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맛 봤다" 64세에 바다서 53시간, 180km 헤엄친 그녀

전수진 2023. 11.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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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네뜨 베닝이 다이애너 나이애드 역으로 열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바다수영계의 전설, 다이애너 나이애드(74)의 집엔 국기가 두 개 걸려있다. 그의 모국인 미국의 성조기와 쿠바 국기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가 최신호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두 국기 모두 나이애드 집 마당에서 중요한 요소로, 단순 국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이애드는 쿠바 하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 약 180km에 달하는 거리를 수영으로 완주했다. 그의 나이 64세, 10년 전의 이야기다. 20대부터 네 번 이상 실패했으나 60대, 그것도 중반에 들어서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완주엔 53시간이 걸렸다. 60대에 만 이틀하고도 다섯 시간을 홀로 바닷물 속에서 분투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다이애너 나이애드(왼쪽). 지난해 사진이다. AP=연합뉴스


그의 이야기는 최근 넷플릭스 신작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로 만들어져 인기 몰이 중이다. 65세인 아네뜨 베닝이 나이애드로, 61세인 조디 포스터가 코치 역으로 등장하는데, 일체 대역 없이 실제로 몸을 만들어 전설의 운동 선수와 코치를 연기해냈다. 배우들의 열연도 화제이지만, 뉴요커부터 뉴욕타임스(NYT)ㆍ가디언 등 다수 영미권 매체들이 나이애드를 재조명하고 있다. "나이애드는 그 스스로 전설이 된 스포츠 선수"(NYT), "60대에도 정신력과 지구력이 갖는 힘을 보여준다"(뉴요커) 등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나이애드는 젊은 시절부터 장거리 수영 선수로 승승장구했다. 뉴욕 맨해튼 섬 둘레 45km를 8시간 안으로 완주하며 신기록을 세웠고, 바하마 섬에서 플로리다까지 164km를 27시간만에 완주해 또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눈에 띄는 외모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기도 거머쥐었다. 뉴요커에 따르면 우디 앨런 영화감독은 그에게 데이트 신청도 했다고 한다. 나이애드는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였고, 앨런 감독과 친구가 됐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분명 있었다는 의미다. NYT에 따르면 그는 "내 성은 그리스 신화의 물의 님프에서 유래됐다"고 으스대곤 했다고 한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코치와 선수의 유대 역시 영화의 주요 포인트다. AP=연합뉴스


나이애드는 그러나 논란을 부르는 선수이기도 했다. 자신의 기록을 부풀려 얘기하는 것을 좋아해 그의 기록은 신빙성이 약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의 2013년 쿠바-플로리다 완주 기록 역시 공식 협회 등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그는 뉴요커에 "내가 어리석었다"고 인정했다.

그의 쿠바 장거리 바다수영은 그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는 현역 시절 네 번을 도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하필 쿠바인 이유에 대해 그는 "그냥, 쿠바잖아, 환상의 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꿈과 환상의 나라는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때론 맹독 해파리의 공격을 받아서, 때론 조류가 역류해서 레이스를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뉴요커에 "무엇인가를 이렇게까지 원해본 적이 없었다"며 "어떤 레이스를 뛰며 이렇게까지 의지력을 발휘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실패했다. 뉴요커에 따르면 네 번의 실패 후 그가 했다는 말은 이렇다. "나는 둘 중 하나다. 고집쟁이 바보 또는 용맹한 전사."

네 번째 실패 이듬해, 그는 "서른이면 운동선수가 딱 은퇴하기 좋은 나이"라며 수영모를 벗었다. 은퇴 후 그는 스포츠 방송 전문가이자 강연자로 명성을 만끽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며 그는 점점 잊혀졌다. 그 스스로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머릿 속엔 쿠바의 파도가 넘실댔다. 마당에 쿠바 국기를 게양한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60세가 됐을 때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인생 한 번뿐인데,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건가?"

그는 스스로 답을 내렸다. "아니다. 다시 한 번 도전을 해봐야겠다." 그렇게 2013년, 그는 쿠바로 다시 향했다. 상어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케이지도 설치하지 않고 그야말로 맨몸으로 바다에 도전한 것. 혼자서 이룬 성취는 아니다. 그 스스로도 "수영은 혼자 하기에 고독한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 보이지 않는 팀이 있기에 가능한 스포츠"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최고의 팀은 절친이자 코치인 보니였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꿈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AP=연합뉴스


나이애드는 완벽한 인간도, 선수도 아니었다. 결점도 많고 자만심도 있었지만 그의 미덕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NYT는 "나이애드는 자신에게 연민을 갖지 않는다"며 "현실을 직시하며 대신 끊이지 않는 열정과 지구력을 발휘했다"고 전했다. 뉴요커 등 여러 매체를 종합하면 나이애드가 강조한 메시지 중 하나는 이렇다.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삶은 한 번뿐이기에 귀중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그러면 인간도 불멸을 맛볼 수 있다. 나처럼."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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