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서 이렇게 뜰 줄 몰랐다…"언니""오빠" 외치는 젊은 대국

박형수 2023. 11. 12.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구 14억명, 평균 연령 27세의 ‘젊은 대국’ 인도에 한류 열풍이 불어닥쳤다. 지난 2020년 최악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장기간 셧다운을 경험한 인도인들은 이 기간 유튜브·넷플릭스 등을 통해 K팝·K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이전까진 한류는 몽골계 소수 민족이 거주하는 동북부 지역에 국한해 소비됐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인도 전역을 강타한 것이다. 최근 K콘텐트에 대한 인기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 K푸드와 K뷰티에 관심으로 급속도로 번지는 중이다.

일각에선 “인도의 뜨거운 한류 열기를 이들의 ‘짝사랑’에 그치게 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엄청난 폭발력과 잠재력을 가진 인도 시장에 주목한다면, 인도의 한류를 기회로 삼아 양국간 본격적인 교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4일~이달 4일(현지시간) 중앙일보를 포함해 6개 국내 언론사가 인도 뭄바이·자이푸르·아그라·뉴델리 4개 도시를 오가며 인도에 불어닥친 한류의 실체를 경험했다.

지난달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한류 축제인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BOF)' K팝 콘서트 현장. 연합뉴스

유튜브 보고 한국말 깨치는 印 10대들


“언니,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왔어요)?”
지난달 25일, 뭄바이의 랜드마크인 ‘게이트웨이오브인디아’에 기자단이 도착하자 한 무리의 인도 10대 소녀들이 다가왔다. 이미 한국인임을 확신한 듯 “언니”라고 호칭하며 다가온 이들에게 “South Korea(한국)”라고 답하자, 소녀들은 환호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멀리 있던 소녀의 친구들까지 뛰어오며 한국어로 “언니, 사진 같이 찍어요”를 외쳤다.

인도에 머문 열흘여 동안 이같은 일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수줍어하는 자녀의 손을 붙들고 “우리 애랑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묻는 인도 부모의 요청도 이어졌다. 뭄바이에서 만난 한 10대 소녀는 “나중에 한국으로 이민 가서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다”며 “유튜브로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인도의 한류가 K콘텐트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한국인과 한국이란 국가 자체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인도인들은 한류의 매력을 “인도와의 정서적 유사성”에서 찾는다. 뉴델리에 사는 한 인도인은 “‘닥터 차정숙’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드라마를 좋아한다”면서 “개인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 우정의 소중함 등에 대해 다루는 K드라마는 할리우드와 다른 한류만의 특징으로, 인도인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인도 청소년들이 뉴델리에 위치한 주인도 한국문화원에 모여 사물놀이를 연습하고 있다. 박형수 기자

'언니' '오빠'…힌디어·영어표현만큼 자연스러워


인도 현지 매체 역시 한류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인디아익스프레스는 지난 2021년 “인도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 시청률이 2019년 대비 370% 증가했다”면서 “인도는 이미 K팝과 K드라마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가 됐다”고 전했다.

인디아타임스는 지난해 “인도에는 1500만 명의 한류팬이 있고, 한류는 그저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다”고 전했다. 매체는 “K콘텐트에 드러난 한국인들의 행동·취향·매너 등은 인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면서 “이 같은 유사성으로 인해 10대와 Z세대가 한류를 거부감 없이 흡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도의 10대들은 Eonnie(언니), Oppa(오빠), Daebak(대박), Kamsahamnida(감사합니다), Annyounghaseyo(안녕하세요), Saranghae(사랑해) 등을 힌디어나 영어 속어만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연예미디어 플랫폼 핑크빌라의 아유시 아그라왈 기자(오른쪽)가 영상을 통해 한국 배우 배수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핑크빌라 홈페이지 캡처]


뭄바이에 위치한 인도 최대 연예미디어플랫폼인 핑크빌라는 한류 콘텐트를 별도 카테고리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곳을 방문하자 K콘텐트를 전담하고 있다는 아유시 아그라왈 기자는 “지금까지 한국 배우 안효섭·배수지, 가수 뉴진스·세븐틴 등을 독점 인터뷰했다”면서 “이들의 인도 내 인기는 어마어마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진출을 꿈꾼다는 인도 배우 아누쉬카 센(21)은 이날 핑크빌라를 방문해 한국 기자단과 만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담긴 창의성이 놀라운 수준”이라며 “한국과 인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센은 최근 한국관광공사의 홍보대사로 임명된 바 있다.

한국관광공사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인도 배우 아누쉬카 센이 핑크빌라에서 한국 기자단을 만나 ″한국과 인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인도에서 한국 중소기업 성공사례 나올 것"


한류는 한국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 물꼬를 터주고 있다. 1일 방문한 뉴델리GBC의 박석찬 소장은 “2020년 9월 인도에 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인도에 한류랄 게 없었는데, 2~3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이제 인도에서 한국 중소기업 성공 사례가 나올 거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망한 분야로는 화장품, K푸드, 태권도복 등을 꼽았다.

빈준화 KOTRA(코트라) 서남아지역본부장 역시 “인도에서 한류가 이렇게 뜰 줄은 아무도 몰랐다”면서 “한국 식품과 화장품, 의류 등 소비재 판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도 매체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한류가 본격화되는 시점인 2021년 오리온 인도의 매출은 전년 대비 400% 증가했다. 인도 현지에서 생산하는 한국 화장품인 필그림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이 2배 뛰었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 화장품 업체가 진행하는 뷰티 클래스에 참석한 인도의 뷰티 인플루언서들. 박형수 기자

"한국이 인도에 관심 보일 때"


일각에선 “현재 인도의 한류는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다”면서 “한국의 한류 스타들이 적극적으로 인도를 찾아 이들의 애정을 발산할 기회를 주고 이 분위기를 키워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델리에서 거주 중이라는 한 한국 기업인은 “인도 친구들이 한국 가수 등 연예인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하는 데 제대로 된 한류 콘서트 한번 열린 적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또 다른 인도 내 한국 기업인은 “만약 한국의 미디어 제작사가 인도 엔터테인먼트사와 합작해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만든다면 인도의 한류는 또 다른 국면이 열릴 것”이라며 “한국의 인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황일용 주인도 한국문화원장은 “인도의 시장성 등 잠재력과 가치를 생각할 때 한류가 만들어 놓은 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엄청난 기회”라면서 “이를 양국간 경제적·외교적 교류로 이어갈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인도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뭄바이=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