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유치원을 마을학교로 바꾼 문경 엄마들

김소민 2023. 11. 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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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지은 카페 '선일' 대표

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김소민]

카페 '선일'을 찾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주흘로 길에 스며들어있거든요. 가게 입구 낡은 간판엔 '효성 모터스'라고 쓰여 있어요. 카페 선일이 생기기 전엔 오토바이 가게이자 슈퍼였답니다. '샷시' 출입문도 그대로 살렸어요. 삐걱거리는 문을 열면 '오래된 미래'가 펼쳐집니다. 낡은 물건은 주인을 닮은 생물이 되나 봅니다. 카페 안 테이블은 한 할머니가 쓰던 자개상을 개조한 것이고요. 한쪽 귀퉁이엔 1970년대 선풍기가 무연히 돌아갑니다. 마을 어르신들이 버리기 아까운 오래된 물건들을 카페 앞에 두고 가기도 하는데, 이 옛 물건들이 이곳에서 복제할 수 없는 세련미를 뿜어냅니다.

이 '샷시' 문지방이 닳도록 동네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별별 고민을 다 들고 옵니다. 문경이 고향인 주식회사 선일의 대표 황지은(36)씨는 이곳을 동네 사람들의 "해우소"라고 해요. 실제로 속이 시원해집니다. 지은씨가 해결사이거든요. '아이들 돌봐줄 곳이 없어? 마을학교 만들자!' 진짜 만듭니다. '청년의 사회 참여가 부족해? 그럼 나부터 주민참여예산 아이디어 내 보겠어!' 이런 식입니다. 여섯 살 아이의 엄마이자, 사장이자, 문경시 청년정책단장이자, 미래 문경에 '관광 가치 사슬'을 만들겠다 포부를 품은 지은씨를 지난 10월 23일 만났습니다.  

카페에 모인 엄마들 마을학교 만들다
 
 카페 '선일'의 황지은 대표
ⓒ 희망제작소
     
- 와, 저 호랑이 그림은 어디서 나셨어요? 이 오래된 술병은요?

"여긴 저희 매장이지만 저희 거라고 하지 않아요. 다들 손때가 묻어 있어요. 거의 읍내 어르신들이 알음알음 주셨어요. 처음엔 어르신들이 '귀신 나온다' 하시더니 나중엔 '우리집에 이런 거 있는데 갖다 줄까' 그러시더라고요. 고물상에서 저희가 골라온 것도 있어요. 이곳을 외할머니집처럼 만들고 싶었거든요. 왠지 포근한 거 있잖아요.

어릴 때 외할머니댁에 가면 '스뎅' 양동이에 도너츠를 후루룩 튀겨주셨어요. 저희 도너츠 메뉴도 그게 생각나서 개발했어요. 차로 내는 오미자나 도너츠 위에 뿌린 콩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들이에요. 콩은 여기 방앗간에서 갈았어요. 여기가 원래 한쪽은 슈퍼고 다른 쪽은 오토바이 가게였는데 간판이 좋아서 그대로 뒀어요. 동생이랑 둘이 셀프인테리어하면서 '문경답게 가자' 했어요. 촌인데 촌 아닌 척할 필요 뭐가 있냐고 그러면서."

- 카페는 어떻게 차리게 되신 거예요?

"고향이 문경이에요. 중간에 다른 도시에 잠깐씩 살긴 했지만 대체로 아기 때부터 초중고까지 문경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코이카(KOICA) 봉사자로 콜롬비아에서 2년을 보냈고요. 이후 경북도 출자출연기관인 새마을세계화재단에서 6년 일하며 개발도상국을 많이 돌아다녔어요. 2017년 결혼하고 이듬해 아기를 낳았는데 육아휴직하고 나니 승진 등에서 차별이 확실히 있는 거예요. 또 아기가 어리니 출장 다닐 때 기동력이 떨어지고요. 읍에서 치킨집도 하고 제주도에서 셰프도 한 동생이 2020년 여기서 카페를 먼저 시작했어요. 그걸 보니 제가 막 설렜어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동생이랑 나중에 우리 같이 사업하자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같이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그 당시엔 문경읍에 카페가 없었거든요. '이곳을 그냥 빵과 음료 파는 데가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란 얘기를 했어요. 문경에 그런 게 너무 없었거든요. 우리가 이 공간에서 주민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않겠나. 그렇게 시작한 거예요. 문경시에서 하는 청년창업지원사업 공모에 신청해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자 했는데 그게 됐어요. 스스로 믿고 일단 가보기로 했어요.

