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굿즈] 이어폰 꽂으면 ‘말하는 키오스크’… 안 보여도 주문 척척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간단하게 먹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메뉴 고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 빠르고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고 싶을 때. 많은 이들이 가장 쉬운 선택지로 ‘패스트푸드점에서의 한 끼’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크나큰 ‘도전’인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인이거나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에게는 특히나 그렇다. 효율적으로 구성된 공간, 바쁘게 움직이는 다른 손님들, “키오스크에서 주문해주세요”라고 안내하는 직원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긴장과 부담이 배가되기 십상이다. 이들은 이런 고민을 하곤 한다. ‘아무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으며 간편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괜찮을까.’ 장애가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어려움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조차 고단해질 수 있다. 차라리 그곳에 가지 않는 걸 택하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이렇게 돌아섰던 이들을 다시 불러들인 회사가 있다. 주문이 불편해서, 키오스크 사용이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방문하지 않기를 결정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손짓한다. “여기 오면 편해요. 정말이에요.” 그곳이 어딘고하니, 한국맥도날드다. 한국맥도날드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지난 9월부터 일부 매장에 ‘말하는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시각장애인들이 키오스크에서 아무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주문을 완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곳에서만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주문에서의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소수는 돈이다”라고 외치는 효율과 경쟁의 시대에, 비정함이 영리함으로 추앙받곤 하는 때에 ‘돈 안 되는’ 음성 키오스크를 들여오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국민일보는 ‘말하는 키오스크’를 찾아내고 국내 매장에 적용하는 데 앞장선 정영학 한국맥도날드 테크놀로지 디렉터(상무), 신철용 팀장, 양은광 컨설턴트를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한국맥도날드 본사에서 만나 음성 키오스크 개발 스토리를 들었다. 한국맥도날드는 12일 기준 전국 직영점 330여곳 가운데 57개 매장에 음성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많은 창대한 일이 그러하듯 이 사례도 시작은 미약했다. 음성 키오스크의 설치는 뉴스 한 꼭지에서 시작했다.
“2021년에 우연찮게 기사 하나를 봤어요. 미국 맥도날드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키오스크를 도입했다는 기사였어요. 테크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기술과 적용 이후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글로벌 본사에 해당 담당자를 찾았어요. 그렇게 찾은 개발팀에서 너무 고마워하더라고요. 관심 자체에 대해서요. 그렇게 글로벌 본사와 한국맥도날드의 ‘음성 키오스크’ 협업이 시작됐습니다.”(정영학 상무)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고 말리라’ 하는 식으로 대단히 비장했던 것은 아니다. “맥도날드를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이 누구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외면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정 상무는 이런 마인드에서 음성 키오스크 개발·적용의 문을 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동등한 ‘고객’의 관점에서 놓고 봤기에 가능한 ‘불편해소’였다.
기술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니 “시행착오”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언급됐다. ‘키오스크에 음성 서비스를 탑재한다’라는 짧은 한 문장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이걸 기술로 적용하는 것은 디테일의 싸움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음성 키오스크 기술 자체는 글로벌 맥도날드가 개발했다. 그런데 ‘한국어 적용’이 간단찮은 일이었다.
“기술적으로 세 가지 요소가 중요했어요. 첫째, 고객이 선택하는 영역을 음성으로 안내하는 것. 둘째, 터치 없이도 키오스크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 셋째, TTS(Text To Speech)라고 음성변환 기술이 있어요. TTS를 한국어로 하는 게 꽤 까다로운 영역이었어요.”(신철용 팀장)
기술자의 관점에서는 그저 ‘까다로운 일’이었다. 만든 뒤엔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감동적인 디테일’이 됐다. 이런 식이다. 맥도날드 음성 키오스크에서 시각 장애인이 ‘콜라’를 선택했을 때 이런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 콜라는 어떤 브랜드 제품이며 제품의 칼로리는 얼마나 된다”라는 설명이다.
“칼로리를 한국어 음성으로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요. 미국에서는 줄임말로 ‘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한국맥도날드에 그대로 적용하면 큰일 나는 거죠. 그래서 ‘칼’을 전부 ‘칼로리’로 바꾸느라 애먹었습니다.”(양은광 컨설턴트)
‘칼(㎉)’이라는 말을 ‘칼로리’라는 음성으로 바꾸느라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게 맞을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뜻밖에 사용자들이 감동받은 대목은 이런 디테일에 있었다.
“빅맥세트의 칼로리는 얼마나 되는지, 빅맥세트에 곁들여지는 콜라는 코카인지 펩시인지, 이런 게 시각장애인분들은 늘 궁금했다고 해요. 음성 안내가 있는 곳도 콜라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요.”(정영학 상무)
맥도날드 키오스크의 ‘고객친화적’인 성격은 시각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15년 국내 최초로 매장 내 키오스크를 도입한 맥도날드는 2018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마련했다. 키오스크 화면 속 하단 버튼을 누르면 휠체어에 앉은 눈높이에 맞춰 화면이 저절로 내려온다. 키가 작은 어린이나 노인들에게도 유용하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장애인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청각이 예민한 시각장애인에게 음성 안내는 꽤나 맞춤한 서비스가 됐다.
“첫 시연 전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성 안내를 들어도 놓치는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시각장애인분들이 직접 하시는 걸 보니, ‘돌아가기’ 버튼을 누르지 않더라고요. 청각에서 뛰어난 분들이라 음성 안내를 듣고 막힘없이 해내시더라고요.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신철용 팀장)
이웃을 돕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건, 공급자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양은광 컨설턴트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편인데 첫 시연의 시간에 마음이 울렁거렸다”고 말했다. 정 상무는 “기술은 차갑고 비정한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따뜻한 기술의 힘’을 느꼈다”고 했다. 신 팀장은 “한국맥도날드로 끝이 아니라 이게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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