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재산파산제도를 아시나요?
[배운기 기자]
어떤 사건기록을 보다 업무용 PC 화면에 눈길이 멈췄다. 아주 한참 동안...
사건 기록을 들추다 보면 때때로 가슴 아픈 사연들을 만난다. 이 사건은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뒤 홀어머니가 상속재산 파산신청을 한 사안이었다. 신청서와 첨부서면을 보고는 가슴 한쪽이 먹먹했다. 아들의 흔적이 종이 몇 장으로 남아있는 부존재의 증명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어머니는 앞으로 어떤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갈까? 사업을 했던 아들의 사후에 남은 빚을 처리하기 위해서... 법원에 어떤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하였을까? 우리의 삶은 사칙연산의 모든 기호들이 사용된다.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빼고. 수학적으로는 연산기호에 따른 계산순서나 방법이 있지만, 그러한 약속이 인간의 삶 속에는 바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삶은 마지막에 마이너스 기호만 남는다.
이러한 사건은 예외적이고, 대부분의 상속재산파산 신청은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 자식이 신청한다. 최근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A는 황망한 마음에 상을 치르고 더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그럭저럭 사업을 통해 남매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했던 아버지에게 그토록 많은 채무가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버지에게는 오래되었지만 아파트도 한 채 있었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빚의 존재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어찌되었건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통해 17개 항목의 상속재산에 대한 내역을 한꺼번에 조회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런 서비스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돌아가신 부모의 채무 정리가 고민이라면?
A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변호사인 친구 B에게 물었다.
"응 그거는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승인을 통해 채무를 정리하면 되는데... 보다 근본적으로는 상속재산 파산신청을 하면 더 바람직하지."
법률용어나 법률지식에 문외한인 A는 친구의 설명만 듣고도 머리가 빙빙 돌았다. 법하고는 거리가 먼 공대 출신이어서 친구에게 좀 더 상세한 조언을 구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해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사실 그 부분이 머리 아프지. 언뜻 민법상 절차는 단순해보이지만... 상속포기는 민법상 상속순위에 있는 전부가 포기해야 의미가 있어서. 혹시라도 거기서 누군가 누락되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
한정승인은 공고나 통지 등 일체의 청산절차를 직접 상속인이 진행하여야 하고, 상속채권자들의 개별소송이나 강제집행 등에 대해서도 알아서 대응해야 하는데. 사실 법률전문가가 아니고서는 개인이 진행하기는 곤란해. 어디서 어떻게 해야 될지, 채권자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특히 피상속인의 경제활동 규모가 크고 그 내용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지.
따지고 보면 상속재산파산은 상속재산 청산을 위한 제도 중 가장 공정하고 엄격한 절차라고 할 수 있어. 상속재산 파산을 신청하면 모든 재산이 파산재단을 구성하고,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에 의해 청산절차가 진행되어 복잡한 권리관계도 일률적으로 처리할 수가 있지. 상속채권자 입장에서도 법원이 진행하는 청산절차를 더 신뢰할 수 있는 장점도 크고 말이야."
"혹시라도 자식들이 부모의 빚의 존재를 모르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가정이라도 그런 상황이 오면 되게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지. 실제 사례도 많이 존재하는데 상속포기나 한정승인도 없이 단순 상속이 이루어졌다면, 어쩔 수 없이 모든 채무를 상속하게 돼서 자식들이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많아. 그래서 상속재산파산이라는 제도가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럼 상속재산 파산신청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지? 그걸 자네가 대리해주면 안 될까?"
"허허허. 그렇다면 변호사 수임료는 에누리 없이 원칙대로 하는 거지? 그런데 너는 아버지랑 어떻게 지냈기에 집안 속사정도 모르고 살았어?"
"음... 나도 보이는 게 전부인줄 알았지. 막상 그런 사정이 있는지 부모님이 얘길 안하시면 잘 모르기도 하고..."
상속재산파산의 신청과 그 처리과정
A의 대리인 변호사 B는 상속재산파산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에 신청인과 채무자(망인의 상속재산)를 기재하고, 파산선고와 더불어 파산관재인 선임해달라는 신청취지를 기재했다. 신청서와 함께 서울가정법원의 한정승인 결정문, 피상속인의 사망 관련 서면,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에 관한 증명, 상속비용 등에 관련된 서류를 첨부했다.
신청인(대리인 포함)이 상속재산파산을 신청하면 회생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절차가 진행된다.
