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로 밥하고 국 끓이는 고속도로 휴게소 [고속도로 휴게소 이야기]

K-휴게소 2023. 11. 1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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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하지 않는 휴게소 노후시설 이야기 ①] 아직도 지하수 쓰는 휴게소

'K휴게소' 기자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입니다. 20여 년에 걸쳐 휴게소의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하였으며 국민에게 사랑받는 휴게소,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휴게소를 꿈꾸며 이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기자말>

[K-휴게소 기자]

70~80년대 시골 마당가에는 펌프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물 한 바가지를 붓고 열심히 위아래로 펌프질하면 지하수가 올라오는 도구였는데요. 어머니는 이 물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였습니다. 여름철에는 여기서 등목으로 무더위도 식혔습니다. 물론 마시기도 했죠. 특별한 오염원이 없던 시대였으니깐요. 

고속도로 휴게소로 돌아와 생각해 보겠습니다. 1971년 최초의 고속도로 휴게소인 추풍령 휴게소가 등장한 이래 5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건설된 휴게소는 어떤 물을 사용했을까요? 고속도로 특성상 산간오지에 있는 휴게소에 상수도가 연결되었을 리는 만무할 테고요. 

정답은 지하수입니다. 긴 파이프를 땅에 박아 심정(深井)을 파고 지하에 흐르는 지하수에 연결해 물을 끌어 올려 사용했습니다. 퍼낸 지하수를 모아 두기 위해 휴게소 건물 지하에 물탱크도 만들어 두었죠. 

수십 년이 지난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는 어떨까요?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휴게소 207곳 중 지하수를 사용하는 휴게소가 68곳, 지하수와 상수도를 같이 사용하는 휴게소가 109곳, 상수도만 사용하는 휴게소가 30곳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지하수라고? 그러면 내가 휴게소에서 먹는 물이 지하수였던가? 네. 그렇습니다.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는 휴게소에서 먹는 물은 지하수가 맞습니다. 다만 정수기를 거쳐 정화된 물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물입니다. 

한국도로공사는 휴게소의 먹는 물을 매년 4회, 지하수를 매년 1회 검사합니다. 검사 항목은 먹는 물이 3가지 항목, 지하수가 48개 항목에 이릅니다. 모두 법이 정한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지하수 문제

그런데 여기서 도로공사와 휴게소 직원들만 알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이 아니라 조리에 사용하는 물은 어떨까요?  예를 들어 주방에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물, 커피점의 커피 잔에 담는 물은 어떤 물일까요?

한국도로공사의 한 지역본부 휴게소 물 사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하수를 사용하는 휴게소의 커피점은 모두 정수기를 통하거나 연수 기능(軟水, 침전물과 물때를 제거하거나 줄임)까지 갖춘 정수기를 거쳐 정수된 물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방과 세척실 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거나 밥과 국을 끓일 때 사용하는 물은 정수기를 거치지 않는 지하수 원수(原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 지하수가 수질 검사를 통과한 물이긴 하지만 지하수에 포함된 미세한 모래와 이물질 등을 감안하면, 먹는 음식에 사용되는 지하수가 정말 안전한지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휴게소 지하수 저장 탱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용하는 지하수는 사실 깨끗하지 않다.
ⓒ K휴게소
위 사진에서 보듯 휴게소 지하수 물탱크에는 한두 달만 지나도 펄과 같은 미세한 흙 입자가 가득 쌓입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석회질 성분과 철분이 녹아있는 지하수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 지하수는 깨끗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매년 3회 지하수 물탱크를 청소합니다. 이는 법이 정한 연 2회보다 강화된 관리 규칙입니다. 그러나 이는 물탱크를 깨끗이 한다는 것이지 지하수를 정화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 청소를 마친 지하수 물탱크 고속도로 휴게소는 매년 3회에 걸쳐 물탱크 청소를 하고 있다. 이는 법이 정한 2회보다 강화된 관리 규칙이다.
ⓒ K휴게소
 
휴게소에 구비된 스테인리스 물컵을 보면 하얀 얼룩이 남아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석회질 때문입니다. 일반 정수기로는 석회질 성분을 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하수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연수기(軟水器)를 설치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하수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휴게소에는 연수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로공사가 관련 시설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석회질만이 아닙니다. 어떤 휴게소에서는 철분이, 어떤 휴게소에서는 불소가, 또 다른 휴게소에서는 염분이 나와 골치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런 이물질은 기계를 부식하고 배관을 막아 보일러 가동을 멈추게 하고 조리 기구를 망가뜨립니다. 또 부식된 배관과 기계에서는 녹물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지하수 때문에 휴게소 영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정말로 아무 이상이 없었을까요? 

배관이 없어 이용할 수 없는 수돗물

상수도가 연결된 휴게소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오래전에 지어진 휴게소는 상수도가 지하 물탱크까지만 연결되어 있을 뿐, 휴게소 내부에는 상수도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탱크에 공급된 수돗물은 지하수와 섞인 후 조리실, 매장 등에 공급됩니다. 이곳에서 상수도란 지하수가 부족할 경우(물 부족)를 위한 대비용일 뿐입니다.  
 
▲ 노후된 휴게소 시설 오래전에 지어진 휴게소는 상수도관과 지하수관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 K휴게소
 
상수도가 연결된 휴게소도 막상 상수도를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다중이용시설인 휴게소의 물 사용량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성수기 기준 한 달 물 사용료가 1500만 원을 넘어갑니다. 하수처리 비용도 1500만 원 정도 발생합니다. 휴게소에서 파는 음식만으로 이 모든 비용을 운영사가 감당하기엔 벅찹니다. 도로공사는 휴게소가 제공하는 화장실, 와이파이 등 각종 공공서비스 비용을 보전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도로공사가 정말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휴게소 먹는 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도로 건설에 사용되는 예산의 천분의 일만으로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상수도를 연결할 수 있고 배관을 뜯어고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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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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