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마” 현대인에 던지는 위로…박보영의 마음 병원

권근영 2023. 11. 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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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이 없어 가장 먼저 아침이 오는 정신병동, 3년 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은 출근 첫날 환자의 소변에 미끄러진다(아래 사진). [사진 넷플릭스]

샤워기에는 줄이 없고, 의료진 명찰과 신발에는 끈이 없다. 문에는 손잡이도 고리도 없다. 환자가 자해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3년 차 간호사도 기죽이는 이 낯선 곳은 커튼도 없어 가장 먼저 아침이 오는 정신병동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병동에 처음 출근한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정신질환을 들여다보며 뻔한 듯 순한 위로와 공감을 선사한다.

OTT 콘텐트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이틀째인 지난 5일부터 국내 정상을 유지했고, 10일에는 글로벌 톱10에 올랐다. 정신병동 간호사 출신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극화했다.

커튼이 없어 가장 먼저 아침이 오는 정신병동, 3년 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은 출근 첫날 환자의 소변에 미끄러진다. [사진 넷플릭스]

한국은 정신질환자가 385만 명(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르고, 하루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한국심리학회) 자살률 1위 국가다. 마음의 병이 깊지만 이에 대한 편견도 강해 선뜻 병원으로 향하지 못한다. 12회 시리즈를 이끌어 간 배우 박보영은 “전과 달리 긴 문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내 주변에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안고 있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꽤 있구나 싶을 정도로 반응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그를 9일 서울 북촌로에서 만났다.

Q :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불안 장애, 워킹맘의 가성치매 증상 등 여러 질환이 나온다.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에피소드는.
A : “워킹맘 이야기다.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가장 많이 울었다. ‘애쓰지 말라’던 선배들 연기가 좋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워킹맘뿐 아니라 열심히 산 나머지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이더라.”

Q : 의료진 반응은.
A : “자문해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환자분들이 말로만 하던 걸 시각화해서 보니 의료진으로서 환자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하시더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황장애의 느낌을 발밑에서부터 점점 물이 차오르는 모습으로 시각화했다. [사진 넷플릭스]

동동거리며 살다가 우울증에 가성치매 증상까지 생긴 워킹맘(김여진)은 아이를 챙기느라 정작 본인 행복은 외면하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이 보인 담당 간호사(이상희)에게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 해준 것만 생각나. 미안해지고. 네가 시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라고 위로를 건넨다.

병원이 배경인 드라마이지만 아픈 부위가 눈에 보이지도, 긴박한 수술 장면이 이어지지도 않는다. 관건은 정신 질환의 시각화였다. 쏟아지는 업무와 가족의 기대 속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직장 초년생의 공황장애는 발밑부터 물이 차올라 숨을 쉴 수 없는 장면으로 대신했다. 침대 밖으로 나오기조차 힘든 다은의 우울증은 늪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살렸다.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이끌어 가는 의학 드라마다. 박보영은 “인수·인계할 때 환자 상태뿐 아니라 요즘 어떤 환자랑 친하게 지내는지,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든지 하는 작은 것까지 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모습이 가장 놀라웠다”며 연기를 위해 지켜봤던 정신병동 간호사의 일상을 전했다. 환자와 공감을 쌓다가 마음의 병에 걸린 다은처럼 실제 의료 현장에는 “상담받거나 약을 먹는 의료진도 좀 있다더라”라고 덧붙였다.

극적인 발병과 치료도, 명의 등 영웅적인 의료진도 없다. 우울증에 걸린 간호사, 강박 장애에 시달리는 의사 등 어딘가 결함 있는 의료진이 등장한다. “약 먹어요. 이긴다고 이겨지는 병도 아니고, 버틴다고 낫는 병도 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 등의 메시지로 정신병동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허문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조달환) 사연에 다은은 “여긴 다 착한 사람들만 오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박보영은 “조달환 선배가 ‘보영아, 이건 너한테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 작품이 살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 같아’ 하셨는데, 꾸준히 많은 사람 마음에 가닿아 위로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6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EBS)으로 데뷔한 박보영은 2008년 영화 ‘과속 스캔들’로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휩쓸며 이름을 알렸다. 올해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명화 역에 이어 ‘정신병동…’의 다은까지 극의 중심을 잡는 진중한 역할을 선보였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작품들이 좋았고, 그걸 놓치지 않고 붙잡은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 칭찬일기를 쓰며 병을 극복해가는 극 중 다은처럼 요즘 칭찬일기를 쓰고 이를 주변에도 권한다는 그의 말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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