1. 먼저 담당 재판부의 판사가 상속재산 파산을 선고하고 당해사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파산관재인 선임결정을 한다. 2. 파산관재인은 당해 사건에 관한 채무자 기본정보와 채권 채무에 대한 조사를 하여 보고한다. 3. 채권자 집회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진술을 듣고 파산관재인의 진술이 기재된 파산관재인 보고서를 끝으로 자산매각에 관한 절차가 진행된다. 4. 부동산이 있는 경우 부동산에 대한 파산선고 기입등기를 촉탁하고 재판부의 매매계약 허가를 얻어 부동산 매각을 진행한다. 5. 동산 등 각 재산에 대해 환가절차가 끝나고 채권자들에 대한 최후 배당이 되면 절차는 채무자 파산종결 공고로 사건은 종결된다.
물론 상속재산파산 절차를 이용하더라도 상속재산에 대한 세금(취득세 등)은 납부해야 한다. 이에 대한 작은 의문이 있지만... 상속재산파산제도는 상속재산이 파산재단으로 바뀌어져 그 관리처분권이 파산관재인에게 귀속될 뿐 상속 본연의 효과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상속에 대한 한정승인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상속재산파산제도는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신청비율이 낮다. 그 신청 비율은 서울회생법원에 제출된 2023년 9월 파산신청 총 722건 중 파산신청이 701건(97.09%), 상속재산파산 신청이 21건(2.91%)이다. 연중 통계로 보더라도 이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첫째 상속재산파산제도 자체와 장점에 대한 홍보가 안 되어 있고, 둘째 상속재산파산제도는 파산제도의 일종으로 신청인이 사회적 낙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셋째는 아직까지 신청 자체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본의 민법상의 한정승인과 재산분리제도를 통합하여 상속재산파산으로 제도를 일원화시키는 입법도 고려해볼만하다.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부자 아빠는 누군가에게 자랑이자 소망이지만, 가난한 아빠는 누군가에게 불편함이자 상처가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의 제목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 알라딘 |
문득, 한때 부자 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유행이었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가 떠올랐다. 재테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로버트 기요사키가 저자다. 이 책은 부모들에게 부자부모로서의 생존법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富)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였을 터이다. 돈과 부자에 관한 생각과 행동, 그 차이가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거나 가난한 이로 만든다는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의 벽과 장애다. 기요사키의 말처럼 현금의 흐름과 시간과 사람을 관리하고, 보다 근본적인 두려움을 분석한다 해도 누구나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왜냐면 여기에는 필요충분조건과 복잡성이라는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몇 개의 그럴듯한 공식으로 풀이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다. 단순한 사칙연산에 시공간적 차원이 더해져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부자 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경제적 안정과 부를 물려주는 것은 부모들의 본능이자 희망이다. 어떤 부모는 강남의 아파트와 주식을 남겨주고, 또 다른 어떤 부모는 개발 예정지의 땅과 고액의 현금을 남겨주기도 했을 터이다.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적극재산(고인의 남은 재산 전부)은 고사하고 소극재산(빚으로 표현되는 채무 전부)만 잔뜩 물려주고 떠난 부모도 있을 것이다.
채무만 잔뜩 남기고 떠난 부모를, 자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왜 우리 부모는 이토록 가혹한 현실을 주었을까? 아니면 어떻게 살았기에 결국 마이너스인 인생을 살았을까? 부모의 빚은 그 자체도 부담이지만, 자식들의 성장과정에 어떤 식으로든지 생채기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부모의 부채 인생이 자식들의 생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최근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듣다보니 상속에 관한 광고가 흘러갔다. 명배우 박인환씨가 출연하는 상속신탁에 관한 광고였다. OO은행의 유언대용신탁에 관한 이야기. 아마도 박인환씨가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인기 드라마 '기막힌 유산'에 출연한 덕분일 것이다.
"우리 나이에는 재산을 물려주는 게 걱정이죠? 내 재산 내 뜻대로 상속하고 싶다면?"
상속 관련 신탁상품 광고 멘트를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서로 상반된 생각들이 교차하지 않을까?
"그래 바로 내 얘기야. 어차피 애들한테 물려줄 거. 지금 당장 OO은행에 한 번 알아볼까? 피같은 세금도 절약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우리 노후에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물려줄 것을 생각한다고 언감생심. 지들 인생은 지들이 알아서 해야지."
네 아이의 부모로서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자타가 부러워하는 건물주의 지위, 귀금속 성분의 수저 계급, 의사 등 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아이들. 그 무엇 하나 부럽지 않은 것이 없으나, 소심하게도 개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모진 풍파에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강한 멘탈과 언제든지 자신과 타인에게 보여줄 다정다감함 정도가 좋지 않을까! 물론 이 두 가지마저도 부모가 원한다고 물려줄 수는 없다. 부모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고 아이들이 느끼면서 배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사칙연산부터 미적분을 지나 행렬까지 복잡계를 통해 나타나지만, 공식 없이 진행되고 마땅한 해(解) 없이 사라진다. 평범한 우리 대부분의 삶이 그러하다. 다시금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부모의 남겨진 삶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한 상속재산파산 제도에 적잖은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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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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