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가 출금 요청 거부해 손해 봤다면? [생활 속 법률 이야기]

2023. 11. 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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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분쟁의 특수성

가상자산이 등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 경제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이 성장했다. 가상자산 투자 규모도 폭증했다. 가상자산 투자나 거래는 이제 일상이 됐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의 ‘오해’도 같이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을 설명하면서 금융 용어들을 끌어들여 쓴 탓이다. 가상자산의 법적·금융적 위치에 대한 오해가 상당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중앙화거래소(CEX)에서 가상자산 투자와 거래를 한다. 편리하게 투자나 거래가 가능하고, 고객 확인(KYC)을 제대로 마치면 원화로의 환전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화된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직접적으로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행 예금, 주식 예수금과 똑같이 생각하는 고객이 꽤 되는데, 이는 오해다. 거래소 내 장부상으로만 자산이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거래소와 이용자 사이 관계는 채권채무 관계에 불과하다. 즉, 이용자는 거래소에 대해 내 자산으로 계상돼 있는 가상자산이나 원화의 반환을 구할 수 있는 채권만 갖고 있다. 그 채권채무 관계에 대해서는 거래소 이용약관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거래소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용약관 혹은 미리 공지한 방침에 따라 이용자의 가상자산 출금 요청을 거부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이용자 입장에서 본인이 원하는 시점에 가상자산을 출금하지 못해 기회이익 등을 상실할 수 있다. 24시간 내내 거래가 이뤄지고 가격이 급변하는 가상자산 특성상 몇 시간만 출금이 막혀도 막대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거래소 결정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용자들이 출금을 방해하는 ‘불법행위’라며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이용자는 해당 가상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권이 없다. 거래소에 대해 이용약관에 기초한 채권을 가질 뿐이다. 거래소의 출금 제한 조치가 이용약관에 근거할 경우, 애당초 채무불이행이나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뿐 아니라 가상자산 가치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많고 거래소마다 가격에 차이도 있기 때문에 이용자가 주장하는 기회이익 상실 등의 손해가 인정되려면 상당한 수준의 입증이 이뤄져야 한다.

탈중앙화거래소(DEX)를 이용하는 경우는 셈법이 더 복잡해진다. 탈중앙화거래소는 개인이 개인지갑에 보유하고 있는 가상자산을 직접 다른 개인과 교환하는 구조다. 거래소는 플랫폼과 유동성 풀만 제공할 뿐이다. 이용자와 거래소 사이 권리의무 관계가 인정되기 어렵거나 제한적이다. 거래 관련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어떤 주체에게 어떤 법적 조치를 해야 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지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가상자산을 탈취하는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해킹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개인키를 알아내거나, 개인키를 공유받아서 거래를 일임받은 사람이 배신을 해 가상자산을 탈취하는 경우 등이 종종 있다. 가상자산을 탈취한 자는 형사적으로 처벌을 받게 될 뿐, 원래 소유자에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도 부담하게 되는데, 가상자산의 가치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배상 방법 관련해 다툼이 생긴다. 이때의 다툼 또한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금융 분쟁과 다르게 흘러간다.

이렇듯 가상자산 관련 분쟁은 기존과 사뭇 다른 이슈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질이나 강제집행 방법 등 이론적으로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 탓이다. 금융 용어 등과 헷갈려 일반적인 금융 분쟁으로 접근하면, 해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기존 법리를 가상자산에 적합하게 잘 해석·적용하는 것뿐 아니라, 이론적·제도적 보완, 법 실무 사례 축적 등을 통해 가상자산 분쟁 관련 기준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김익현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3호 (2023.11.08~2023.11.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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