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공항서 19시간 지연된 비행기… 대법 “정신적 손해배상 인정”
해외에서 비행기가 19시간 넘게 지연돼 귀국이 늦어졌던 승객들이 항공사로부터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승객 77명이 제주항공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각 승객에게 40만원~7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1월 21일, 오전 3시 5분에 필리핀 클락 국제공항을 출발해 오전 8시 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항공기가 엔진 연료공급 이상으로 출발하지 못했다. 예정보다 19시간 25분 늦은 오후 11시경 대체항공기를 타고 귀국한 승객들은 항공기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 및 추가 비용지출에 대해 인당 192만원~447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인당 40만~70만원, 총 5271만원을 배상해야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상고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
배상액은 같은데… 근거는 다 달라
다만 쟁점이었던 ‘몬트리올 협약’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선 재판부마다 해석이 달랐다. 몬트리올 협약은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으로,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협약 당사국인 경우 각 나라의 민법‧상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규약이다. 필리핀과 한국 모두 이 협약에 가입돼 있다. 이 협약 19조는 ‘운송인은 승객·수하물 또는 화물의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협약 19조에 적힌 ‘손해’가 정신적 손해를 포함하는지, 경제적‧재산상 손해에 한정되는지에 대한 판단은 매번 달라졌다. 1심 재판부는 “협약 19조에 따라 정신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봤지만, 2심은 “협약 19조는 손해의 범위를 정하지 않았지만, 국내 손해배상 법리를 적용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몬트리올 협약 19조의 ‘손해’는 경제적‧재산상 손해만 일컫고, 정신적 손해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다르게 판단했다. 다만 “몬트리올 협약이 모든 사항을 다 규율하지는 않기 때문에, 협약 외의 사항인 정신적 손해배상은 국내 법리로 판단할 수 있다”며 원심의 위자료 액수 등 결론은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 관계자는 “몬트리올 협약 19조에 정신적 손해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리를 선언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나도 “인당 40만원 배상” 확정
대법원은 2019년 9월 13일 태국 방콕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항공기가 기체 결함으로 결항돼 8시간~22시간 귀국이 늦어진 승객 269명에 대해서도 “인당 40만원씩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사건 모두에서 항공사들은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다”며 몬트리올 협약이 규정하는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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