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랑의 마스터 퍼퓨머, 티에리 바세가 한국에 방문했다고?
Q : 한국에서 보게 돼 영광이에요. 오랜만에 서울을 방문한 소감은 어떤가요?
A : 이번 방문은 무척이나 특별합니다. 올해 가장 좋은 시기에 방문한 것 같아요.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공항에서부터 많은 변화를 느꼈죠.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다리와 높은 건물들이 얼마나 역동적인지. 막상 서울에 도착해서는 호텔도 그렇고 산 배경과 함께 이 궁의 전망까지도 제가 기억하던 대로라 친숙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어요. 우리가 인터뷰 중인 이 한옥에 도착했을 때 저는 이 집을 사고 싶을 만큼 이 공간에 매료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여러 아시아 지역을 여행해보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문화와 언어, 기후가 달라 각각이 특별해요. 이 공간에서는 평화의 미학이 느껴진달까요.
Q : 한국을 향수로 표현한다면 어떤 향이 어울릴까요?
A : 한번 생각해봐야겠네요.(웃음) 한국은 모든 것이 아주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향이 느껴지지 않기도 해요.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주의를 기울이면 작고 미묘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막연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향수를 만드는 일은 언어와 같아 경험과 교감을 향기의 이야기로 풀어내야 합니다. 향수 원재료는 단어와 비슷해요.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단어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들이 하나둘씩 합쳐지면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는데, 당장은 감나무와 감잎 차가 생각납니다.
Q : 겔랑의 마스터 조향사로서 조향 철학이 궁금해요. 향수를 만들 때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A : 해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향기란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예를 들어 장미는 성숙하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제게 불가리아에서 온 로즈 오일은 과일 향이 나고 천진난만하게 느껴지지만 같은 향이라도 누군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언어로 향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Q : 그렇다면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의 신작 ‘토바코 허니’에 대한 당신의 해석이 궁금해요.
A : 향수를 출시한 이상 향기는 대중을 감동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더 이상 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것이죠. 토바코 허니에 대한 제 의견과 여러분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그래서 향수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제 해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완전히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향수는 당신의 것이어야 해요.
Q : 어릴 때 꿈은 요리사였다고 들었어요.
A : 제가 게을렀기 때문에 요리사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과정이었어요.(웃음) 청소년기에 호텔 주방에서 짧게나마 인턴십을 경험했는데, 저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것과 100명의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야 했죠. 저는 민감한 꽃 같은 사람이라 그걸 못 견뎠지만 요리하는 건 굉장히 좋아했어요. 음식을 만들며 맛을 보고, 소금을 더 넣거나 후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과정이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 폴 겔랑도 훌륭한 요리사였고, 많은 조향사가 요리하는 과정을 즐기죠.
Q : 조향사라는 직업을 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A : 정말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허벌리스트로 수습 기간을 거친 후 스위스 제네바의 향수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어린 나이에 향수 만드는 일이 꽤나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겔랑에 있게 됐죠.
Q :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노스탤지어가 담긴 향이 있을까요?
A : 살구는 향이 강한 과일이 아닌데, 오븐이나 로즈메리가 든 팬에 굽기 시작하면 꽤나 진한 향을 풍기죠. 구운 살구 향은 저를 50년 전 어린 시절의 행복한 순간으로 돌려놓습니다. 향기에는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Q : 조향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A : 모든 순간 아닐까요? 풍경일 수도 있고, 맛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그 순간을 진정으로 느끼고 호기심을 가져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두바이에서 하얀 턱수염을 예쁘게 다듬은 나이 든 신사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는 제게 자신의 일상은 물론 향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중동 남자에게 향기를 맡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었죠. 파리에 돌아와서 그 대화가 생생히 떠올랐고, 저는 그 추억의 향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영감이 될 수 있어요.
Q : ‘티에리 바세’를 대표하는 향수가 있다면 어떤 향수일까요?
A : 1965년의 장 폴 겔랑이 만든 아비 루즈가 아닐까요? 보다시피, 저는 언제나 하얀 셔츠에 진한 파란색 슈트를 입는 사람입니다. 향수 또한 13살부터 62살이 된 지금까지 근 50년 동안 같은 향수를 쓰고 있죠. 13살 때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수염이 나지 않아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 나이 때 아이들은 다른 의미로 잔인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방법이 엄마 친구에게서 나는 향수를 뿌리는 거였습니다. 이 향은 제게 남자다움을 선물했고 행운의 부적이 됐죠.
Q : 당신이 정의하는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는 어떤 컬렉션인가요? 무엇이 이 컬렉션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궁금해요.
A : 1828년부터 예술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열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향수를 창조해온 겔랑 하우스는 겔랑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을 통해 단순한 향이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컬렉션은 엄선된 원료에 대한 겔랑만의 대담한 해석을 담아 주인공이 되는 하나 또는 2가지 원료를 중심으로 무대를 올린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는데요, 희귀한 원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이 컬렉션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Q : 예술과 향수는 연관성을 가질까요?
A : 예술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일상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되는 거죠. 향수는 향이라는 예술적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Q : 최근 빠져 있는 향조가 궁금합니다.
A : 우드. 어떤 나무를 사용하는지, 어느 지역에서 자라나는지에 따라 향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가공 방법에 따라서도 다채로운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적인 원료라고 생각합니다.
Q : 겔랑은 뷰티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브랜드입니다. 이러한 브랜드의 정신이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의 원료 선택이나 패키징 등에도 담겨 있나요?
A : 그렇습니다. 원료를 조달하는 방식은 항상 윤리적으로 진행되며, 2019년부터 UEBT(연합 생물 다양성 전문 기관)의 회원이 돼 우리의 원료 조달 경로의 지속 가능성 상태를 측정하는 데 도움을 받고, 필요한 경우 개선 계획을 수립합니다. 앞으로는 아쿠아 알레고리아와 같이 리필 가능하도록 병을 제작할 거고 재활용 유리를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Q : 앞으로 선보일 작업에 대해 살짝 귀띔한다면?
A :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꾸준히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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