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갚으면 살 1파운드를"…고리대금의 역사[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세종=송승섭 2023. 11. 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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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전부터 기록된 빚과 이자
로마에선 대부업자가 최고부호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2004년 개봉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 중 한 장면. 베네치아에 사는 유대인으로써 대부업자였던 샤일록이 이자를 받기 위해 주인공 안토니아의 살을 도려내려고 하는 장면.

정치권의 은행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대출 부담이 늘었다는 취지를 얘기하며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 7일 “은행이 금리 쪽으로만 수익을 내니 서민 고통과 대비해 사회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고 횡재세도 그 맥락”이라고 거들었죠.

은행들이 비판의 대상에 오른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행동은 인류 문명이 시작됐을 때부터 비난받는 행동이었거든요. 금융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 소위 ‘고리대금업자’로 불린 이들은 많은 국가와 정치인, 종교, 문학에서 공격받아왔죠.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역사 속 고리대금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빚과 이자의 기록은 기원전 3000년 전에도 남아있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지역의 평균 이자율은 20% 정도였다고 하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점토판에 뭘 빌렸는지 쓰고, 도장을 찍고, 목격자까지 기록해뒀습니다. 원금과 보증인을 기록해 둔 일종의 대출문서인 거죠. 빚을 갚으면 점토판을 파괴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24세기에는 한 사람이 13년 치 식량을 빚졌다는 기록도 있고요.

기원전 18세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최고금리 조항도 있었습니다. 당대 왕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 나와 있죠. 법에는 이자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이자율 상한을 정해뒀습니다. 은(銀)을 빌릴 때는 20%, 곡물을 빌릴 경우 33%로 금리를 제한해뒀습니다. 역사가들은 당시 기준으로 곡물을 돌려받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에 금리도 더 높았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자본을 빌려주고 대가를 챙기는 사람이 있었고, 위험성을 따져 금리를 다르게 매겼다는 사실을 암시하죠.

하지만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고리대금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시대 때 카이사르와 함께 1차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정치인 ‘크라수스’는 고리대금업으로 로마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됩니다. 후에 카이사르의 암살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는 브루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루투스는 키프로스라는 속주에서 연 48%의 이자를 받아 부를 쌓았죠. 그래서 권력을 잡았던 카이사르도 이자율 제한, 부채 탕감 정책을 펼쳤죠.

이때만 해도 대부업은 환영받진 못할지언정 법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세시대에서 대부업은 죄악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대부업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했기 때문이었죠. 구약성경에는 이러한 구절들이 나옵니다. “너희는 너희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금을 얻지 말지어다. 돈에 대한 폭리이건, 음식물에 대한 폭리이건, 어떤 것에 대해서도 폭리를 취하지 말지어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1179년 열린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1274년 열린 2차 리옹 공의회에서 기독교는 이자수취 행위를 일절 금지해버립니다. 회개하지 않고 죽은 대부업자들은 기독교식 매장을 못 하도록 했죠. 기존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죽기 전에 그동안 받았던 이자를 전부 돌려줘야만 종부성사와 매장, 유언장 작성이 가능했습니다. 1311년 열린 비엔 공의회에서는 ‘고리대금업이 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단이라고 못 박아버렸습니다.

1494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화 '고리대금에 관하여'.

하지만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대부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중세시대 활동했던 악랄한 대부업자 ‘샤일록’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돈을 못 갚으면 살을 1파운드 취하겠다'는 대사로 유명하고요. 유대교도 이자수취는 금지돼있긴 합니다. 다만 구약성서 신명기에 “타인에게 이자를 받을지라도 네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내용을 외국인에게 이자를 받아도 된다고 해석했죠. 이를 바탕으로 유대인들은 막대한 부를 쌓고 세계 금융을 주무르는 거대 자본을 형성합니다.

한국도 과거부터 이자로 인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때는 봄에 곡식을 빌려주면 가을에 50% 이자를 받는 게 관례였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시대 때는 많은 땅을 확보한 승려들이 쌀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일이 성행했죠. 이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이후에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자모정식법’을 만들기도 했고요. 조선 시대에서는 아무리 오래된 빚도 원금을 초과해 이자를 받을 수 없다는 ‘일본일리법’을 명문화하기도 했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죄가 아니죠. 또 고리대금이 아닌 금융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한 축이 된 금융의 가치를 부인하기도 어렵고요. 물론 이자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얼마까지가 적정한 이자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사람들이 능력만큼 적절하게 돈을 빌리도록 조절하고, 금융업 내 독과점을 방지하고, 경쟁과 시장원리로써 적정한 금리가 책정되도록 하는 건 여전히 우리 정치가 해야 할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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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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