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나이 켈리, 오늘 끝내줄까
프로야구 KBO리그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건 1998년이다. LG 트윈스는 1994년 마지막으로 우승했다. LG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외국인 선수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는 의미다. 올해로 5년째 LG에서 뛰고 있는 케이시 켈리(33)는 마침내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켈리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KT 위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등판한다. KT의 선발투수는 에이스 고영표다. 지난 7일 1차전에 이은 두 선수의 리턴 매치다. LG는 1차전 패배 후 2~4차전을 내리 이겨 3승1패로 앞서 있다. 켈리를 앞세운 5차전에서 승리하면 29년간 염원하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다.
켈리는 명실상부한 LG의 ‘가을 사나이’다. 켈리는 입단 첫해인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포스트시즌에 출전해 매년 승리 투수가 됐다. 특히 지난해 가을 보여준 켈리의 투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 키움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역투해 팀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는 LG가 1승2패로 수세에 몰리자 사흘만 쉬고 다시 4차전 마운드에 올라 5이닝 2실점으로 버텼다. 2경기에서 공 181개(1차전 95개, 4차전 86개)를 뿌리며 LG 마운드를 지켰다. LG 팬들은 투구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켈리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다만 LG는 4차전에서 패해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했다. “팀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던 켈리의 투혼은 그렇게 빛이 바랬다.
올해 정규시즌 켈리의 위력은 예년만 못했다. 지난 4년간 LG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올해는 전반기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하며 눈에 띄게 흔들렸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아담 플럿코가 전반기 11승3패, 평균자책점 2.21로 맹활약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실질적인 에이스 자리도 플럿코에게 내줬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플럿코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복귀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켈리가 다시 에이스의 무게를 짊어졌다. 후반기 12경기에서 4승2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살아나면서 위기에 빠진 선발 마운드를 무사히 지켜냈다. LG도 흔들리지 않고 29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가을야구 무대에서도 켈리의 책임감은 여전하다. ‘전반기 에이스’ 플럿코는 재활 방식과 실전 복귀 시점을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 끝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켈리는 다르다. 꿋꿋이 한국에 남아 LG의 한국시리즈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켈리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6과 3분의 1이닝 동안 6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해 에이스의 역할을 다했다. 가을야구를 위해 준비한 새 구종(포크볼)까지 선보이면서 코칭스태프에 신뢰감을 줬다. 13일엔 다시 5차전 선발투수 역할을 맡았다. 감독과 동료, 팬 모두 켈리의 오른팔에 굳은 신뢰를 보인다.
염경엽 LG 감독은 3차전 승리 후 켈리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했다. 3차전을 앞두고 켈리에게 “혹시 팀이 지면 (또 사흘만 쉬고) 4차전 선발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묻자 켈리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염 감독은 “내년 시즌에도 켈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염 감독은 “팀을 먼저 생각하는 켈리의 마음이 참 좋다. 그런 외국인 선수가 한 명 있으면, 나중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왔을 때도 팀에 큰 도움이 된다”며 “한국 야구에서 경험은 절대 무시 못 한다. 켈리와 기량이 비슷한 투수를 쓰는 것보다는 켈리와 재계약하는 게 낫다. 만약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간다면 또 켈리가 마운드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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