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한파' 국내에 이미 상륙..."해외 생산거점 감산도 검토"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과 미국 포드는 튀르키예 대기업 코치와 함께 추진하던 튀르키예 전기차(EV)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들 3사는 지난 2월 튀르키예 현지에 2026년 양산을 목표로 25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여기서 만든 배터리는 포드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공장 규모도 꾸준히 키우기로 했었다.
다만 당시 맺은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었다. LG엔솔 입장에서는 별다른 비용 손실 등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튀르키예에 건설 예정이던 배터리셀 생산시설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에 상호 동의했다”고 밝혔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주춤하다 보니, 전기차 업체는 물론 배터리 업체들에까지 움츠러들고 있다. 12일 익명을 원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미 국내 업체의 해외 생산거점 중 일부는 감산을 검토 중”이라며 “국내도 마냥 편안하게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SK온도 최근 곤혹스러운 상황에 휩싸였다. SK온은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의 증설 공사를 중단했다가 지난 11일부터 재개했다. 앞서 SK온은 지난 8월 총 1조5000억원을 들여 서산 오토밸리산업단지 내 4만4152㎡ 부지에 제3공장을 증설한다고 밝혔었다. 공사 중단과 관련 SK온 측은 ‘단순 해프닝’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고 있는 것도 공사 중단의 원인 중 하나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은 이미 인원 감축 등에 나섰다. 최근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중국 상하이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중국 WM모터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전기차 사업에서만 30억 달러(약 3조96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포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포드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이미 6000명 이상의 인력을 줄인 바 있다. 제2의 테슬라로 불려온 리비안은 메르세데스-벤츠와 추진 중이던 합작 투자 계획을 일찌감치 접었다. 폭스바겐은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 전망을 고려해 동유럽에 4번째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연기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런 현실과 관련 하랄드 빌헬름 메르세데스-벤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말 “(전기차 가격 후려치기가 한창인) 현재 상황이 모든 이에게 지속가능한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며 “(전기차 시장은) 꽤 잔인한 공간”이라고 말할 정도다. 익명을 원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전기차로 이행할 것이란 데에는 이견 적지만, 결국 ‘그게 언제냐’라는 점이 가장 문제”라며 “전기차로의 이행기가 얼마나 길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수기·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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