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는 TV로 만족... 노년의 야구광은 서럽습니다

박희종 2023. 11. 1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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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야구팬이지만... '온라인 예매'라는 거대한 벽 앞에 어쩔 도리가 없네요

[박희종 기자]

하루종일 잠잠하던 전화기가 부르르 떤다. 진동소리를 듣지 못해 가끔 구박을 받지만, 웬만해선 감지할 수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안부전화를 하는 아들의 전화다. 퇴근길이라는 말에 '엘지 분발해야겠어!'라고 대답했다. 한국 시리즈 2차전 초반, 엘지가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1차전을 패했으니 반드시 이겨야 하는 2차전이다. 얼른 가서 응원해야 한다기에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야구중계로 눈을 돌리자 아내도 따라 앉으며 기어이 엄마의 본성을 드러낸다. 아들이 얼마나 애태우겠느냐며 함께 응원을 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시리즈의 계절 

몇 년간 가을 야구의 단골이었던 두산은 나에게 하루를 살아가는 맛이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야구 생각에 모든 일이 신이 났다. 온종일 야구를 상상하며 하루를 살아갔다. 이기면 기분 좋고, 패하면 내일 경기를 기대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한국시리즈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쓸쓸하다. 두산이 와일드카드로 시작한 가을 야구를 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규시즌 내내 선전했지만 나름대로 구상한 가을 야구 작전은 빗나갔고, 결국 가을 야구를 접고 말았다. 짜릿한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머나먼 야구의 계절을 고대하며 겨울을 보내야 한다. 

이런 경우, 보통 일 년간 두산의 패인을 분석하며 FA자격으로 이적하는 선수를 원망도 하고, 동계훈련과 이적선수들 소식으로 겨울을 참아낸다. 그러다 드디어 야구의 계절이 돌아오면 눈과 귀는 야구 소식에 쏠린다. 

늘 일주일 정도의 경기 일정을 꿰뚫고 있으니 아내도 덩달아 두산팬이 된 지 오래다. '아빠는 왜 두산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유니폼이 멋져서'라는 말로 대신하지만, 사실은 끈기와 끈끈한 수비력이 좋아 여전히 좋아하는 팀이다.
 
▲ 잠실 야구장 전 가족이 야구를 좋아한다. 아들과 딸이 앞장서서 티켓 구매 등 모든 준비를 하고 잠실 구장을 찾았다. 언제나 시원함과 짜릿함을 주는 야구장,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 박희종
 
아주 오래전, 프로야구 초창기의 기억이다. 처음으로 찾아간 지방 야구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있고, 의자 밑은 음료수 캔으로 몸살을 앓았다.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 선수들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허다했었다. 끊임없는 소란과 갖가지 쓰레기가 보기 싫어 한동안 야구장 발길을 끊었었다. 

이젠 야구장의 풍경도 바뀌었고 경기장 문화도 변했다. 어느 날 아들이 전화를 했다. 갑자기 인천을 가시지 않겠느냐고. 웬일이지? 아빠의 생일즈음에 아빠가 좋아하는 경기를 검색해 티켓을 구입한 것이었다. 영원한 두산베어스의 찐 팬인 나를 생각한 아들의 배려였다. 

시골에 살면서도 가끔 야구 경기장을 찾는다. 대전 한화이글스파크를 찾기도 하고, 잠실 나들이도 한다. 야구광 아들 덕에 인천 SSG랜더스필드를 찾아간 기억도 있다. 

엘지 팬인 아들과 가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두산을 응원하고 엘지를 응원하는 부자지간, 올해는 아들팀을 응원하기로 했다. 엘지가 지고 있으면 아내가 더 안달이다. 아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까 아직도 애를 태우고 있다. 남편 팀인 두산을 응원하느라 가슴 졸이고, 아들팀을 응원하느라 애가 탄다.

드디어 한국시리즈 2차전에 엘지가 역전승을 거두자 아내가 더 좋아했다. 두산 경기가 없어 아쉬워도 아들이 응원하는 팀이 남아 있으니 아직은 가을 야구를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만은 두산이 동계훈련과 선수 구성을 잘하길 고대하고 있다. 
 
