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만 너무 갇혀있었다"…'박철희 외교원'의 새 나침반
“긴장감을 갖고 전문성을 높여라. 외교부 본부와 협업하라. 그리고 일방적 보고가 아닌 토론을 하자.”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이 지난 3월 임명된 직후부터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한 세 가지 원칙이다. 외교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정부의 외교 전략을 뒷받침하고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해야 할 국립외교원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내놓은 처방이었다. 박 원장은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초2동 국립외교원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취임 당시 외교원의 분위기에 대해 “조직은 느슨하고 기능은 약화된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며 관련 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외교원은 우수한 인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연구 성과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리더십 리스크’부터 정부 정책 운용의 경직성까지 다양한 걸림돌이 원인으로 꼽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윤 정부의 첫 국립외교원장으로 박 원장을 낙점한 것도 ‘미래의 서희’를 키워내는 외교원에 대대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교안보 전략가인 박 원장은 외교원이 다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게 만들 적임자로 평가된다. 그는 오는 29일 열리는 중앙포럼(‘미·중 패권 경쟁시대, 한국 경제의 활로는?’)에 연사로 나서 ‘글로벌 복합위기 속 한국 외교의 나아갈 방향은?’을 주제로 고견을 제시할 계획이다.
박 원장은 “한국은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al State)’로서 이미 글로벌 외교를 지향하고 있는데 정작 국립외교원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을 해소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유지혜 중앙일보 외교안보부장이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벽 해체하고 문 열어라"
“처음 연구원에 와서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안에 또 하나의 가벽을 세워 원장 업무 공간을 보이지 않게 해 놨더라. 원장이 가벽을 만들고 그 안에만 박혀 있으면 어떻게 소통이 되겠나. 회의 방식도 보고가 아닌 토론 형식으로 바꾸자고 했다. 업무와 관련해 정해진 결론을 보고하는 건 문서로 하면 된다. 만나서 하는 회의는 항상 열린 결말이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목표로 혁신과 개편을 이어가고 있다. 조직 정상화 과정에서 주안점을 두는 요소는.
A : “연구원 교수와 직원들이 긴장감을 갖고 연구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우선 연구 성과를 발표할 때 토론의 강도를 높였다. 단순히 보고서를 쓰는 것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과거엔 외교원 연구진이 자신의 성과를 공개 발표하고 다른 전문가들이 참관해 질의응답과 혹독하리만치 토론을 하는 게 원칙이었다. 공무원이 아닌 전문가가 돼야 한다. 국민들에 알려야 할 정책토론은 공개세미나를 원칙으로 바꿨다.” (※박 원장은 국립외교원의 전신인 외교안보연구원에서 2002~2004년 조교수로 일했다.)
"한반도·동북아 벗어나 외교 지평 넓혀야"
A : “6개 연구부와 6개 센터가 병렬적으로 운영되던 구조에서 기존 연구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업무 연관성이 높은 센터를 그 밑에 두도록 했다. 아시아·태평양 연구부를 인도·태평양 연구부로, 경제통상개발연구부를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로 바꾸고 각각 경제기술안보 연구센터, 일본·중국·아세안·인도 연구센터와 경제기술안보 연구센터를 밑에 두는 식이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외 지역에 대해서는 외교원의 관련 연구가 미흡해 보인다.
A : “한국의 외교는 말 그대로 ‘글로벌 외교’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영역은 여전히 한반도와 동북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남미, 태평양도서국, 중앙아시아 등에 대한 외교의 중요성이 간과되면서 특히 대학이나 민간 기관에서는 연구 공백이 크다. 하지만 해당 지역이야말로 향후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전략지역’이다. 그리고 이런 ‘돈 안 되는 연구’는 사실 외교원만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이번에 조직을 개편하며 아프리카·중동연구부를 전략지역연구부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인력과 예산의 문제이기도 한 만큼 외교원의 노력과 함께 외교부·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 등 유관부처의 지원과 도움이 필수적이다.”
연구진의 관심 분야가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에 과잉 집중된 현상은 여전한 것 같다.
“보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외교원에서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이유다. 최근엔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INR)과 매년 1회씩 정례적인 전략대화를 열기로 합의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 직전 단계까지 와 있다. 한국은 그간 한반도와 동북아에만 너무 갇혀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미국과 함께 글로벌 전략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전략대화가 정례화하면 한·미가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외교 전략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尹 "국립외교원, 한국 외교의 나침반 돼야"
외교부 본부 직원들은 현장 외교를 수행하는 최전방 인력이다. 연구보다는 당장의 외교 현안을 중시할 수밖에 없을 텐데.
“외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하루하루의 변화와 흐름은 외교부 본부가 강하지만, 그 흐름이 연 단위를 넘어서면 외교원의 강점이 발휘된다. 외교원의 교수들은 축적된 지식과 네트워크가 있다. 일례로 외교부 본부 국장은 본인 임기 1~2년 안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누적된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외교원에선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흐름도 모두 꿰고 있다. 외교부 본부에서 순환보직으로 인해 단절되는 ‘지속가능성’을 우리가 채워줄 수 있다.”
채용 방식도 손질 "전문성 중심"
“채용 시스템도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지금은 연구진 채용 제도가 일반 공무원을 채용하듯 기계적 공정성만 강조한다. 이보다는 수월성을 추구하는 채용 방식이 필요하다. 우선은 외교부에 있던 인사위원 추천권을 외교원으로 가져오고 전직 대사 등 연구진의 전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을 인사위원으로 모실 수 있도록 절차를 개정하고 있다. 공개발표를 의무화해서 수월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외교원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신임 외교관 교육이다.
“외교관 후보자를 위한 현장 체험학습을 계획하라고 하니 민속촌이나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을 가더라. 물론 의미 있는 장소지만, 외교관 후보자 교육을 위한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그래서 비무장지대(DMZ)에 가서 우리 안보 상황을 느껴보고, 삼성반도체공장처럼 경제안보 분야에서 상징성 있는 곳을 가보라고 했다. 또 전략적 사고, 경제안보, 사이버, 인공지능(AI) 등 이른바 ‘신외교영역’ 수업을 만들고 토론식 수업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정리=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 삶 찾고싶다" 이혼 1년 뒤, 전남편 울린 그녀의 약봉투 | 중앙일보
- 치마 지퍼 열려있던 '팝의 여왕'…다이애너 비가 올려주며 한 말 | 중앙일보
- 통영 간 백종원 "굴 요리 궁금하쥬?"…이번엔 수산물 손댄다 | 중앙일보
-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① | 중앙일보
- "술마시다 정신 잃었다"…성폭행에 촬영까지, 21명 당했다 | 중앙일보
- 中 휩쓴 폐렴 어떻길래 "태국 공주 숨졌다"…국내도 확산 조짐 | 중앙일보
- 美선 의사 보기 '별따기급'…몸값 세계 1위에도 "자식 안 시켜" | 중앙일보
- 어린이집 교사에 똥 기저귀 던진 학부모…결국 재판 넘겨졌다 | 중앙일보
- 휴게소 라면 먹던 軍장병들…"나도 6사단" 커피 30잔 쏜 이 남성 | 중앙일보
- "형사는 버림받았다"…김길수 사건 특진 두고 경찰 무슨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