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마저 정부 향해 비아냥대는 현실... 절망스럽다

서부원 2023. 11. 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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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우리 사회의 갈등과 퇴행의 근본적 원인, 아이들도 알고 있다

[서부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글로벌 우수 신진 연구자들과 대화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생님, 지금 그런 사소한 문제에 힘을 뺄 때인가요?"

얼마 전 정부의 급작스러운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방침에 항의하는 내 글을 읽었다는 한 아이의 퉁명스러운 반응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거대한 퇴행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낱 '종이컵 문제'에 연연할 때냐는 반문이다. 무슨 일이든 경중에 따라 순서가 있다는 뜻이다.

딱히 반박하긴 뭣했다. 그의 말처럼, 자칫 하나의 사안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 시선을 분산시킬 우려도 있다. 지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여당이 느닷없는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주장한 것도 선거 후폭풍을 잠재우고 여론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는 술책이었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이 퇴행의 시작점이었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현 정부의 실정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벽돌책' 한 권은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지난 1년 7개월의 임기 동안 17년의 역사적 퇴행이 일어났다고 조롱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넘쳐난다.

현 정권의 치세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정부 정책을 실현할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공무원들이 상급 기관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지 싶다. 예컨대, 황당한 공문이 내려와 교육청에 문의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교육부의 지침이라거나 교육감의 공약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상급 기관인 교육부나 교육감에게 직접 따지라는 투다. 이는 담당자가 공문의 내용이 지닌 문제점과 파장에 대해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아래서는 공무원의 '영혼 없음'을 탓할 수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1년 6개월... 우리 사회는 어땠는가

"이 모든 게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사실상 겸직하고 있어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총칼을 손에 쥔 군인과 검사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광주에서 열린 한 교육행사에서 만난 아이의 뼈 때리는 일갈은 '반박 불가'였다. 그의 이 짧은 한 문장에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검찰권을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손에 쥔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이 숱한 갈등과 퇴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아이들도 직감하고 있다.

애초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의혹에 대한 검찰의 극단적으로 상반된 대응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보수언론과 포털에서 감싸고 돌아도 이게 얼마나 편파적인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바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 횟수가 수백 회냐 수십 회냐를 두고 민주당과 법무부가 아웅다웅하지만, 아이들조차 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단 한 번도 없느냐고 묻는다. 대한민국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호위무사로 전락했다는 조롱마저 쏟아진다.

특수활동비를 주머니 쌈짓돈처럼 사용해온 게 밝혀졌는데도 관행이었다며 눙치고 넘어가는 모습에서 그들의 뼛속 깊은 특권의식을 엿보게 된다. 국가재정법을 어겼다는 의혹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그들에게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검찰의 흑역사는 오늘도 켜켜이 쌓여만 간다.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R&D 예산마저 대폭 삭감한 정부가 '제2의 특수활동비'라고 불리는 검찰의 특정업무경비 예산은 되레 증액했다. 그 어떤 기관보다 법 집행에 엄정해야 할 검찰이 불법을 일삼다 보니 주상 같은 법의 권위마저 생채기가 나고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윤 대통령 스스로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내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보위하는 걸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여긴다. 대통령을 사실상 검찰 조직의 수장으로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국가의 공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 휘하에서, 이젠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웬만한 후안무치는 눈길조차 끌지 못하는 현실이 됐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의혹도, 준비 부족으로 전 세계에 망신살을 뻗친 잼버리 대회의 파행도 사소해 보일 지경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로 촉발된 철 지난 이념 논쟁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부채질했다.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권도 마치 '자판기'처럼 작동되고 있다. 야당이 단독 의결한 법률안은 물론, 여당이 반대하거나 대통령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해가 된다 싶으면 무조건 거부하는 모양새다. 지난 '양곡관리법'과 '간호사법'이 거부됐고, 최근 국회를 통과한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조차 현 정부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갈라치기와 압수수색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현실이 절망스럽다. 웬만한 부동산 투기는 남들 다 하는 거라는 식의 인식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팽배하다. 고위공직자들이 재산 신고 의무를 게을리하거나 자녀 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건 흠결도 아니다. 세금 탈루도 몰랐다고 눙치며, 지금 내겠다고 하면 그만인 세상이 됐다.

충심으로 윤 대통령께 건의하고 싶다. 부디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그냥 가만히 임기만 마쳐주시라고. 당장 교과서 속 '춘풍추상'의 도덕관이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 교사로서 괴롭다. 타인에겐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겐 서릿발처럼 엄격해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대꾸한다.

"윤석열 대통령은요?"

현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태에 아이들의 윤리 의식이 급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그들을 싸잡아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세대라고 질타하기 전에, 우선 기성세대의 눈 속에 든 들보부터 살펴야 한다. 훗날 역사가는 현 정부 5년을 '불의와 몰상식이 정의와 상식을 조롱한 시대'였다고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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