처음엔 하루에 10만 원도 못 번 날도 있었어요. 그때 메뉴 개발을 열심히 했어요. 6개월 동안 도너츠 테스팅을 했어요. 손님들한테 돈 안 받을테니 먹어보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달라고 했죠. 그럼 잘 이야기해줘요. 도너츠 박스도 디자인하고요. 일 년쯤 지나니 손님의 흐름이 바뀌는 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거죠. 홍보비를 한 번도 안 썼는데 손님들이 SNS에 올려줘요."

- 비영리단체 '오시고' 대표이기도 하신데요.

"카페가 지역 밀착형 공간이다 보니 만남의 장처럼 됐어요. 동네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 풀어놓기도 하고요. '해우소' 같이요. 그러다 보니 자꾸 이 지역 문제가 보였어요. '여기서 뒷담화만 하지 말고 지역 문제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보자'. 그렇게 비영리단체 '오시고'를 만들었어요. 문경에 '오시라고'요.

예를 들어, 여기 학교나 보육기관이 오후 3시 반에 마치는데 그 뒤엔 방과후 활동이 없어요. 아이들 문화시설도 없고 학원도 없고. 우리가 뭘 해야 할까? 그렇게 단디마을학교를 만들었어요. 시작은 이랬어요. 제가 아이를 초등하교 병설유치원에 보내려고 했더니 대기 1번인 거예요. 이 촌에서 아이들 입학 경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교육청에선 3년 동안 민원을 제기해야 유치원에 새 반을 만든다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소리죠.

제가 포스터를 하나 만들었어요. '이거 문제라고 생각하는 엄마들, 우리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자.' 처음에 네 분이 왔어요. 이야기하다 보니 문제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두 번째 포스터를 만들어 홍보했더니 여덟 분이 왔고요. 마지막에 열네 분이 모였어요. 이 열네 명이 '오시고' 이름으로 사업공모에 선정돼 올해 6월에 단디마을학교를 열었어요.

공동 돌봄에 방점을 두고 부모들이 돌아가며 선생님을 했어요. 잘하는 게 하나씩 있거든요. 저는 케이크 같이 만들고 연극 기초 수업하는 엄마도 있어요. 외부에 수업 의뢰도 하고요. 2019년 문을 닫은 유치원 공간을 활용했어요. 지금은 '단디마을학교'라는 독립 법인을 꾸렸어요. 5살부터 9살까지 아이들 20명이 다니고 있어요. 지속가능하려면 이곳을 잘 이끌어갈 운영진이 있어야 했는데 엄마들이 자진해서 회장, 부회장, 사무국장을 맡아줬어요."

청년 참여 부족해? 내가 한다

- 다른 문제들은 뭐가 보였나요?

"청년들의 사회적 참여가 너무 없어요. 노령 인구가 많기도 하고요. 남들한테 '참여 해라' 강요할 수 없으니 저부터 해보기로 했어요. 주민참여예산 공고가 보이기만 하면 제안 넣었어요. 예를 들어 문경읍에 시립 어린이집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경쟁력이 없어요. 교구나 시설이 너무 노후한 거예요. 그래서 주민참여예산으로 어린이집 개보수 해달라고 자세하게 필요한 걸 적었어요. 그랬더니 4700만 원 예산이 배정되는 거예요. 그걸 시작으로 10개 주제를 냈어요.

학생들이나 어르신들이 많이 쓰는 터미널이 있는데 거기 비가림막이 없었어요. 그거 고쳐달라고 했더니 통과돼 비가림막이 생겼어요. 내년엔 버스터미널에 수신기도 설치될 예정이에요. 시골 정류장이 어둡다 보니 버스 기사님들이 사람 없는 줄 알고 지나치기도 하거든요. 버스 한 대 놓치면 또 오래 기다려야 해요. 이런 걸 방지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오도록 하는 거죠. 주민 축제도 냈는데 그건 장기 검토로 분류됐더라고요. 제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시고' 이름으로 세 차례 행사를 했어요."

