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갈등 끝낸 MBC와 하이브, 방송가 낡은 관행 뿌리 뽑아야 [D:가요 뷰]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전제돼야 글로벌 레벨의 TV쇼가 나온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달 30일 안형준 MBC 사장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안 사장은 방 의장의 이 같은 의견에 공감해 아티스트 권익 보호를 우선시한 제작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케이팝의 높아진 영향력이 콧대 높던 지상파 방송사까지 고개를 숙이게 한 셈이다. MBC는 이후 하이브 사옥을 방문해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표면적으론 단순히 한 엔터테인먼트사와 방송사의 협력 관계로 보이지만, 이는 가요계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전반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계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이브와 MBC의 갈등의 시작점이 소위 방송사의 ‘갑질’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MBC와 하이브의 불화는 2018년 연말 축제인 MBC ‘가요대제전’으로 시작됐다. 하이브 소속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최대의 새해맞이 라이브 쇼 ‘딕 클락스 뉴 이어스 로킹 이브’(Dick Clark's New Year's Rockin' Eve)에 출연하기 위해 ‘가요대제전’ 일정에 불참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방탄소년단 측은 MBC에 사전녹화를 제안했지만 MBC는 이를 거부했다.
방탄소년단의 출연이 불발되자 MBC는 곧바로 보복했다. 방탄소년단의 후배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산하 레이블 소속이었던 그룹 여자친구 등 하이브 소속 가수들은 ‘가요대제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로도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등을 비롯해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는 철저히 제외됐다.
공식화된 힘겨루기는 아니었지만 지난 2020년 5월엔 플레디스가 하이브에 인수되자 소속 그룹인 세븐틴도 모든 MBC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숨겼고, 뉴이스트, 프로미스나인 등의 그룹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하이브를 떠나면 다시 MBC에 재출연이 가능했다는 점만 봐도 사실상 MBC의 편향된 기조가 뻔히 보이는 수였다.
하이브만 겪은 일도, 또 MBC만 잘못된 관행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중소기획사의 경우 힘겨루기할 처지도 되지 못해 방송사에 무조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갔지만, 하이브 외에도 대형기획사인 SM, YG엔터테인먼트가 자존심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면서 “다만 과거엔 방송사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소속 아이돌에게 활동의 창구를 만들어줘야 하는 엔터테인먼트사가 결국 숙이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음악 프로그램 섭외는 예능 프로그램 섭외와 ‘끼워팔기’처럼 진행됐고, 아티스트들은 프로그램 종료 이후에도 제작진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한참을 녹화 현장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밖에도 업계에선 방송사 갑질에 당했다는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케이팝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장르가 됐고, 꼭 TV가 아니어도 신곡을 비롯한 콘텐츠를 전 세계에 알릴 통로가 많아졌다. 실제로 최근엔 방송 출연보다 유명 유튜브 출연, 자체콘텐츠 송출 등이 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심지어 효과도 훨씬 크다. 오히려 방송사들도 유튜브에 자사 채널을 오픈했는데, 이 콘텐츠 흥행시키기 위해선 아티스트의 출연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MBC가 내민 손을 잡은 건 케이팝 산업의 건강한 성장을 위함이다. 방 의장은 “케이팝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 하이브가 주도한다면 방송 제작 환경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방송 제작 방식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음악 콘텐츠의 질을 높이게 될 것이고, 콘텐츠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케이팝과 방송 프로그램이 함께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이브와 대립각을 세웠던 MBC가 태세전환을 하면서 그동안 방송사에 뿌리내렸던 관행도 사라질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MBC도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아티스트와 협력적으로 가는 방향이 꼭 필요했을 거다. 사실상 방송사의 수익을 위한 태세전환”이라면서도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건 반갑다. 다만 한 가지 불안요소는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세븐틴, 뉴진스, 르세라핌 등 인기 아이돌이 다수 포진된 기획사다. 그렇지 못한 중소기획사에도 같은 자세를 취할지 알 수 없다. MBC의 이번 제안은 ‘하이브’가 아닌 ‘업계 전체’를 포괄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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