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윤석열이 공무원을 다루는 방식, 이렇게 달랐다
[슬로우뉴스 이정환 기자]
1. "장관님, 고성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2. "장관님, 지금 고성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이 보좌관에게 요구한 건 2번이었다. 보좌관이 알아서 판단하지 말고 일단 보고할 것. 밤이든 새벽이든 일단 잠을 깨우고 현장에 달려가게 할 것.
▲ 책 <정부가 없다>(정혜승) |
ⓒ 메디치미디어 |
김부겸이 현장에 달려 갔던 건 현장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의전 챙기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다만 최고 책임자가 중요한 판단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장관이 '내가 책임질 테니 해보자'고 할 때 일이 진행된다. 그렇게 고성 산불 당시 소방차 872대와 소방대원 등 1만여 명의 인력이 하루 만에 모여들었다.
조직은 모두가 인사권자를 바라본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유능하다. 위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기막히게 잘 안다." 정혜승이 만난 전직 장관의 이야기다. 일 잘하던 공무원들이 갑자기 멍청하고 게을러진 것일까.
정혜승은 윤석열 정부 들어 ABM(Anything But Moon,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 기조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고 코로나 대책을 '정치 방역'이라 비난하고 '과학 방역'을 하겠다고 나섰다. 멀쩡히 일 잘 하던 공무원들을 적폐 부역자처럼 내몰았다. 소득 주도 성장을 뒤집었고 공공 지출을 틀어쥐었다.
윤석열은 "59분 대통령"이란 별명이 나올 정도로 회의 시간을 독차지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의 한 논설주간은 "대통령의 강한 자기 확신은 상대방 입을 닫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언젠가부터 공무원들이 '사고만 안 터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기만 하는 듯하다.
민주당에서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을 문책해야 한다고 하니 윤석열이 이런 말을 했다.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이상민은 탄핵됐다가 돌아와서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혜승은 "참사의 가장 나쁜 대응이 수사"라고 했다. 재난을 직면하고 조사하고 원인을 밝혀내야 하는데 수사를 하면 서로 책임을 미루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수사 자료는 캐비닛에 들어가고 말단 공무원들만 날아간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국민들은 뭐가 잘못됐는지 뭐가 해결됐는지 알 수 없다.
정혜승이 만난 윤석열 정부 국장급 공무원은 "일을 하지 않을수록 안전하다"고 했다. "잘 나가면 중요한 일을 맡아야 하고 중요한 일을 맡으면 위험하니까." 잘 나가던 동료들이 검찰과 감사원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는 걸 보면서 복지부동이 최선의 전략이란 걸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1월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지난달 31일 이후 엿새 연속으로 조문했다. |
ⓒ 유성호 |
사회적 참사 특별 조사위 사무처장을 지낸 오지원은 우리 사회가 참사에 직면하는 방법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재난 관리 책임자들이 스스로 역할과 책무를 인식하고 어디서 잘못됐는지 확인하고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
셋째, 피해자들이 화합하고 연대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우리 사회가 그것을 왜곡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넷 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첫째, 정부는 역할과 책임을 부정했고 둘째, 수사만 하고 조사는 없었다. 셋째, 피해자들의 연대를 방해했고 넷째, 피해자들을 방치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크리스 아지리스에 따르면 행동과 결과에 집중하는 단일 순환학습(single loop learning)은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는 사람이 많이 몰리면(행동) 사고가 발생한다(결과)는 걸 알게 됐지만 언제라도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중 순환 학습(double loop learning)은 단순히 인과 관계를 넘어 문제의 원인이 되는 가정과 신념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 과정을 빠뜨렸다.
서울대 교수 이재열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러 차례 조사 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비난의 정치만 증폭됐다"면서 "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는 정치적 갈등은 커졌는데 정작 8년이 지나고도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이진석은 만약 현직에 있다면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생각해 봤다고 한다.
애초에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비서실장이나 국정상황실에서 누구라도 한 명 챙겼을 것이고 윗선에서 한 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청와대에서 관심을 갖고 있구나, 중요하게 챙기는구나, 혹시 문제 생기면 큰일이구나,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면 달라진다. 경찰이든 소방이든 늘 하는 일이고 프로토콜만 챙기면 된다. 윗선의 관심사와 우선 순위가 중요하다."
정혜승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리더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면서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리더"라고 강조했다.
콘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않았다
과연 문재인 정부라면 달랐을까. 국정상황실장 출신의 윤건영은 "공직 사회는 에이스 몇 명이 끌고 간다"면서 "루틴은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작동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잘한다"고 지적했다. "스팟(돌발 업무)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리더십과 리더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임종석(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런 말을 했다.
