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비하' 피소된 국회의원…"노력해달라"는 화해도 거부했다

이병준 2023. 11.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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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거나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하는 등 적절한 방법으로 의원들이 장애인 비하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한다.” " " “의원들은 의도치 않게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준 발언을 한 부분을 인정하며, 앞으로 이런 발언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한다.” "
장애인 비하 표현을 쓴 전·현직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2년째 소송을 하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지난달 피고에게 보낸 화해안 내용 중 일부다. ‘국회의장이 장애인 모욕 발언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어 달라’ ‘해당 의원들을 징계하라’며 제기한 소송이었지만, 이 같은 요구들은 이번 화해안에서 제외했다. 1인당 100만원씩의 위자료 청구도 포기했고, 소송 비용 역시 각자가 부담하자고 제안했다. 최초에 요구한 것들을 사실상 다 포기한 셈이다. 그러나 국회의장을 비롯한 상대방은 “국회가 자체 해결할 일”이라며 화해 제안을 거부했다.


손배도 포기했는데…‘노력한다’도 거부


지난 2020년 1월 서울 용산역에서 귀성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장애인단체가 장애인 비하 발언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체·시청각·정신장애인 5명이 소송을 시작한 건 지난 2021년 4월이었다. 이들은 2020~2021년 ‘외눈박이 대통령’ ‘정책 수단이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집단적 조현병’ 등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의원들과 국회의장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및 장애인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4월 1심 재판부는 “이 표현으로 장애인들이 상당한 상처와 고통, 수치심 등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국회의장 등의 손을 들어줬었다.

1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장애인들은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당초 지난 8월 선고기일을 잡아놨지만, 변론을 재개해 두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열고 양측에 “화해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소송에 나선 장애인들은 재판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화해안을 보냈다. 애초 요구사항을 대폭 줄인 화해안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장 등 측은 ‘이미 국회의장이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조치를 취했다’ ‘국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화해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박병석·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각각 지난해와 2019년 장애인 비하 표현을 자제해달라는 서한을 의원들에 보낸 사실을 들어 추가적인 조치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고, 서울고법 민사 8-3부(최승원·김태호·김봉원 판사)는 지난 9일 해당 사건의 항소심 최종변론 기일을 열었다.


화해 재차 거부…“국회가 판단해야”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주성희 간사(왼쪽)와 조태흥 미디어센터장(오른쪽)이 15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앙포토
이날 원고 측은 청구 취지를 ‘국회의장은 매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모욕 발언을 자제하라는 서한을 의원들에게 발송하라’는 것으로 바꿔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재차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려달라고도 했다. 원고 측 최정규 변호사는 “적극적 화해 권고를 진행해주셨으면 좋겠다”며 “’국회의장은 혐오 발언이 중단되도록 노력한다’ 정도라도 표기가 된다면 원고들은 받아들일 수 있다” 고 했다. 청구취지 변경을 받아들인 재판부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국회 입장에서도 (화해안을 받아들이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해 보이긴 한다”면서다.

하지만 국회의장 등은 이 또한 거부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을 대리하는 윤승현 변호사는 법정에서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측면에서 국회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판단하게 하는 게 적절하다. 국회에서 이미 서한을 발송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회의장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등을 대리하는 조성환 변호사도 “입장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 측의 요구안을 일부라도 받아들이거나 타협할 의사가 없다는 취지다. 최 변호사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원고들을 간신히 설득해 국회의장 등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요구사항을 낮춰 화해안을 만든 것인데, 장애인 비하 발언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무런 조치 안 취하고 서한만 보내”

장애인 단체가 지난 2021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한쪽이 화해를 거부하며, 공은 다시 재판부로 넘어갔다. 화해 권고 결정을 할지, 혹은 선고를 내릴지 “열어두고 검토하겠다”고 한 재판부는 피고 측에 “(이 사건을) 개인에 대한 소송으로 받아들이고 있느냐, 아니면 공적인 국회와 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으로 보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국회의장 측이 “후자에 가깝다”고 하자, 재판부는 ‘자연인이 아닌 행정청의 일종인 국회의장에게 청구를 하는 것이냐’고 물으며 원고 측의 입장도 재확인했다. 항소심 선고는 다음달 21일로 예정돼 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12월, 국회의원이 장애인 비하 및 차별적 표현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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