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인의 문화유전자, 꼬부랑할머니
생명 품고 길러내는 할머니는
낙관주의와 긍정을 상징하는
한국인 소프트파워의 원천
20세기식 전쟁에 휩싸인 세계
남성적 힘의 왜곡된 퇴행과
극단적 이분법서 이젠 벗어나
공존의 21세기 만들어갈 때
너그러운 사랑과 포용의
꼬부랑할머니 마음 자세가
지금 필요한 지성이자 리더십
이어령 선생은 2020년 2월 펴낸 ‘한국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탄생 편)에서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의 원형이자 인류 이야기의 기원으로 꼬부랑할머니를 든다. 젊어서는 출산하고 나이 들면 조산과 양육을 돕는 할머니의 생명 파워, 이것이 인간을 오늘의 존재로 진화시킨 힘이라고 강조한다. 한류를 이끄는 막걸리, 막사발, 막춤처럼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들, “옛날 옛적 고리짝에…” 하며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소프트파워를 양산하는 한국인의 힘도 꼬부랑할머니가 꼬부랑지팡이를 짚고 꼬부랑고갯길을 꼬부랑꼬부랑 넘어가는 ‘네버엔딩 스토리’의 원형적 힘에서 나온 것이라 분석한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의 선들이 모두 곡선이듯 꼬부랑할머니 이야기 속 모든 것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마치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직선은 인간에, 곡선은 신에 속해 있다”고 한 것처럼 꼬부랑할머니의 굽은 허리, 무릎, 지팡이마저도 굴곡진 삶 속에서 꺾이지 않고 살아내는 질긴 생명력의 표상일 수 있다.
모든 여성이 다 출산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여성의 자궁을 통해 이어령 선생이 강조하는 것은 생명을 품고 길러낼 수 있는 ‘생성’의 힘이다. 내 자식,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돌보는 포용의 마음. 가진 게 없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물 뜯어 상을 차리고 모든 생명을 거둬먹이는 너그러운 사랑의 소유자.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창조의 힘이자 인류가 버텨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는 부수고 죽일 수 있는 영웅적 힘의 소유자지만 할머니처럼 열두 고개를 넘는 생성의 힘을 가지진 못한다. 꼬부랑에서의 ‘~랑’은 아리랑, 쓰리랑에서처럼 역경을 견뎌내고 함께 아우르며 사는 한국인의 낙관주의, 긍정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꼬부랑할머니가 상징하는 바이오필리아는 젊은 여성, 중년 남성, 누구나 장착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뜻한다.
흔히 남성성과 여성성을 남성의 특징, 여성의 특징이라 생각하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은 태극문양의 양과 음처럼 서로 대적되는 두 개의 성질이라고 이해하는 게 맞다. 우리 모두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 다 갖고 있다. 사회화 과정에서 남자들이 남성의 지배적 특징을 요구받고, 여자들은 반대로 여성에 어울리는 덕목을 강요받으며 남성성과 여성성이 이분화되었을 뿐이다. 번식과 양육 과정이 긴 인간은 남녀가 가정을 이뤄 보완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성 역할이 고착화되기도 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시인 콜리지의 말을 빌려 ‘위대한 정신은 양성적’임을 강조하고 그러한 양성성을 갖추었을 때 인간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극단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자기 의지로 자신의 자아를 창의적으로 표현하려면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을 유지해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남현희·전청조 사건에서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은 외양의 문제도, 사기 행각의 소재가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러한 사건이 성적 정체성 문제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20세기까지는 칼, 총, 주먹과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왜곡된 남성적 힘과 결별해야만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간 전쟁은 헤게모니 싸움을 벌여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믿는 과거형 남성성의 신봉자들이 내린 퇴행적 결정의 산물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폭력적인 물고뜯음 없이도 얼마든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할 수 있는 지성과 리더십이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다.
요즘 드라마와 영화에 ‘이두나!’ ‘무인도의 디바’ ‘힘쎈여자 강남순’ ‘바비’, 새 마블 영화처럼 독립적이고 강한 여주인공들의 서사가 많아진 것, 요리하고 자신과 공간을 가꾸며 여성의 돌봄에 기대지 않는 남성 인물들이 많아진 것도 새 시대가 요구하는 성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상생을 지향했던 한국인들은 그 어떤 민족도 먼저 침공한 일이 없었다. 오늘날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한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가 없는 나라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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