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의 마켓 나우] 한국 경제 위기 관리의 아이러니
11월 들어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세다. 10월 말 5%에 근접했던 10년물 국채금리가 4%대 중반으로 낮아졌고, 지난 3개월간 하락세이던 주가도 반등했다. 반면 한국 국내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불안하다. 주가지수가 공매도 금지와 맞물려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이 여전히 1300원대다.
무엇보다 한국은 1%대 초중반의 저성장에도 불구하고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10월의 고점에 비해 3년물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모두 0.2%p 정도 하락했을 뿐이다. 앞으로 금리가 낮아져도 미국의 경기호조, 재정지출 확대, 원화환율 불안 등으로 2010년대 중후반과 같은 저금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부채상환과 관련해 불안이 확대되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지난해 전체 기업의 42.3%에서 올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과 가계는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부채조정을 거쳤지만, 한국은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변동금리 대출이라 급격한 금리 상승에 취약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DSR)은 주요국 중 가장 높고 상승 속도도 가장 빠르다. 10월 말에는 한 정부 고위관리가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IMF 외환위기의 몇십배에 달하는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는 이런 불안요인에도 한국경제가 당장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IMF·카드사태·코로나 등을 겪으면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등으로 위기 확산을 막았다. 올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미국 정부는 고객의 예금액 전액을 보장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문제는 각국의 위기관리 능력이라는 것이 대단할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위기관리의 요체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위기관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정부 부채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정부는 최종대부자로서 기업과 가계의 파산을 막기 위해 부채를 지게 된다. 따라서 당장은 위기 발생 가능성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정부부채 증가는 국채가격 하락이나 정부의 보증채널 및 구조조정능력 약화를 초래한다. 원화가 기축통화나 국제통화가 아니기에 부작용 확산 가능성은 더 높다. 불안요인 확대, 적극적 대응 혹은 위기 발생, 구조조정이라는 순환과 치유의 과정이 없으면 잠재적 위험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미봉만 거듭하면 잠재적 위험이 훗날 파국적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신민영 홍익대 경제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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