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머니, 돈 벌기 어려운 중국 시장서 짐 싼다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9월 FDI, 지난해 9월보다 34%나 급감한 728억 위안에 그쳐
글로벌 기업, 중국서 낸 이익 현지투자보다 본국 이전 본격화
금리차, 中경제둔화, 규제·감시강화, 지정학적 긴장 등 악재
중국에서 외국 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사상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한 데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서 발생한 아익을 6분기 연속 빼내가는 등 외국인들이 대중(對中)투자를 급속히 줄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이 내놓은 ‘2023년 3분기 국제수지잠정’에서 중국의 7~9월 FDI는 118억 달러(약 15조 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6일 보도했다. 중국 외환 당국이 1998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분기별 적자를 낸 것이다. 중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현지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한 '디리스킹'(Derisking)에 나서고 있는 추세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초부터 지지부진하던 중국의 FDI는 지난 5월부터 5개월 연속 두자릿수 줄었으며 하반기로 갈수록 감소폭은 더욱 커졌다. 올해 1∼9월 누적 FDI는 전년보다 8.4% 줄어든 9199억 70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1분기에는 매달 1200억~1400억 위안을 유지했으나 2분기부터 1000억 위안을 밑돌았다. 5월 들어 감소폭이 두자릿수로 확대됐고 급기야 9월에는 지난해 11월(-33.1%)의 최대 감소폭을 경신했다.
특히 지난달 FDI는 9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금융정보 서비스업체인 완더(萬得)정보기술(WIND)에 따르면 9월 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나 급감한 728억 위안(약 13조 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중국 역내 은행이 지난달 고객들에게 순(純)판매한 외환 역시 194억 달러에 달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고조된 2018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다. 은행들이 고객 대신 해외로 순송금한 자금도 539억 달러로 2016년 1월(558억 달러) 이후 가장 많다.
외국 기업들은 2014년부터 지난해 중반까지 단 2분기만 빼고 중국에서 본국으로 송금한 것보다 현지에 투자한 규모가 더 컸다. 2021년에는 재투자 순규모가 170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중반 이런 흐름은 역전됐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간헐적인 봉쇄에 나서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치솟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외국 자본은 해외로 급속히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얻은 이익을 현지에 재투자하지 않고 본국 이전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은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6분기 동안 중국에서 모두 1600억 달러 규모의 이익을 회수해 갔다.
세계자본 흐름을 추적하는 엑산티데이터의 알렉스 에트라 선임 거시전략가는 “외국 기업들의 이윤 본국 이전은 자본 이탈, 탈중국화의 신호탄일 수 있다”며 "이것이 미래 투자의향에 대한 ‘동굴속 카나리아’(위험 예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증권·채권시장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국채등기결산공사(CCDC)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자본의 중국 국채 보유분은 135억 위안가량 감소한 2조 700억 위안이다. 2021년 3월 이후 최저치다. WIND에 따르면 8~10월 외국인 투자자들은 홍콩과 상하이(上海), 선전(深圳)증시 간 거래를 통해 위안화 표시 주식을 230억 달러 이상을 내다팔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이익을 재투자하지 않고 환수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미·중 간 금리격차가 20년 사이 최고 수준까지 벌어진 점을 들 수 있다.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서 돈을 중국에 묶어 두기보다 서방에 보관하는 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덕분이다. 미 연준과 서방 중앙은행들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중국은 부동산시장 붕괴를 막고 경기부양을 위해 오히려 금리를 내리는 상황이다.
중국경제 둔화와 지정학적 긴장고조도 큰 악재다. 중국경제의 회복세가 더딘 데다 대만을 둘러싼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갈등, 미·중 간의 패권다툼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로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의존적인 공급망이 언제든 닫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반간첩법 시행 등 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규제·감시 강화와 중국내 ‘궈차오(國潮·애국소비) 열풍’ 등이 서방 기업들에 부담이 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의 자산운용사 유니온뱅카프리베의 피터 킨셀라 외환전략 책임자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 리스크 축소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본유출이 위안화 환율상승(통화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로써 위안화 환율이 상승하면 또다시 자본유출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까닭이다. 골드만삭스는 “미·중 금리격차는 앞으로 몇 달간 계속 위안화 가치 하락과 자본유출 압력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다급한 중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올인’하는 모양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설 예정이다. 시 주석이 이달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미국 기업인들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국 재계 최고위급 인사들과 만찬에 나설 계획이며 만찬 자리에는 기업인 수백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행사는 아시아소사이어티와 미국상공회의소 등이 공동 후원하고 참석 비용은 2000달러 수준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팀 쿡 애플 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 행사가 오는 15일 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이 해외에서 기업인을 직접 만나 연설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중국에 점차 등을 돌리고 있는 서방 기업들을 붙잡으려는 제스처로 해석되는 이유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의 미국 방문 중 우선순위가 높은 것은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진정시키는 것”이라며 “서방 기업들의 경영진은 최근 중국사업에 대해 점점 더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도 외국 자본에 대한 투자제한을 대폭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지원에 나섰다. 수줴팅(束珏婷) 상무부 대변인은 2일 “외국인 투자 허가 ‘네거티브 리스트’(외국인의 시장 참여제한 영역을 특정한 목록)의 합리적인 축소를 연구하고, 제조업의 외국인 투자 허가제한 조치를 전면 취소할 것”이라며 “서비스업의 외국인 투자 시장진입 허가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에 영향을 주는 숨겨진 장벽을 허물고 국내외 자본에 법에 따른 평등한 진입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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