▲ 야구장의 즐거움 운동경기는 항상 즐겁다. 직접 경기를 하는 것도 즐겁지만,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오랜만에 찾은 야구장이 삶의 활력을 주기도 한다.
ⓒ 박희종
 
소중한 동료 야구팬인 가족들 

야구 경기가 보고 싶은 날이면 어렵게 티켓을 구입했다. 아내와 버스를 타고 강남고속터미널에 내린 후 더듬거리며 지하철에 올랐다. 잠실에 도착해 이리저리 물어 예약석을 찾아가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야구 경기에 몰입해 서너 시간을 보내면서도 걱정이 들곤 했다. 시골까지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 남아서다. 시골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려면 야구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야구장 나들이는 분명 힘들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 또 찾아가게 된다. 

지난번엔 수원에 살던 딸아이가 야구장을 가자고 했다. 사위는 한화 이글스 팬이고, 아들은 엘지 팬이다. 아빠는 두산 팬이니 한 가족이 제각각이다. 아내는 할 수 없이 두산팀이 되었고 딸은 아빠를 위해 야구장을 따라나선다.

손녀는 야구장 관중석 좁은 틈바구니에서도 박수로 할아버지를 응원해 준다. 보통은 두산과 엘지 경기를 관람하는데, 딸 가족이 아빠에게 선심을 쓰며 모든 것을 준비한 것이다. 내게는 자식들이 표를 구하고 차편을 주선하며, 경기장에선 먹거리를 조달해 주는 소중한 '동료 야구팬'이다. 

그날, 아들이 느닷없이 팔짱을 끼고 야구용품점으로 향했다. 얼른 입어 보라는 것은 두산 점퍼였다. 겨울철 배낭여행을 가면 챙겨가는 필수품으로 전 세계를 누비는 유니폼, 바로 그 야구점퍼를 야구장에 초청해 선물한 것이다. 언젠가는 야구모자와 유니폼을 내놓으며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자식들은 인천에 두산 경기를 보러 가자고 하기도 한다. 사위는 잠실 야구 경기 티켓을 구입해 놓고 올라오라 한다. 이만하면 우리 집은 야구 가족인 것이 분명한데, 올 가을은 아들이 선물한 두산 점퍼를 입고 엘지를 응원하고 있다.
 
▲ 야구장을 찾은 가족들 아들과 딸의 준비로 전가족이 모여 잠실 구장을 찾았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야구장이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찾아가곤 한다. 신선함과 짜릿함을 주는 야구경기는 삶에 즐거움을 주는 삶의 활력소다.
ⓒ 박희종
 
늘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야구장인데 

온 가족이 야구에 열광하며 살아가지만 아쉬움은 늘 있다. 야구 경기 하나를 보기 위해 하루를 허비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서울에서 하는 경기를 보려면 버스를 타고 도착해 지하철을 타야 한다. 다시 경기를 관람하고 되돌아오는 수고는 온몸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가끔 손수 운전해 가는 날이면 점심즈음에 출발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 감히 도전하기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야구장에서의 경기 관람은 짜릿함을 얹어주기에 포기할 수 없다. 늘 마음 한켠에 야구장을 두고 산다. 

전 좌석에 가득 찬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응원하는 재미가 있는 야구장인데, 일 년에 두어 번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실, 그나마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티켓을 구입하는 게 도전 불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검색하기도 어렵지만, 버벅거리는 손놀림에 순식간에 매진되어 도전해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끔 아이들이 티켓을 준비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세월이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온라인으로 사전 예매를 받았는데, 그 취소분마저 온라인에 먼저 풀고 남는 것들을 현장 창구에서 판매했다고 한다. 사실상 현장 구매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이 때문에 나처럼 오랜 야구팬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표를 구하지 못해 경기장 앞에서 아쉬움에 발을 떼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 노년의 엘지 팬은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장 판매 10%라도 하면 저는 솔직히 그 전날 매표소 앞에서 밤 12시부터라도 기다려서 (살 거예요.) 제 마음은 그래요. 그래야만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도 표를 구할 수가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야구 경기는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현장의 열기를 잊을 수가 없다. 현장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 팬들이 굳이 경기장을 찾아가는 이유다. 아내는 이야기한다. 집이 서울이면 야구장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짜릿함을 안겨주는 한국시리즈를 현장에서 보고 싶지만, 도전조차 불가능하기에 상상 속으로만 그린다. 오늘도 늙어가는 청춘은 텔레비전으로 한국 시리즈를 본다. 골짜기의 서러운 야구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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