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가 때로는 해법이 될 수 있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17)

2023. 11. 11. 21: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책의 소개에 앞서, 책의 내용 중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장을 독자들에게 먼저 알려주고 글을 시작하고 싶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현재의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 지출을 또 한 번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간단할까? 정말 그렇게 쉬울까? 그렇다.”

도발적인 문구를 날린, 책의 저자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국제무역론을 전공했고 거시경제, 거시금융, 금융위기 등을 주로 연구한다. 불완전 경쟁 시장에서 국제무역을 분석해 무역이론과 경제지리학을 통합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케인스 학파며 양적 완화를 지지하는 자유무역론자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위기의 원인보다 극복에 집중하자

책은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나고 4년 후인 2012년 4월에 출간됐다. 금융위기 이후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부분 전문가와 매체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주택담보대출 증권화, 부동산 버블 같은 금융위기를 야기한 문제들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금융위기를 야기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원인을 자세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원인 규명과 이해가 정확해야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2012년까지도 대부분 전문가들이 금융위기 원인에 대해 이야기할 뿐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기 침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금융위기 ‘원인’을 밝히는 데 들일 노력을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침체를 ‘해결’하는 데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잘 작동하지 않는 금융 시장으로 인해 대공황 이래 최고의 경제 침체를 마주하고 있던 세계 각국의 경제위기를 종식시키기 위한 크루그먼의 직관적이고도 직접적인 처방을 담고 있다.

크루그먼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당시 미국 경제가 마주하고 있던 경기 침체는 1929년 대공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대공황 당시 경기 부진과 부분적인 경기 회복이 반복된 것 또한 2012년 상황과 비교해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가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케인스가 제시한 대공황 탈출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정부에 재정 지출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높은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펼쳐야 한다는 케인스 이론을 적용하라는 것. 정부가 과감히 지출을 늘리면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과 고통을 애초부터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간단한 해법을 두고도 정치가들이 의지가 부족해 회복으로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책은 경제위기의 비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크루그먼은 장기 실업이 사람들 삶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케인스의 주장을 강조한다.

양적 완화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말라

“지출이 곧 수입이다.”

이후 책은 3장부터 11장까지 논의를 전개하는 동안 민스키 모멘트, 소득 불평등, 케인스의 이론, 피셔의 인플레이션 이론 등의 굵직한 거시경제 이론을 검토하고 이런 이론으로부터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함의를 도출한다.

크루그먼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양적 완화 정책은 대응 규모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인 ‘미국 회복·재투자법’은 이 위기를 끝내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리고 완전한 경기 회복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정책 변경을 제안했다.

첫째, 정부는 민간 부문이 생산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곳에 지출해야 한다. 경기 회복과 함께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적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둘째, 중앙은행은 보다 공격적인 양적 완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완만하게 높은 인플레이션을 허용해야 한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출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부채의 실질 가치를 줄임으로써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주택 부채 탕감을 통해 상환 부담을 줄여야 한다.

2023년 현재의 경제 정책 방향과 완전히 배치되는 이야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금융위기가 가져온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을 사는 우리들은 이 책에 다시 관심을 가져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경제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을 참고하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가 취하고 있는 경제 정책과 이 책이 제시하는 정책은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금리를 올리고 시중 유동성을 줄여가며 인플레이션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책이 발간되고 많은 비판이 있었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2012년 크루그먼과 전면 배치되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보조금, 실업수당, 무료 식량 지원 등 수많은 복지 프로그램이 크게 확대되고, 그 결과 사회의 구성원들은 노동 시장을 떠나 일을 하지 않거나 정규직이 아닌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크루그먼이 주장한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연준의 저금리 정책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과도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베커의 지적은 10년 뒤인 2022년 현실이 됐다.

크루그먼은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한 경기 부양책에 대해, 대규모 재정 지출에도 물가가 크게 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는 소비보다 저축할 가능성이 높고,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원을 점진적으로 사용해 시중 통화량이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본적으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에서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미국은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결과적으로 크루그먼은 2022년 7월 21일 뉴욕타임스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과거의 경제 모델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거 모델을 적용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아니었다”고 자신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예측이 틀렸다고 사과하는 기고문을 올렸다.

그럼 크루그먼과 그의 책,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틀렸을까? 꼭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크루그먼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또한 ‘결과적으로’라는 말 또한 2023년 기준이다. 미래에는 또 ‘결과적으로’의 시점이 바뀐다. 그러므로 미래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경제 정책을 논함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