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AI 시대 배우의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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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제작사 관계자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마약 의혹 사건으로 수백억원이 투자된 영화가 엎어질 상황이 되면서 영화, 드라마 등을 만드는 제작사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AI 기술과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해 실제 배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기술로 논란이 되는 배우를 지워서라도 영화를 살리는 게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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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조항이라도 넣어야 할까요?”
최근 만난 제작사 관계자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마약 의혹 사건으로 수백억원이 투자된 영화가 엎어질 상황이 되면서 영화, 드라마 등을 만드는 제작사들은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콘텐츠 시장에서 특급 배우들의 입지는 ‘슈퍼 갑’에 가깝다. 이는 출연료에서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실의 ‘국내 드라마 주연 및 조·단역 출연료 분석’ 자료에 따르면 SBS 드라마 ‘법쩐’은 회당 최대 출연료가 2억원, 최저 출연료는 10만원이었다. 다른 드라마도 주연과 단역 출연자의 출연료 차이는 크게는 수백배까지 났다. 드라마가 한류 열풍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출연만 하면 흥행이 보장되는 주연 배우들의 몸값이 크게 뛰었고 단연 배우들의 처우는 제자리걸음을 해 격차가 커진 것이다.
올해로 티켓 판매액이 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뮤지컬 시장도 양상이 비슷하다. 시장 전반이 커졌다기보다 일부 배우의 팬덤이 비대해져 시장을 끌고 가고 있다. 과거에는 주연 배우 더블 캐스팅이 주류였지만, 요즘은 4~5명까지도 나선다. 같은 공연을 여러 번 재관람하는 팬층을 겨냥하는 것이다.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신작보단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이 반복된다.
콘텐츠 시장이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배우에게 불리한 계약은 상상할 수도 없다. 주로 출연료의 2배 정도를 위약금으로 두는데, 대작 영화나 드라마는 제작비가 수백억원에 달한다. 배우가 별다른 사고를 안 치고, 선량한 시민으로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미국 할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GA-AFTRA)은 지난 8일 118일간의 파업을 끝냈다. 핵심 정잼이었던 AI 사용도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 지었다. 배우가 생존했든, 사망했든 디지털 복제본 생성 및 사용에 대해서는 사전 동의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명시했다. SGA-AFTRA는 정당한 대가에 초점을 맞췄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배우의 초상권을 AI로 사용하는 길이 열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동안 일부 영화에서 개별적으로 AI를 사용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제도적 기준을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당장 AI 배우가 도입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AI 기술과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해 실제 배우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고 해도 영화나 드라마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배우와 교감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한다. ‘인생 영화’ 한 편에 위안을 얻고,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다. 그 인물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전제에 깔려 있다. AI가 만든 배우가 하는 연기라면 아무래도 몰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선균이 출연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모두 개봉이 불투명하다. 이들 작품을 합하면 제작비만 900억원이 넘는다. 함께 출연한 동료 배우들과 제작진, 제작사와 투자사는 허탈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조연 배우들은 생계를 걱정할 상황이다. 이들에게 대작 영화는 다른 영화 오디션을 볼 때 중요한 경력이다. 그런 영화가 개봉도 못 한 채로 끝나버리면 커리어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영화 한 편 개봉하지 못하는 데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한 명 때문에 영화를 묻어버리는 게 맞는 걸까. 기술로 논란이 되는 배우를 지워서라도 영화를 살리는 게 나을까. 정답은 없겠지만, AI라는 기술 덕분에 선택지는 하나 더 생기고 있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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