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틴다고 낫는 병 아니다"…우울증 극복한 '정신병동 박보영'

권근영 2023. 11. 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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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박보영 인터뷰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정신병동에 첫 근무하게 된 3년차 간호사 정다은을 연기한 배우 박보영. 사진 넷플릭스


「 샤워기에 줄이 없고, 의료진의 명찰과 신발에 끈이 없다. 문에는 손잡이도 고리도 없다. 환자들이 자해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3년 차 간호사도 기죽이는 이 낯선 곳은 커튼도 없어 가장 먼저 아침이 오는 정신병동이다. 」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병동에 처음 출근한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정신질환을 들여다보며 뻔한 듯 순한 위로와 공감을 선사한다. OTT 콘텐트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이틀째인 5일부터 쭉 국내 정상을 유지한 데 이어 10일에는 글로벌 TOP10에 이름을 올렸다. 정신병동 간호사 출신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극화했다.

한국은 정신질환자가 385만 명(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르고, 하루 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한국심리학회) 자살률 1위 나라다. 마음의 병이 깊지만 대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도 강해 선뜻 병원에 향하지 못한다. 12회 시리즈를 이끌어 간 배우 박보영은 "전과 달리 긴 문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내 주변에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안고 있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꽤 있구나 싶을 정도로 반응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9일 서울 북촌로에서 만났다.

Q :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불안장애, 가성 치매 증상이 나타난 워킹맘 등 매회 여러 질환이 나온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에피소드는.
A : "워킹맘 이야기다. 나와 제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많이 울었다. '애쓰지 말라‘는 선배들의 연기가 좋아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킹맘뿐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산 나머지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이더라."

Q : 의료진들의 반응은.
A : "자문받았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다시 찾아갔을 때 '환자분들이 말로만 하던 것을 시각화해서 보니까 의료진으로서 환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말씀하시더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한 장면.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 물에 빠져 질식사 하는 느낌의 공황장애를 시각화 했다. 사진 넷플릭스

바삐 동동거리며 살다가 우울증에 가성치매 증상까지 나타난 워킹맘(김여진)은 아이를 챙기느라 정작 본인 행복은 외면하고 사는 담당 간호사(이상희)에게서 젊은 때 자신 모습을 보고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 해준 것만 생각나 미안해지고 네가 시들어가는 것도 모를 거야"라고 위로를 건넨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지만 아픈 부위가 눈에 보이는 것도, 긴박한 수술 장면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정신 질환의 시각화가 관건이었다. 쏟아지는 업무와 가족의 기대 속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직장 초년생의 공황장애는 발밑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장면으로 그렸다. 우울증으로 침대 밖으로 나오기도 힘들어진 다은의 모습은 늪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살렸다.

박보영은 "혈압 재고 정맥주사 놓는 일상적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찍어 보내주신 동영상 보며 수시로 연습했다"고 돌아봤다. 사진 넷플릭스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이 이끌어 가는 의학 드라마다. 박보영은 "인수·인계할 때 환자의 상태뿐 아니라 요즘 어떤 환자랑 친하게 지내는지, 화장실에 들어갔지만 나왔다든가 하는 자그마한 것들까지 다 기록하고 공유하는 모습이 가장 놀라웠다”며 촬영을 위해 지켜본 정신병동 간호사들의 일상을 전했다. 환자와 공감을 쌓다가 마음의 병에 걸려버린 다은처럼 의료 현장에는 "상담을 받거나 약을 먹는 의료진들도 좀 있다더라”라고도 덧붙였다.

극적인 발병과 치료도, 명의 같은 영웅적 의료진도 없다. 우울증에 걸린 간호사, 강박 장애에 시달리는 의사 등 어딘가 결함 있는 의료진들이 등장한다. “약 먹어요. 이긴다고 이겨지는 병도 아니고 버틴다고 낫는 병도 아니에요”라고 마음의 처방전을 주며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라는 메시지로 정신병동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허문다.

배우 박보영. 사진 넷픞릭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조달환)의 사연에 다은은 “여긴 다 착한 사람들만 오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조달환 선배가 ‘보영아, 이건 너한테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아. 작품이 살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것 같아’ 하셨는데, 꾸준히 많은 사람 마음에 가 닿아 위로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6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EBS)으로 데뷔한 박보영은 2008년 영화 '과속 스캔들'로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상을 휩쓸며 이름을 알렸다. 올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극의 중심을 잡는 명화 역에 이어 ‘정신병동…’의 다은까지 진중한 얼굴을 선보였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작품들이 좋았고, 그걸 놓치지 않고 붙잡은 나를 칭찬하고 싶어요." 극 중에서 칭찬일기를 쓰며 병을 극복해 나가는 다은처럼 요즘 칭찬일기를 쓰고 주변에도 권한다는 그의 말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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