- 어떤 행사였어요?

"문화 공연과 함께 청년들의 삶을 공유하는 건데요. 첫 번째 행사 때는 청년 기업 상생 프로젝트를 했어요. 저희 매장 두 곳에 주말엔 손님들이 몰려요. 손님들도 기다리기 지루하잖아요. 매장 안에서 청년 기업 6개가 모여 팝업스토어를 하고 인디 가수들 초청 공연도 열었어요. 그때 방문자가 300명 정도 였어요.

두 번째로는 제주에서 제 동생이랑 같이 일했던 셰프 출신들을 초대해 여기 청년들과 교류 행사를 벌였어요. 창업 이야기 프리토킹을 하며 그분들이 제주도에서 만든 술과 요리들을 저희 빵이랑 같이 맛 봤어요. 세 번째는 지난 10월 10일 '할미, 할비의 날'을 열었어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알리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국수 삶아 100여 분한테 대접했어요. 그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기들이 겪는 문제를 얘기하시는 거예요.

예를 들어,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데 가림막이 길 쪽으로 너무 나와 있어 노인들이 보행기 끌고 다니기 힘들다고요. 그래서 민원 넣어드렸어요. 세상은 엄청나게 빨리 변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항상 그 자리에 계세요. 서로 점점 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그 중간에 누군가 접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상이 변한 걸 노인들이 이해 못 하면 우리가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 문경시 청년정책참여단장이시기도 한데요.

"지자체마다 청년에 대한 조례가 있지만 청년이 개입해 만든 건 아니에요. 정책단은 그 전에 청년이 개입해 우리에게 맞는 정책을 발굴하자는 취지로 꾸린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일단 문경엔 청년들이 목소리 낼 공간이 없어요. 여기 와서 뒷담화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9월 23일 청년의 날에 청년 행사를 열었어요. 그때 청년들한테 우리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며 설문을 받았어요. 19살부터 45살까지 106명이 답했어요. 이 결과가 시장님한테 보고 들어가는 것까지가 우리 행사라고 단원들한테 이야기했어요.

청년들이 다른 도시로 빠져나간 이유는 크게 세 가지에요. 일자리, 교육, 의료서비스요. 막연하게 이게 문제인 건 알지만 해결하기 위한 세부적인 소프트웨어가 없어요. 그래서 분야별로, 키워드별로 지속적으로 토론을 하려고 해요. 그렇게 나온 데이터를 시의회든 중앙정부 청년 보좌관이든 하여간 끝까지 전달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끝까지 간다' 그런 거죠.

문경시에 청년기능인턴지원사업이 있어요. 기능인력은 생산직 청년만 해당돼요. 그 범위를 더 넓히고 지원 기간도 늘려줬으면 좋겠어요. 청년 네트워크를 강화하자는 의견들도 있었어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이야기해 봐야죠."

- 일자리, 교육, 의료, 다 풀기 힘든 문제들입니다.

"사실 힘들죠. 힘든 거 알고 있어요. 그래도 최소한 우리가 이 지역에 살면서 이런 문제들이 있고 해결방안은 이런 게 있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와 데이터는 만들어봐야죠. 예를 들어 문경에 있는 학교를 좀 더 특색있게 만들 수 있잖아요. 똑같이 공교육하고 아무런 특성이 없다면 이 지역 아이들은 점점 줄 거예요. 문경엔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요. 최소한 보건소에 소아과 전문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뭐 대단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물음표는 계속 달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재밌어요... 아무 말 안 하는 게 더 스트레스"
 
 카페 '선일' 앞에서 황지은 대표
ⓒ 희망제작소
 
- 이렇게 여러 활동을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와요?

