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어딘가 숨어 있다는 공포…내성 빈대, 정신적 고통 상당”
“언젠가 우리나라도 빈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죠.”
국내에서는 ‘사실상 박멸’ 상태로 알려진 빈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곤충학자인 김주현(37) 서울대 의과대학 열대의학교실 교수는 201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도 살충제 저항성을 가진 빈대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빈대가 흡혈할 때 사람의 혈관에 내뱉는 물질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는데, 연구를 하다 보니 전 세계적으로 살충제 저항성을 가진 빈대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시형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2020년 발표한 논문에서 국내 빈대가 피레스로이드 계통 살충제에 저항성을 갖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빈대 대부분은 피레스로이드 계통 살충제에 대해 최소 1000배 이상의 강한 저항성을 갖고 있었다. 김 교수는 “일반 빈대가 살충제 1만큼의 양으로 잡힌다면, 국내 빈대는 1000만큼의 양을 뿌려도 죽지 않는 상태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빈대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에서도 종종 발견됐지만 감염병을 옮기는 곤충이 아니라 정부 차원의 방역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교수는 “빈대는 감염병을 매개하지는 않지만 사람에게 큰 정신적 고통을 준다”며 “박멸이 어렵고 집 안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공포심이 스트레스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나오는 빈대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열대 지역의 빈대인 반날개빈대가 2021년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국내외에서 빈대가 창궐하는 이유가 지구 온난화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아직 온난화와 연관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면서도 “아열대 지역 빈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어쨌든 우리나라에 서식할 수 있는 빈대의 종이 늘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최근 빈대 방제에 가장 효과적인 성분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미국 의용곤충학회지에 제출했다. 연구진은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이미다클로프리드’와 페닐피라졸 계열의 ‘피프로닐’을 효과적인 살충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현재는 두 성분이 빈대에 가장 효과적이다. 환경부가 용량과 용법 검토를 마치면 바로 쓸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10일 미국에서 쓰고 있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디노테퓨란 제제 살충제 8종을 긴급 허가했다. 김 교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는 이미 미국에서 효과를 보였지만, 이에 대한 저항성 보고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대뿐 아니라 모든 해충은 살충제가 나올 때마다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살충제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추후 모니터링을 하면서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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