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북송 말라"는 인권결의안…500명 보낸 中 지목 못 한 까닭

박현주 2023. 11.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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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 본부의 유엔 총회장 모습. AFP=연합뉴스

다음 달 유엔 총회에서 채택될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 북·중 국경 개방에 따른 탈북민 강제 북송 문제를 우려하는 대목이 추가됐다. 다만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탈북민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는 중국의 책임을 직접 지목하지 못하며 '반쪽 결의안'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경 재개방" 문안 추가


지난 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제3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모든 회원국이 강제 송환 금지(non-refoulement)의 원칙을 지킬 것을 강하게 촉구한다”며 “(북한과의) 국경 간 이동이 재개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다”는 문구가 담겼다. 결의안은 이어 “(북한의 국경 재개방은) 북송이 이뤄지도록 북한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 결의안에 담긴 “국경 재개방”이라는 문구는 지난해 결의안엔 없던 표현이다. 중국이 지난달 9일 재중 탈북민 500여명을 북한에 송환하는 등 북·중 국경이 열리며 강제 북송 문제가 재차 불거지고 있음을 겨냥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유엔 총회 3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 ″(북한과의) 국경 재개방″ 언급이 처음으로 담겼다. 결의안 초안 캡처

지난해까지만 해도 결의안은 강제북송을 비판하는 근거로 '유엔 난민에 관한 지위 협약'와 '난민 의정서'를 언급했는데, 올해엔 추가로 '고문방지협약'을 명시해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3조는 “어떤 당사국도 고문받을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는 다른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인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유엔 난민 지위 협약과 난민의정서,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인 중국은 탈북민을 '불법 입국자'로 규정하며 강제 북송을 정당화하고 있다.


中 겨냥 없어…"컨센서스 의식"


올해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 강제 북송 관련 문안을 구체화하면서도 중국을 직접 명시하지 못한 것과 관련 ”펜 홀더(pen holder·문안 작성 주도자)인 유럽연합(EU) 등이 결의안의 '컨센서스' 채택, 즉 표결 없는 전원 합의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인권결의안은 지난해 기준으로 18년 연속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으며, 2016년부터는 7년 연속 컨센서스로 채택됐다.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가 표결도 거치지 않고 매년 컨센서스로 채택된다는 것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있는 셈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기자회견. 연합뉴스

만약 올해 결의안에 강제 북송과 관련한 중국의 책임이 처음으로 명시된다면 중국의 반발로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질 확률이 높다. 표결 과정에서 중국을 포함해 결의안에 반대하는 표가 많아질 경우 유엔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규탄한다는 '보편성'이 희석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컨센서스라는 형식에 얽매여 정작 결의안에 담겨야 할 핵심 내용을 누락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결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표결 부치더라도 변화 필요"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북한 인권 문제에서만큼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슈 공론화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헌법상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는 우리 국민의 인권 문제라는 특수성에 더해 마침 한국은 내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을 임기를 시작하는 만큼 북한인권결의안의 '펜 홀더'로 참여해 문안 작성을 주도할 환경은 조성된 상태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일종의 '컨센서스 강박증'으로 인해서 매년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만 낸다면 의미 있는 변화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며 “민주주의 국가들이 표결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중국의 대거 강제 북송이 이뤄진 만큼 중국의 책임을 따지기엔 올해 총회가 적기이고 중국이 결의안 채택을 저지할 능력은 없다. 남은 기간 중국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결의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 절대적 독점' 비판


지난 9일 유엔 총회 3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 북한 정권의 정보 통제에 대해 ″절대적 독점(absolute monopoly)″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결의안 초안 캡처
한편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에는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와 관련해 '절대적 독점'(absolute monopoly)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정보에 대한 절대적인 독점을 비롯해 코로나 19 예방 조치로 인해 (주민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면서다. 또 이번 결의안은 지난 4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결의안에 이어 2020년 12월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관련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중ㆍ러 밀착에 골몰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9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권 지적을 철저히 무시한 채 중·러 등 우방과의 밀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1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누가 뭐라고 하든 조로(북ㆍ러) 친선협조 관계는 흔들림 없이 강화발전될 것"이라며 "미국은 조로관계의 새로운 현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 한·미 외교장관이 회담을 갖고 북ㆍ러 군사 협력을 정면으로 비판하자 맞대응에 나선 셈이다.

이튿날인 12일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의를 겨냥해 “(G7은) 미국의 손끝에서 놀아나는 허재비로 하루빨리 사라지는 것이 상책”이라며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비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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