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대 세터' 폰푼, V리그 적응 완료?
[양형석 기자]
기업은행이 안방에서 도로공사를 완파하고 시즌 3번째 승리를 따냈다.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11일 화성 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20, 25-14, 25-15)으로 승리했다. 풀세트 접전을 벌였던 1라운드와 달리 종합스코어가 75-49였을 정도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기업은행은 시즌 첫 3-0 셧아웃 승리로 3점을 보태면서 도로공사를 제치고 단독 5위로 올라섰다(3승5패).
기업은행은 브리트니 아베크롬비가 블로킹 1개와 서브득점 2개를 곁들이며 20득점으로 공격을 주도했고 황민경이 40%의 공격성공률과 54.55%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기업은행의 주전세터로 자리 잡은 아시아쿼터 폰푼 게드파르드는 노련한 경기운영과 현란한 토스워크로 기업은행의 완승을 이끌며 태국 국가대표 세터의 명성을 과시했다.
▲ 폰푼은 이번 시즌 처음 도입된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기업은행에 지명됐다. |
ⓒ 한국배구연맹 |
기업은행은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세 시즌 동안 팀을 이끌던 김사니 세터가 은퇴를 하면서 세터진에 큰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업은행은 2017년 FA시장에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활약하던 염혜선 세터(정관장 레드스파크스)를 영입했지만 염혜선은 기업은행에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두 시즌 밖에 활약하지 못했다. 오히려 백업이었던 이고은 세터(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의 출전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
기업은행은 2018년 6월 GS칼텍스 KIXX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이고은과 이나연 세터를 맞교환했다. 이나연 세터는 기업은행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선수로 프로 입단 초기에는 이효희(도로공사 코치)라는 대선배의 존재와 부족한 경험 때문에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친정으로 돌아온 이나연은 2018-2019 시즌과 2019-2020 시즌 주전세터로 활약했지만 기업은행은 이나연이 주전으로 활약한 두 시즌 동안 봄 배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9-2020 시즌이 끝나고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볼레로 르 꺄네)이 동시에 FA자격을 얻었고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이재영을 잔류시키고 이다영을 영입하며 전력을 대폭 강화했다. 이다영이 가세하면서 함께 FA자격을 얻었던 조송화 세터는 졸지에 흥국생명 잔류가 힘들어졌고 기업은행은 조송화 세터를 연봉총액 2억7000만 원에 영입했다. 그리고 이나연 세터는 신연경과 트레이드하며 리베로 포지션을 강화했다.
조송화 세터는 2020-2021 시즌 기업은행의 주전세터로 활약하며 세트당 10.79개의 세트(2위)를 성공시키며 기업은행을 봄 배구로 이끌었다. 하지만 조송화는 기업은행의 새 주장으로 선임된 2021-2022 시즌 2라운드 초반 서남원 전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무단이탈했다. 결국 기업은행은 조송화와의 계약파기를 결정했고 조송화는 소송을 제기하며 코트복귀를 노렸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하며 사실상 V리그 복귀가 힘들어졌다.
배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조송화 사태'로 다시 주전 세터를 잃은 기업은행은 백업세터 김하경을 중심으로 힘들게 세터진을 꾸려 나갔다. 작년 6월에는 수원시청에서 활약하던 이솔아 세터를 영입해 세터 강화를 노렸지만 현실적으로 기업은행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명세터 출신 김호철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음에도 두 시즌째 세터난을 해결하지 못하던 기업은행에게 '아시아쿼터'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 폰푼은 단순히 토스를 올려주는 역할뿐 아니라 공격수들을 이끄는 '코트의 야전사령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
ⓒ 한국배구연맹 |
한국배구연맹은 2023-2024 시즌부터 현실적으로 외국인 선수로 선발되기 어려운 아시아 국적의 선수들에게 V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를 주고 구단들에게도 아시아 선수들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아시아쿼터 제도를 신설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은 지난 4월에 열린 첫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뽑아 태국 대표팀의 주전세터이자 주장으로 활약하던 폰푼 세터를 지명했다.
폰푼 세터는 페네르바흐체에서 활약하던 시절 김연경(흥국생명)의 팀 동료였던 태국의 전설적인 세터 눈사라 톰콤의 뒤를 잇는 선수로 태국은 물론 일본과 폴란드, 루마니아 등 해외리그 경력도 풍부하다. 170cm로 신장은 작은 편이지만 현란한 토스워크로 최근 국제대회에서 한국을 괴롭히기도 했다. 루마니아 리그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라피드 부쿨레슈타 구단에서 이다영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폰푼 세터는 아시아 여자배구 선수권대회와 파리 2024 올림픽 예선,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를 치르느라 팀 합류가 다소 늦어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도 없이 곧바로 시즌에 들어갔다. 아무리 폰푼이 뛰어난 기량을 가진 아시아 정상급 세터라 하더라도 동료들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기업은행이 정관장과 현대건설, 흥국생명처럼 세터가 아닌 공격수를 선발해야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업은행은 개막 3연패를 당하며 부진했지만 김호철 감독은 꿋꿋하게 폰푼에게 기회를 줬고 폰푼은 최근 5경기에서 기업은행의 3승을 견인하면서 점점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폰푼은 11일 도로공사전에서 2002년생의 최정민과 2004년생의 임혜림 등 젊은 미들블로커들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한 쪽에 쏠리지 않는 고른 공격 배분을 선보였다. 특히 3세트에서는 폰푼의 트레이드마크인 한 손 토스를 통해 속공득점을 만들기도 했다.
2라운드 2경기 만에 시즌 3번째 승리를 챙겼지만 아직 기업은행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아직 김희진이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서 시즌을 치를수록 점점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기업은행에게 매우 고무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2라운드에 접어들면서 팀 동료들과의 좋은 호흡을 통해 V리그에서 순조로운 적응을 하고 있는 아시아 정상급 세터 폰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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