"재밌어요. 제 눈으로 놀이터가 바뀌고 비가림막이 생기는 걸 볼 수 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리해서 의결기관이나 집행기관에 전달해 100개 중에 하나라도 해결이 되면 저는 지역 주민으로서 제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 들어요. 아무 말 안 하는 게 더 스트레스예요. 사업을 하다 보니, 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직원들 말을 들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걸 체험했어요. 한 사람보다 두 사람, 두 사람보다 네 사람이 모이면 더 나아요. 어떤 문제건 혼자서는 풀 수 없다는 걸 피부로 느껴요. 그래서 여러 사람 목소리를 듣고 제안할 수 있는 게 저는 행복해요."

- 창업 전 삶은 어땠나요?

"신기한 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그랬던 일들이 나중에 다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이게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블루베리랑 사과 농사를 지으셨는데 여름엔 새벽 4시 반에 일 도우라고 막 깨워요. 인내나 끈기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제가 관광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거기서 요리를 가르쳐줬어요. 대학을 여러 곳 다녔고 자격증 딸 기회가 많았어요. 미용, 메이크업, 네일아트... 처음엔 영진전문대 패션디자인과를 들어갔는데 자퇴하고 등록금 일부 반환 받은 걸로 인터넷 홈쇼핑 사업을 했다가 쫄딱 망했어요.

두 번째 학교를 다니고 문경에 잠깐 내려왔는데 엄마가 문경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해보라고 하는 거예요. 1년 반 근무했는데 만날 커피 타고 타이핑 치고... 열심히 하긴 했는데 재미는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열심히 하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 이야길 듣고 '아차' 싶었어요. 어느 주말 낮잠을 자고 일어나 무심코 텔레비전을 켰는데 코이카에서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오더라고요. 미용 자격증 있는 사람도 뽑는 거예요. 하루만에 지원해 면접 보고 콜롬비아로 갔어요. 선배 단원이 없는 마니살레스라는 도시에 혼자 뚝 떨어졌어요. 힘들었어요. 집에 가고 싶고.

거기서 현지인들이 '우리나라 왔으니 우리나라 빵 만들기는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울며 겨자 먹기로 '부뉴엘로'라는 튀김빵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이런 튀김빵을 하고 있잖아요. 콜롬비아 있을 때 노숙자들이 저를 좋아했어요. 처음엔 중국인이라고 놀리곤 했는데 어느 추운 날 제가 그 친구들이 너무 안 돼 보여서 한국에서 가져온 겨울 패딩을 줬어요. 그렇게 친해져 저희집 지날 때는 문 두드리고 '안녕'하고 가곤 했어요. 밥, 라면 그런 것도 같이 끓여 먹고요. 그 친구들이 길에 있으니 무섭지 않았어요. 걔네들이 절 지켜주는 느낌이랄까요. 나중에 그중 한 명이 멀끔해져서 우리집에 왔어요. 변기 세정제 방문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면서 저한테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지역 청년 8명 고용... 문경에 '관광 가치 사슬' 계획

- 앞으로 계획은요?

"카페 선일 이외에 카페 '카인드 워크'를 운영하며 지역 청년 8명을 고용하고 있어요. '카인드 워크'는 선일이랑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꾸몄어요. 동생이랑 저랑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그냥 프랜차이즈 요식업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더 영역을 넓혀보려고 주식회사로 법인화한 거죠. 주식회사 선일로 문경에 관광 가치 사슬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먹거리, 잘 곳, 놀거리를 연결해 루트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숙박업, 음식점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 골목에 한약방이 있었는데 헐렸거든요. 헐리기 전에 저랑 동생이랑 그 한약방 간판만 가지고 왔어요. 한약방도 '방'이잖아요. 그런 콘셉트로 숙소를 만들어 보려고요. 한약방엔 약재 서랍 있잖아요. 그 서랍장에 여러 종류 차를 넣고 손님들이 자기 감정이나 몸 상태에 따라 골라 마시거나 탕에 우려 목욕도 하고요.

성과공유회나 지원사업 심사받으러 가면 심사위원들이 저한테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하냐. 어떻게 보면 너무 방대하고 특색이 없다'고 해요. 처음엔 그 얘기 듣고 좀 충격받았는데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애예요. 저는 기업인이고, 아이 엄마고 청년이기도 해서 관심이 있는 일에 움직일 뿐이에요.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며 사회 참여를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면 만족해요. 세상 속에 잘 어우러져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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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입니다. 해당 인터뷰는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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