"여의도 불꽃축제나 퀴어퍼레이드처럼 일정 규모 이상 인파가 모일 것 같으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인파를 얼마나 예상하냐, 지하철 무정차는 몇 군데 할 거냐, 서울시가 경찰에 협조도 요청해 경찰 배치하고 예산 지원도 하고. 민간 행사라 해도 그만한 행사인지 인지 못 했다면 부작위의 책임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1조5000억 원을 들여 경찰청과 소방청, 해경을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등 300개 이상의 유관기관이 동시에 소통할 수 있는 재난안전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이태원 참사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정혜승은 "위기 관리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위기관리 센터를 비롯해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전 대통령)도 확실히 윤석열과는 달랐던 것 같다.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이 여러 차례 묻는다. "기름 확산 막을 수 있습니까." 청장이 비용 문제 등등 엉뚱한 답변을 하자 노무현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필요 이상 많은 자원을 동원해 비용 낭비가 생겨 과잉 방어 소리를 듣더라도 총동원해야 합니다. 안 되면 외국 자재를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나중에 배상을 받을 것은 법대로 받으면 되고, 그 이상은 정부 지원 예산으로 처리할 것입니다. 비용 받느냐 못 받느냐를 계산해서 장비와 인력 투입을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어선을 다 동원하십시오. 펜스가 시원찮으면 두 벌 치고 세 벌 쳐서, 중국이나 일본에도 비행기를 보내서 성능 좋은 펜스를 빌려오든 사오든, 어떤 경우에도 여기서 더 확산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총동원하십시오.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 [사고대처의 정석] 태안 기름유출 당시 노무현 대통령 ⓒ YTN |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지낸 박두용의 진단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일깨운다.
"정상적인 조직이나 정상적인 체계에서 정상적인 인력이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3시간 전부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신호가 있었지만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거나 이미 예견된 사고라는 사후 확증편향은 이것 때문에 (또는 너희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식의 원인 확증편향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원인을 찾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치명적인 독이 된다."
"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고장난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혜승은 "영혼 없는 공무원 탓은 이제 그만 하자"고 제안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게 당연할 뿐더러 그게 맞다"는 고위 공직자의 말도 있었다. 공무원들은 시키는 대로 한다. 시키는 일을 잘 하게 하기 위해 꼼꼼하게 현안을 점검하고 지시하고 여러 단계의 회의를 하는 것이다.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정혜승은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단순히 대통령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고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해서 발생한 사고도 아니다. 정치의 실패고 정부의 실패다.
"신고가 들어왔을 때 기동대를 이쪽에서 빼서 이쪽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라면 그걸 누가 결정할 건가. 결국 누가 판단을 하고 그 책임을 질 거냐의 문제가 된다. 이런 걸 위기관리 센터에서 취합해서 판단하고 지시하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참여정부 때는 위기관리 센터를 비서관급으로 만들었는데 이명박 때 행정관급으로 낮췄고, 박근혜 때는 뭘 했는지 모르겠고 문재인 때 비서관급으로 다시 높였다. 그때는 뭔가 돌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일이 터졌을 때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장관이 언제라도 전화를 받고 뛰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위기관리 센터 사람들을 거의 다 갈아치웠다고 들었다.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벙커도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했다. 어디선가 구멍이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아주대 교수 강명구는 공무원이 영혼없는 철밥통을 벗어나려면 두 가지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첫째, 중앙집권화 대신 분권화로 가야 하고 둘째, 자율성을 확보해줘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 글로벌 우수 신진 연구자와의 대화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일 대전시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열린 글로벌 우수 신진 연구자들과 대화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정혜승은 다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리더"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이건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본다.
"공무원들도 다 똑같다. 감사하고 수사한다고 책임을 묻겠다고 할 게 아니라 당신 일 잘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의미다, 당신이 변화를 만들었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다들 일을 잘하게 된다."
정혜승은 절망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절망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법은 주변 이들과 공감을 나누며 무엇이든 유쾌한 작당 모의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의 대사로 끝난다.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때일수록 서로에게 다정해야 한다."
정혜승에게 왜 결론을 이렇게 썼느냐고 물었다.
"하워드 진이 이런 말을 했다. '나에게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이 말을 내 평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 정치가 망가지니 정부가 망가지고 청년들이 죽었다.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나누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다리를 만들 수 없으면 징검다리를 놓는 데 필요한 돌멩이라도 하나씩 놓자는 거다. '고립의 시대'에서 노리나 허츠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서로 단절된 채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사회가 분열되고 신뢰를 잃는다.' 분열된 사회에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그걸 복원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언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발버둥을 쳐도 안 되지만 차곡차곡 쌓아나가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은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윤석열이 갑자기 달라질 거라는 기대도 없다. 다만 냉소하기보다는 분노하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 소통과 공감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이 책은 윤석열 정부를 견뎌내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이고 우리가 계속 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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