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집어삼켰던 이마트, 이젠 월마트가 부러운 이유
“최근 몇 년간 유통 환경은 급변했는데 이마트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마트인의 열정을 살린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12일은 이마트가 정확히 30년 전 국내 최초의 대형 할인점인 도봉구 창동점을 연 날이다. 지난 9일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과거 30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당부했다. 지난 9월 취임 이후 첫 공식 석상 메시지로 위기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한동안 중단한 신규 점포 출점을 재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오프라인 외형 성장의 기반을 다지면서 온라인 배송 거점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라며 “내년부터 최소 5개의 점포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며, 구체적 시기나 지역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 체인스토어 부문으로 출발한 이마트는 1993년 11월 12일 서울 도봉구 창동에 1500평 규모의 대형마트를 선보였다. 당시 ‘정말 싼 가격’을 강점으로 내세워 오픈 첫날 1억800만원, 1년간 4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1997년 국내 첫 유통업체 자체 브랜드(PL) 상품인 이플러스 우유를 출시하고, 이듬해엔 업계 최초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이후 한국에 진출한 월마트 지점 16개를 인수(2006년)하며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2011년 신세계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피코크·노브랜드 같은 PL 브랜드와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 등을 선보이며 덩치를 키워왔지만 10여 년 전부터 수익성이 악화하는 모습이다. 2012년 7359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1357억원으로 감소했다. 2019년 2분기 창사 이래 첫 적자(299억원)를 낸 데 이어 올 상반기 역시 39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5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최근 2조1883억원(11월 10일 종가 기준)까지 밀렸다.
덩치도 줄었다. 트레이더스를 포함한 매장 수는 2020년 160개까지 늘었지만 올 상반기 기준 154개로 줄었다. 한 해 최대 14개 점포를 출점(2001년)하던 과거와 대비된다. 심지어 본점 격이던 서울 성수점마저 지난 4월 오픈 22년 만에 폐점했다. 업계는 한 대표가 신규 출점을 강조한 것을 두고 움츠러들던 최근 수년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외형 성장을 통한 위기 돌파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본다.
중앙일보는 유통 전문가 5명 의견을 취합해 이마트 부진의 이유를 3가지로 정리했다. 전문가들은 이커머스의 급성장을 가장 먼저 꼽았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 같은 온라인 업체와 품목이 가장 많이 중복되는 업계가 대형마트”라며“신선식품이 대형마트의 강점인데 온라인에서 신선식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그마저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역시 “대형마트의 강점이 싼 가격인데 온라인 업체와 편의성뿐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도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오프라인 침체에 속도를 붙였다고 봤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규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대형마트는 2012년 도입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월 2회 의무휴업 ▶휴업 시 온라인 배송 불가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영업 제한 ▶출점 제한 등의 규제에 묶여 있다. 안 교수는 “분명 수요가 있는데도 이익을 얻을 기회를 놓친 것”이라며 “성장률 1~2%가 매우 중요한 시점에 혁신적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 리더십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1위 마트로 자리 잡은 뒤 다른 데 눈길을 돌리고 본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2021년 3조4000억원에 인수한 G마켓 역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월마트는 최저가라는 콘셉트를 지키면서 드라이브 스루, 무제한 배송 등 서비스 개선으로 편의성을 높인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월마트 주가는 최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면서(11월 10일 166.19달러) 유통 공룡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다만 정연승 교수는 “미국은 배송 거리가 멀고, 자동차 문화가 발달하는 등의 이유로 오프라인 침체가 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체험과 쇼핑의 재미를 줄 수 있는 오프라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수익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용구 교수는 “자녀가 있는 3인 이상 가구가 일주일에 두세번 찾을 만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승 교수는 “고객 편의성 증대를 위해 온·오프라인 연계 강화도 필수”라고 말했다.
이마트의 실험은 이미 시작됐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만화 카페 등을 더한 ‘이마트 더타운몰 3호점 킨텍스점’은 리뉴얼 이후 월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었다. 이마트·이마트24(편의점)·이마트에브리데이(슈퍼마켓) 등 3사의 통합 소싱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내놨다. G마켓은 SSG닷컴과 통합하기보다 초개인화 맞춤형 쇼핑 서비스를 내세우고, SSG닷컴은 프리미엄 온라인몰로 특화하겠다는 전략도 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제학과 교수는 “공간 리뉴얼과 함께 마트의 본질인 제품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쿠팡·네이버에는 없지만, 이마트에 가면 살 수 있는 자체 브랜드 제품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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