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보다 더 빡센 새 아파트 입주, 이럴 일인가

최지혜 2023. 11. 1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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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당첨의 기쁨도 잠시... 입주자가 해야 할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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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기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넣었던 청약에 당첨되었다. 40년 만에 드디어 내 집이 생긴다(정확히는 안방 화장실 정도만 우리 것이고 나머지는 은행님의 것이지만). 청약 당첨 발표가 나고 몇 달은 들뜬 마음으로 보냈다. 동네에서도 주변에 청약된 사람 처음 봤다면서 축하하며 부러워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두어 달 후면 입주가 시작된다. 그 사이에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새로운 생활권이 조성되는 지역의 첫 번째 아파트다. 우리를 시작으로 1, 2년 안에 다른 아파트 단지들도 줄줄이 입주한다. 그 말인즉, 지금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말고는. 심지어 초등학교도 몇 달 뒤에나 생기고, 주민센터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가끔 차를 타고 그 앞을 지나가다가 보면 주변이 휑하다. 흔한 마트와 편의점 하나 없다. 재작년 다른 생활권에 입주한 지인 말에 의하면 새벽배송이나 로켓배송 같은 서비스도 올해 들어서 겨우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 불편했겠다는 내 말에 지인은 '이제 곧 경험하게 될 거예요'라며 뼈를 때렸다.

청약이 당첨되어 좋았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에 눌러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어쩌겠나. 풀 대출을 받은 우리는 실거주를 해야 하니 죽으나 사나 그곳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복잡한 마음
 
 대한민국은 세계 제일 아파트 공화국이다
ⓒ 프리픽
 
요즘은 아파트 입주를 준비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란 걸 체감 중이다. 알아보고 준비해야 할 것은 왜 이렇게 많으며, 왜 이렇게 하나같이 비싼지. 하자 체크부터 줄눈과 탄성코트 시공, 새집증후군 제거와 입주청소까지. 아이가 있는 집은 매트 시공도 필수라는데, 그 가격도 적게 잡아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여기기엔 그 액수가 만만치 않다. 돈도 돈이지만 몇 단지가 연달아 입주를 앞두고 있으니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 잘하는 곳은 벌써 예약 마감이다. 가장 잘하고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한 입주 청소 업체의 경우 입주 날짜에 와서 청소를 해주는 게 아니라, 업체에서 지정해 주는 날짜에 맞춰 이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위기감에 부랴부랴 지인에게 추천받아 업체 몇 곳에 연락을 돌렸는데 그즈음은 이미 마감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쯤 되니 몇 억을 주고 (은행님과 함께) 샀는데, 왜 이런 것이 모두 입주자의 몫이어야 하는가 화가 났다.

적어도 하자 점검과 새집증후군 제거, 입주 청소 정도는 시공사에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시공사에서 이 정도만 해줘도 입주자가 해야 할 일이 반 이상 줄어들 텐데.

얼마 전 일명 '순살 아파트' 사태에 전국이 들썩였다. 부랴부랴 조사에 나선 정부는 전국의 '순살 아파트' 리스트를 발표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도 만든다고 약속했다. 내가 입주하는 아파트의 '입주 예정자 협의회'에서도 품질검증 TF를 구성해 현장 안전 점검에 동참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결국 달라진 건 없다. 하자체크도 검증도 모두 입주자의 몫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처음부터 지어지지도 않은 집을, 보지도 않고 사겠다고 신청을 한건 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었으니 운이 정말 좋았다고 기뻐했던 것도 나다. 대출 금리는 치솟고, 집값도 전셋값도 뚝뚝 떨어지는 요즘엔 당첨된 게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싶은 마음에 마음이 복잡하다.

그런 우리를 구원해 줄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입주박람회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으면서 걱정만 하고 있는 우리의 고민을 한 번에 끝내 줄 곳. 사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입주박람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리라 다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할 때 웨딩박람회 한 번 간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웨딩촬영 생략, 드레스는 처음 간 숍에서 입어본 3벌 중에서 골랐다. 예식장도 지인이 추천한 곳에 가서 쓱 둘러본 뒤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들은 코로나로 결혼식이 줄줄이 취소되어 속상해할 때, 코로나가 좀 일찍 터졌으면 그 핑계로 결혼식 안 하고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던 슈퍼 울트라 귀차니스트들이다.

아이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흔한 베이비페어도 한 번 간 적이 없다. 아이가 돌을 맞았을 때도 돌잔치는커녕 가족끼리 모여서 밥도 안 먹고 스튜디오 가서 달랑 사진 한 장 찍은 게 다다.  

웨딩박람회도 안 갔는데 입주박람회라니

그런데 이놈의 아파트가 뭔지. 우리는 입주박람회가 시작되자마자 며칠 전 쇄골뼈가 부러져 깁스를 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입구부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들어찬 업체들을 보자 가슴이 턱턱 막혔다. 지나갈 때마다 업체에서는 전단지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편은 벌써 아이를 데리고 저만치 떨어져 지끈 거리는 머리에 손을 대고 있다. 결국 우리는 채 2시간도 안돼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정신을 차린 우리는 몇 년 전 새 아파트에 입주한 지인에게 SOS를 쳤다. 

지인은 이미 나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척척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열심히 받아 적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새 아파트 입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체감상 결혼식 준비보다 더 빡센(?) 느낌이랄까. 이미 입주 체험기를 완료한 지인은 돈만 많으면 집도 안 사고,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 사는 게 제일 좋은 거 같다는 명언을 남기고 홀연히 돌아갔다.

지금까지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돌렸다면, 이제는 실전이다. 당장 이번주에 사전점검을 가서 하자 체크를 해야 한다. 새시가 거꾸로 달려있는 집, 수평이 안 맞는 집 등이 있다는 말에 수십만 원을 내고 업체를 써야 하나 얼마나 고민을 했던지.

이런 입주자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업체들은 전문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불안감을 자극했다. '셀프로 하시면 이런 거 다 놓칩니다. 하자 발견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하시려고요' 사전 점검 갔는데 거실에 인분이 있더라는 후기들을 볼 때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멘털은 가출한 지 오래고, 이쯤 되니 거의 포기 상태다. 살다가 무너져 내리지만 않기를, 물바다만 되지 않기를, 우리 집은 제발 정상적으로 지어졌기를, 그저 '순살 아파트'만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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