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기업·노동자 둘로 세상 나눴다…노란봉투법 최악은 '2조'"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은 파업한 노동자가 기업으로부터 과도한 손해배상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에서 2015년 처음 발의됐다. 하지만 이에 더해, 사업주와 노동쟁의의 대상을 제한 없이 넓히면서 노동단체와 경제단체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법을 즉각 공포·시행하라며 대규모 집회를 열자, 경제 6단체는 오는 13일 '대통령이 법을 거부해달라'는 취지의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다.
12일 경제·산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가장 난색을 보이는 것은 당초 노란봉투법의 취지와 직결된 제3조 손해배상청구 제한이 아닌, 제2조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확대’다.
현행법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만 사용자와 근로자로 인정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 일례로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노조가 직접 삼성전자에 임금인상, 수당신설 등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가 이를 거부하면 직장점거 등 쟁의행위도 할 수 있다. 같은 법리로 2·3·4차 하청업체 노조도 윗 단계 기업들과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국내 전기전자 기업 관계자는 “수천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건설, 물류, 보안 등 정보기술(IT)서비스, 환경미화 등 대부분의 분야가 원·하청 관계로 묶여있는데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교섭요구가 들어올 경우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중간업체 사장(협력사·하청)은 결정권이 하나도 없는 건가, 세상을 대기업과 근로자, 딱 이렇게 둘로 나눈 법”이라고 지적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조가 쟁의활동에 나설 수 있는 길도 크게 열어뒀다. 기존에 노동쟁의 대상은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이익분쟁’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개정안은 ‘근로조건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대상을 넓혔다. 경영상 판단으로 내려지는 인력 전환배치, 희망퇴직, 인수합병(M&A) 등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면’ 파업·태업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국내 기업 경영진은 “출·퇴근 시간에 영향을 주는 본사·공장 이전을 포함해 기업의 거의 모든 의사결정 사항이 쟁의대상이 될 수 있다”며 “친환경·기술 중심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시장에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경우 파업으로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을 잃고 회사가 휘청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현재 체불임금 청산,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권리분쟁’ 사안은 법원·노동위원회·고용노동부 절차를 밟게 돼 있다”며 “개정안은 법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권 자체를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업계는 이번 개정안이 국내 공급망과 일자리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일호 대한상공회의소 고용노동정책팀장은 “다양해진 산업 생태계를 무시하고 ‘진짜 사장 찾기’에만 몰두하면 밸류 체인(가치사슬)에 있는 기업 간 협력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하청·위임·도급근로자의 권익은 고용·산재보험법 등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 정보기술(IT) 기업 관계자는 “돈보다 더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라며 “(노란봉투법으로)당장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변수를 줄이기 위해 국내 협력사 대신 해외 협력사를 알아보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기업도 한국 투자를 철회·축소할 텐데 어떤 식이든 일자리 감소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은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상황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일부 대기업들은 지주사 등 그룹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가능한 사례 등을 점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법이 시행되면 노동계는 무조건 교섭 요청을 해 올 거로 본다. 그렇다면 원청 입장에선 하청업체 직원들의 근로조건에 관여할 수 없으므로 거부할 수밖에 없고 소송으로 가서 법원 판단을 받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않고 크고 작은 법적 다툼만 최소 3~5년간 진행되면서 결국 로펌들만 돈을 버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에 더해 전문가들은 기업 경영과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정치적 대결의 수단이 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산업구조가 매우 복잡해졌는데 관련 제도가 정치적으로 결정되면 후유증이 크다”며 “경사노위 등에서 이해 당사자 간에 꾸준히 논의하고 고용부의 지침규정을 통해 적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들도 협력사와 계약할 때 최저임금보다 10~20% 높은 시장임금으로 하고, 안전문제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 앞장서서 자구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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