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대학살... 사과하는 일본인들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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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와 세계와 역사 속에 일본이 참 여러가지 못된 일을 많이 했는데, 특히 100년 전 관동대학살에 관해서는 그나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행사 바로 전날인 9월 1일에 방영된 <추적 60분> 에 출연한 유족을 다음날 일본에서 만나는 상황이 묘했습니다.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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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신아연 기자]
▲ 100년 전 학살의 진실을 적극 알리며 일본 정부의 사과 촉구 서명을 받고 있는 일본측 추모행사 관계자 |
ⓒ 신아연 |
(* 지난 기사, '무대뽀' 함인숙!에서 이어집니다)
제 시계는 지난 9월 2일로 되풀이 돌아갑니다.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를 쓰면서 저는 많이 웁니다. 이 작은 방에 6661명의 원혼들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꿇어앉혀 목이 잘리고, 쇠갈고리에 머리가 찍힌 채 질질 끌려 다니다 죽어가고, 여자의 하반신에 죽창을 꽂아 그대로 상체를 두 갈래로 갈라 죽음을 맞게 하고... 당시 일본인들은 살인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 숫자가 무려 7000명에 육박합니다. 잔인한 장면의 영화도 보지 못하는 제가 이렇게 직접 묘사를 해봅니다. 제 마음의 무게를 여러분들과 나눠지고 싶어서지요.
▲ 교사라는 생업조차 내려놓고 관동대학살의 진실 규명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리시아키 마사오 봉선화회 회장 |
ⓒ 봉선화회 |
그래서인지 봉선화회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들이 진실 규명과 추모행사를 지속적으로 벌이며 자료 수집 및 책자 발간에 몰두하고 있다는데요, 전에 말씀드린 봉선화회 사무실에도 사방벽을 둘러 키높이로 관련 자료가 쌓여있다고 해요. 그 일을 하기 위해 회장은 생업조차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 100년 전,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 참석자 |
ⓒ 신아연 |
또한 이번 행사에서는 진상 규명에 대한 서명을 받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가해국 국민들은 사과를 하려고 이토록 애를 쓰고 있는데, 정작 피해 당사국은 사과 받을 생각조차 없어 보이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아라카와 강변 추모제에는 희생자 유족들이 한국에서 참석했습니다. 행사 바로 전날인 9월 1일에 방영된 <추적 60분>에 출연한 유족을 다음날 일본에서 만나는 상황이 묘했습니다.
통역이 매끄럽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자기들만의 행사로 그치지 않게 하려고 희생자 유족의 증언을 적극적으로 경청케하는 기획이 돋보였고,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만큼 집중해서 듣는 현장 분위기는 진지하고 숙연했습니다.
▲ 역사적 진실 앞에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상생과 화합을 기원하는 사물놀이 |
ⓒ 신아연 |
두 시간 남짓 진행된 행사는 축제로 마무리됩니다. 과거의 상처를 봉합하고 함께 다시 시작하자는 염원을 담은 우리의 사물놀이는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되어 모든 참석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물결을 이루는 사물놀이 뒤를 시민들과 취재진들이 마치 물고기처럼 따라 흐르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니 가슴팍이 뻐근해지며 또 눈물이 납니다.
자, 이렇게 해서 일본인들의 추모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 일본 국회의사당으로 갑니다. 뭐하러 가냐고요? 일본의회에 반성과 사과, 진상규명을 촉구해야지요. 아라카와 강변 400명 열기에 더해 숫자는 500여 명으로 불어납니다. 밤을 맞도록 식을 줄 모르는 혹독한 무더위 속에서도.
▲ 일본측 행사장에서 만난 어느 참가자 |
ⓒ 신아연 |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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