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의 선과 악, 그 완벽한 캐스팅 [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㊿]
연기파 배우로 30년 황정민, 탐욕과 뻔뻔함으로 뭉친 괴수로 변신
악역은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 맡겨진다. 인성의 못됨에 비례해 악역의 완성도가 정해지지 않는다, 연기력이 좌우한다. 선역은 배우의 인성에 기댄다. 대중이 TV와 신문, 예능과 뉴스, 입소문과 귀동냥 등 여러 채널을 통해 갖게 된 배우의 선한 이미지가 선역에 대한 신뢰도와 설득력을 높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의 선과 악, 배우 정우성과 황정민의 캐스팅은 완벽하다.
탐욕과 안하무인, 그릇된 세계관과 후안무치로 똘똘 뭉친 전두광은 대한민국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황정민에게 맡겨졌다. 배우 황정민의 집요하고도 끝을 알 수 없는 연기력은 인간의 선을 넘어선 괴수, 악마 전두광(실존인물 전두환에서 착안된 상상의 인물)을 탄생시켰다.
“(민머리로의) 파격적 외모 변신? 쓰읍”. 배우 황정민은 지난 9일 언론시사회 뒤 그게 별거냐는 듯 “작품을 위해서라면, 연기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머리 분장 말고 새롭게 표현해 낸 자신의 연기에 주목해 달라는 요청처럼 들렸다.
맞다. 4시간, 짧아야 3시간 반이 걸렸다는 머리카락 올 성긴 대머리 분장쯤은 황정민이 선보인 악마적 연기의 새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황정민이 탄생시킨 전두광을 보노라면 그 끔찍함에 이가 악물어지고, 이 날뛰는 방종에 치가 떨린다. 화면 안으로 들어가 제거해 버리고 싶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다.
악역을 연기하면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연민을 덧칠하는 연기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악역을 너무 잘해서 벽보의 눈알이 파이고 돌을 맞았다는 배우 윤여정표 장희빈처럼, 미움을 달게 받겠다는 듯 한 치의 타협 없이 지독하게 ‘악독’을 표현한 배우 황정민표 전두광에 소름이 끼친다. 짜릿한 쾌감을 물리도록, 몸서리쳐지게 안긴다. 캐릭터 표현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배우인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만큼 더욱, 그 끝을 보고 싶게 만드는 황정민의 연기다.
브레이크 고장 난 괴물 전두광에 맞서는, 가장 끝까지 맞서는, 유일하게 괴수의 면전까지 가 브레이크를 거는 이태신(실존인물 장태완에서 착안된 상상의 인물)은 배우 정우성의 인성에 기댄다.
예능 ‘런닝맨’에 나가면 젖은 셔츠를 벗고 재킷바람으로 달려야 만큼 열심히 뛰고, 공개 연애하던 연인은 상황이 변해도 끝까지 옹호하는 사람. 정치적 위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던 때 소신껏 민주와 정의를 외치고, 국가 간 분쟁에 의해 자신의 집을 잃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위해 박애를 실천하는 사회인. 그런 정우성이 맡았기에 이태신의 굽힐 줄 모르는 의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짐에도 ‘죽지 않는 양심’을 지닌 인물의 선택에 믿음이 가고 그 명분에 설득되어 응원할 수 있다.
이태신의 전두광을 상대로 한 전투법은 참으로 놀랍다. 인간의 선을 넘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와 싸우면서 인간의 선을 지켜 인간의 모습으로 싸운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선,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나도 괴물이 되어야 했다는 괴변은 없다. 가장 강력한 상대를 상대하는 방법이 언뜻 가장 나약해 보이는 전술이다. 맨몸으로 바리게이트를 넘고, 넘고 또 넘다 총마저 떨어뜨린다. 근데 그래서 더 값지다. 도리어 인간이 나약하지 않음을 항변한다.
다시 말해, 뜨거운 불덩이 같은 전두광=황정민에 맞서 이태신=정우성은 맞불을 놓기보다 본인 표현을 빌자면 ‘억제’와 ‘물러섬’으로 응수했는데, 이태신도 배우 정우성도 빛나 보이게 하는 효과적 전략이다.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황정민,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 당시 두 사람의 배우로서의 장점과 입지는 달랐다. 황정민은 타고날 때부터 연기 잘한 천재처럼 극찬을 받았고, 정우성은 잘생긴 외모와 우수에 찬 감성이 독보적이었다.
30년이 지난 현재, 두 배우가 한 영화 안에서 만났는데 팽팽하다. 여전히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는 황정민. 숱한 배우가 계속해서 유입되는 연기밀림의 왕, 사자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 기적을 행하고 있다. 무서운 노력과 집중이 가져온 결과다.
여전히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자체발광 대한민국 최고 마스크를 지니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멜로가 될 법한 감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우성은 이제 그것들을 승부수로 띄우지 않는다. 영화 ‘증인’ ‘보호자’ ‘헌트’를 거쳐 ‘서울의 봄’에 이르러 위기와 고난이 닥쳐도 ‘죽지 않는 양심’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좋은 연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확인시킨다.
영화 ‘서울의 봄’, 거두절미하고 연기 인생 30년에 다다른 정우성과 황정민의 농익은 연기를 함께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관람의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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