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스라엘 보는 눈빛 싸늘해졌다..."팔 지지" 곳곳 시위
11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최소 30만 명이 참여한 친(親) 팔레스타인 시위가 열렸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유럽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비난하고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지난 주말 가자 지구 최대 규모의 병원 일대를 공격해 인도주적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한층 커졌다.
로이터통신과 CNN방송·가디언 등은 지난 주말 유럽 곳곳에서 가자 지구를 공격 중인 이스라엘 등에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잇달았다고 전했다. 시위 참가자가 30만 명(런던 경찰 집계, 주최측 80만 명 추산)을 넘어선 영국에서는 일부 극우단체들이 시위대와 경찰을 기습해 126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우크라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 외면하는 건 위선"
11일 오전 영국 시위대는 런던 중심부 하이드파크에서 모여 즉시 휴전을 촉구했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학살 중단” “가자 폭력 멈춰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남쪽 템스강 건너 미국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선두부터 끝까지 행진 길이는 4㎞에 달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CNN에 “우크라이나는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위선에 놀랐다”면서 “일부 정치인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도 두려움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뒤 네번째로 열렸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 영국을 포함한 서방 정부와 다수 시민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동정을 나타냈지만,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대중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복면을 쓴 수백명 규모의 반대 시위대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차이나타운에선 반대 시위대가 병을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하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이날 오후 현재 반대 시위대 중 126명을 체포했으며, 이들 대다수는 극우 단체에 소속됐고 일부 축구 훌리건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반 인종차별 단체인 호프낫헤이트(Hope Not Hate)가 공개한 영상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극우 시위자들이 여러 지점에서 경찰 라인을 밀어붙이는 모습이 담겼다.
'홀로코스트' 죄책감 獨서도 "팔 지지" 시위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도 수천 명이 모여 가자 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팔레스타인 운동의 상징은 흑백 스카프인 '케피예(Keffiyeh)'를 두른 채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나시옹 광장까지 행진했다.
리옹과 마르세유 등 프랑스의 다른 도시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이어졌다. 리옹에서는 극우단체가 팔레스타인 지지 행사에 난입을 시도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곤봉으로 무장한 채 행사장 문을 부수려 했지만 진입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행사 관계자 3명이 경상을 입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2만 명이 모여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대량학살을 멈추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중 일부는 유럽연합(EU)이 이스라엘의 편을 들고 있다며 “EU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에스타시오 데 프란시아 기차역에서도 이스라엘군의 군사행동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제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 때문에 반유대주의 시위를 법으로 금지한 독일에서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베를린과 뮌헨 등지에서는 수천명이 모여 휴전을 촉구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의 부퍼탈에서는 2000여명이 친 팔레스타인 집회를 연 가운데, 100여 명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맞불 시위를 벌였다. 뉴욕타임스는 “독일 정부의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 규제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이 ‘반민주적’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이는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의 인기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국경을 초토화하고 이스라엘 지역 사회를 황폐화시키며 1200명 이상 살해, 240여 명을 납치한 지 불과 한달만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가자 폭격 중단’을 외치는 현수막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인큐베이터 아기 등 환자 5명 숨져…알시파 병원 등 폐쇄
한편 이스라엘군은 10일 밤부터 11일까지 가자지구 최대 의료 시설인 알시파 병원 일대를 공격했다. 12일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알시파 병원의 운영 여건이 악화하면서 환자 5명이 숨지고 시설은 폐쇄됐다고 밝혔다.
전날 민간단체인 이스라엘인권의사회(PHRI)는 병원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공격 이후 병원 전체가 정전됐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신생아 중환자실 운영마저 중단돼 미숙아 2명이 숨졌고, 또다른 미숙아 37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미숙아 2명을 포함해 환자 5명이 전력 공급 중단으로 의료 처치를 받지 못해 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AFP 통신은 하마스측 가자 보건부의 유세프 아부 리시 부장관을 인용, 이스라엘군이 공습으로 알시파 병원의 심장 병동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알시파 병원은 가자지구에서 한달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공습과 지상 공격에도 일부나마 운영을 이어가던 병원 중 하나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 기준 환자 2500명이 병원을 탈출했고, 현재 병원 내부엔 환자 700명과 피란민 2000명 등 3000여 명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알시파 병원 외에 가자지구의 알쿠드스 병원 역시 연료가 바닥나면서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고 전했다. 적신월사는 "알쿠드스 병원 의료진은 이제 전통적인 치료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며 "의료 장비와 음식, 물이 모두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알시파 병원 주변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과 교전 중이라고 밝히면서도 병원을 공격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11일 이스라엘 국방부의 팔레스타인 민간 업무 조직인 민간협조관(COGAT) 측은 “알시파 병원에는 총격을 가하지 않고 있으며, 주변 하마스 무장대원과 충돌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 듯, 이날 밤 이스라엘군은 병원에 남아있는 어린이의 대피를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12일 이스라엘군 아랍어 대변인인 아비하이 아드라이 중령은 "오전 9시~오후 4시 7시간에 걸쳐 가자지구 북부에서 남부로 향하는 살라아딘 도로를 개방하며, 오전 10시~오후 2시에 자발리아 마을과 이즈밧 말리엔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중단해 팔레스타인인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시파 병원을 거론하면서 "병원에서 알웨다 거리를 거쳐 살라아딘 도로에 도달해 가자지구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안전한 경로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마스는 전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알시파 병원에서 13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이스라엘군은 "가자에서 활동하는 테러 조직 중 하나의 로켓 오발로 벌어진 일"이라고 반박했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가자 지구 병원들의 지하에 터널·지휘소 등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AP통신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병원 공격이 국제 전쟁법에서 허용 가능한 범위인지 딜레마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가자 주민 일부, 하마스에 반기
가자의 인도주의 위기가 악화되면서 현지 주민들이 하마스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개전 이래 이스라엘군에 의해 가자지구가 봉쇄되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은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식량·식수·의약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의료·위생 시스템의 붕괴로 설사병·수두·옴까지 창궐하고 있다.
이에 대피소에 모인 일부 가자지구 주민들은 하마스를 비난하며 전쟁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텔레그래프는 "하마스의 권위주의 통치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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