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의 아트에콜로지] ‘예술적 경험’이 최고의 투자
파리가 다시 돌아왔다. 최근 다소 주춤했지만 1980년대만 해도 세계 예술과 패션의 중심지는 파리였다. 20세기의 얘기만은 아니다. 17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주도한 로코코 문화는 지극히 화려한 미감으로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더욱이 ‘태양왕’ 루이 14세가 세운 베르사유 궁전은 절대왕정 시대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베르사유 궁전은 왕의 거주공간을 넘어 유럽 사교계 네트워크의 거점이었다. 지방 봉건 영주들은 왕실과 네트워크를 맺으려 베르사유를 찾았다.
당시 프랑스 왕들도 봉건 영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루이 14세는 왕권을 강화·과시하는 데 이 궁전을 최대한 활용했다. 지방 영주들은 왕이 정한 특정 지점에서 왕을 ‘영접’해야 했다. 루이 14세는 이처럼 건축을 통한 통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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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그룹 LVMH의 성공 전략
미술·예술과의 활기찬 콜라보
가격을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
20~30대 젊은층도 사로잡아
」
지난해 파리에 새로운 예술적 바람을 일으킨 아트 바젤 파리 플러스(Paris Plus)의 올가을 행사에 다녀온 기억이 생생하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이끄는 LVMH 그룹이 ‘현대판 베르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 파리는 다양한 전시와 파티, 특히 내년 파리올림픽 준비로 분주했는데, 이런 일련의 행사 한복판에 바로 LVMH 그룹과 아르노 회장이 있었다. LVMH는 지난 4월 유럽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넘겼고, 아르노 회장 또한 2022년 세계 1위의 부자 반열에 올랐다. LVMH 그룹은 1987년 패션하우스 루이뷔통(Louis Vuitton)과 주류회사 모에 헤네시(MoetHenessy)의 합병으로 설립됐다.
아르노 회장은 원래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임대사업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루이뷔통과 샤넬이 입점하면 무조건 임대가 잘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브랜드의 가치, 즉 콘텐트를 구매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에서의 성공 비법임을 발견했다. 그는 이후 유서 깊은 75개 명품 브랜드를 사들였다. 그리고는 성장엔진의 하나로 아트와 건축과의 협업을 선택했다. 인터넷 유통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경험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LVMH 상품을 파는 공간은 멋진 건축가들의 작품이 됐고, 그 안에서 파는 옷과 가방은 마치 미술관의 작품처럼 디스플레이됐다. 명품을 사지 않고도 공간만을 보러 가는 사람도 늘었다. 아르노 회장은 인스타그램의 온라인 과시 문화를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특히 루이뷔통은 2001년부터 아트 콜라보레이션의 시대를 처음 열었다. 프랑스 회사임에도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쿠사마 야요이를 불러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루이뷔통 매출의 38%가 일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진행한 쿠사마 야요이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론칭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매진 행렬을 보였다. 이처럼 협업 컬렉션의 효과는 엄청났다. 이 멋진 미술관 같은 곳에 파는 명품이란 새로운 존재감이 생겼다.
아르노 회장의 예측과 전략은 들어맞았다. LVMH 그룹 제품은 높은 가격에도 전 세계 20~30대가 주목하는 브랜드가 됐다. 올 2분기만 해도 그룹 매출이 466억 달러(약 61조원)를 기록하였다.
아르노 회장은 기업과 아트의 협업을 중요시했다. 파리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 자신의 예술적 흔적을 남기려고 했다. 2014년 그의 친구이기도 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해 파리의 불로뉴 숲에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을 설립했다. 뉴욕 명품거리 5번가와 런던의 해로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뷔통 매장에서는 쿠사마 야요이를 모델로 한 대형 설치미술을 만들어 관심을 끌었다. 그는 이제 최상급 럭셔리 호텔 사업까지 진출했다. 2001년 파리 퐁네프 다리 너머에 슈발 블랑(Cheval Blanc) 호텔을 오픈했다. 또 2024 파리올림픽의 공식 후원사 자격으로 파리가 지향하는 문화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이 일군 ‘브랜드 왕국’과 베르사유 태양왕이 만든 건축 통치 패러다임, 그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그 둘은 변화하는 시대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 하고, 또 그것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예술의 역량을 절감했다. 익명의 사람들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예술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럭셔리 제국의 황제’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로 불리는 아르노 회장, 그야말로 이 시대의 예술에 열정을 가진 태양왕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지윤 숨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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