감수했기에 억울할 것도 없지만, 다만 그 방식은 너무 음침했다. 당시 대법원은 앞에선 ‘외부 기고’ 겸직 허가를 내주고 ‘잘하고 있다’면서, 뒤에선 불이익을 줬다.

Q : 결정적인 사건 같은 게 있었나
A : ‘진보 성향’ 국제인권법 학회가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 저변을 넓혀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나를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법원행정처의 전략 문건이 나왔을 때 상처가 컸다. 일종의 어용 학회 ‘미디어연구회’를 설립하고 나를 학회장에 앉혀 젊은 판사를 포섭하자는 내용이었다. 모욕적이었다. 보고서엔 ‘행정처에 결국 우호적인 인물로 이용 가치가 있다’고 묘사가 있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들과 일했구나, 내가 아깝다’는 생각에 그렇게 법원을 나왔다. 나는 판사직을 사랑했었다.

Q : 작가로서 삶은 행복한가
A : 원했던 자유를 누린다는 점에선 좋지만, 판사 시절이 더 행복하긴 했다. 행복도의 차이라는 것은 결국 젊음의 유무에 달린 일 같다. 판사 시절엔 내가 더 젊었고 뜻 맞는 선후배들과 함께 있어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큰 실망감을 떠안았다. 솔직히 첫사랑을 잃은 느낌이다. 이제 늙고 혼자 글 쓴다 한들 예전만큼 신명 나진 않는다. 다만 이 모든 게 순리 아니겠나 생각한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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