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견 재고 처리”…펫숍 폐업 후 벌어지는 일 [개st하우스]
“광주에서 대형 펫숍을 운영하는 업자로부터 ‘가게가 망했는데 재고로 남은 수십 마리의 개들을 데려가달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기껏해야 한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을 업자는 나이 많고 인기 없는 폐견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동물단체가 데려가지 않으면 처리업자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다고요.”
유리창 너머로 꼬리를 흔들며 행인들에게 애교를 부리는 펫숍 강아지들은 귀엽습니다. 푸들, 비숑, 몰티즈, 치와와, 포메라니안…. 좁은 진열대 안을 서성이는 인기 견종들을 바라보던 행인은 홀린 듯 매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직접 안아보라며 건네지는 강아지들. 대부분 젖니도 돋지 않은 생후 2개월 미만의 젖먹이입니다.
‘핫한 신상’ 이면에는 찾는 손님 없이 먼지만 수북한 재고도 있습니다. 보통 매장 구석에는 더 작고 어린 강아지들에 밀려난 한두 살 성견들이 있죠. 펫숍에서는 이 개들을 ‘폐견’이라고 부릅니다. 갓 청소년기를 벗어난 어린 성견이지만 생후 6개월이란 ‘유통기한’을 놓쳐 분양 문의가 끊긴 골칫거리들입니다. 펫숍마다 이런 숨겨진 폐견이 몇 마리씩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만약 펫숍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 그 많은 폐견은 어떻게 될까요? 개st하우스 취재 결과, 펫숍에 남은 개들은 비밀리에 처리업자에게 넘겨져 폐기되거나 푼돈에 개도살장, 번식장 같은 곳으로 팔려갑니다. 다행히 구조 여력이 있는 동물단체에 발견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지만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동물구조단체 다솜레스큐(다솜)는 최근 광주에서 폐업한 펫숍에서 폐견 44마리를 모두 구조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일 수 없었던 업주가 직접 구조를 요청했고, 폐견들의 딱한 사정을 지나칠 수 없었던 다솜이 무거운 짐을 감당하게 된 겁니다. 다솜 김준원 대표는 “구조한 강아지 절반은 뒷다리를 절고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건은 지난 8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주에서 펫숍 두 곳을 경영하던 업자가 운영난으로 가게 문을 닫게 됐습니다. 애견용품과 매장 물건들은 다른 업자에게 넘기면 되지만 문제는 팔리지 않은 40여 마리의 폐견이었습니다.
업주도 아직 어린 개들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펫숍업자는 동물구조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에 스스로를 제보했습니다. 개인 신상과 펫숍 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주면 강아지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업자가 보낸 사진 속에는 가게에서 쫓겨나 좁은 이동장에 구겨 넣듯 담긴 채 대형 승합차에 실려 있는 강아지 수십 마리가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법(제76조 2항)에 따르면 펫숍은 폐업 1개월 전 관할 지자체에 폐업 이후 동물의 적절한 사육 및 처리를 위한 계획을 담은 동물처리계획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보통은 다른 업자에게 동물을 인계하겠다는 내용이지만 그대로 이행되는 일은 드뭅니다. 많은 경우 폐견은 그대로 방치돼 죽거나 대량 폐기가 가능한 불법 사업장으로 넘겨집니다.
국민일보는 동물단체 행강 박운선 대표로부터 펫숍 폐견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품종견을 번식시켜 판매하는 브리더로 일한 박 대표는 현재 동물판매업의 실태를 고발하고 폐견들을 구조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펫숍 폐견들에게 해피엔딩이란 없다”며 “소형 품종견들도 보신탕 혹은 개소주의 재료로 인기가 많다. 개농장 개들과 마찬가지로 불법 도살돼 팔린다”고 설명합니다. 살아남은 상당수는 번식장에 되팔려 평생 새끼를 생산하고, 그 외 폐업한 가게에 버려지거나 외딴 산속에 집단 유기되는 일도 흔하다고 합니다. 개들을 푼돈에 처분하거나 유기하지 않은 광주 펫숍 업주는 그나마 양심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동물단체가 구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광주 펫숍의 제보를 받았던 비글구조네트워크 김세현 부대표는 “펫숍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폐견들을 구조해달라는 제보가 매년 끊이지 않는다”면서 “수용공간과 돌봄인력이 부족해서 모든 폐견을 끌어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합니다.
동물단체들이 구조에 난색을 보일 때 표류하던 강아지들을 받아주겠다고 나선 곳이 있었습니다. 다솜입니다. 다솜은 소규모 동물단체로 대표 혼자 상주하며 50마리를 돌보는 소형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체 규모를 감안하면 40마리가 넘게 구조하는 것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솜 김준원 대표는 “우리마저 외면하면 아이들은 모두 처리업자에게 넘겨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비록 역량은 부족하지만 최대한 치료하고 돌보기로 결정했다”고 전합니다. 김 대표는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과 광주 왕복 500㎞를 오가며 44마리의 폐견들을 모두 구조했습니다.
구조한 44마리는 즉시 다솜의 연계 동물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나이는 대부분 2살 미만으로 어리지만 좁은 진열대에 갇혀 지낸 탓에 절반은 뒷다리 관절이 어긋나는 슬개골 탈구를 앓고 있었습니다. 1마리는 심장 판막 이상으로 즉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수의사 소견을 받았습니다. 다솜의 한정된 재원으로는 모든 동물을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위급했던 20마리에게 우선 수술을 진행하고, 상대적으로 덜 급한 5마리의 슬개골 수술은 아직 비용이 마련되지 않아 미루고 있습니다. 다행히 20마리의 긴급수술은 성공했고, 모두 건강을 회복해 입양 준비도 마쳤습니다.
지난 1일 국민일보는 서울 도봉구의 다솜 보호소를 방문했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구조된 개들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2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다솜 김준원 대표는 보호소에 상주하며 광주의 펫숍 개들을 비롯해 60마리를 돌보고 있습니다. 봉사자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대표 혼자 돌보기에는 벅찬 규모죠. 김 대표는 펫숍 44마리가 입소한 이후로 단 하루도 보호소를 떠나지 않고 돌봄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구조할 당시) 대부분 갈빗대가 만져질 만큼 야위었는데 내가 직접 입에 사료를 넣어주며 살렸다”고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런 성실함 덕분인지 입소한 동물들은 살이 오르고 사람과의 교감에도 익숙한 상태였습니다.
그 가운데 유난히 취재진에게 꼬리를 흔들고 품을 파고드는 하얀 미니비숑이 있었습니다. 2살 분홍이입니다. 분홍이의 핑크빛 배에는 1㎝ 남짓 수술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구조 당시 심장 불규칙 박동으로 긴급수술을 받은 흔적이라고 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성공했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요. 영리한 비숑답게 배변패드도 잘 사용하고, 경계성 짖음도 없습니다.
이날 분홍이는 미애쌤의 인솔에 따라 30분간 공원 산책을 했습니다. 진열대에 갇혀 지내느라 다양한 감촉을 느끼지 못한 탓일까요. 분홍이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거친 흙바닥의 감촉이 낯선지 얼어붙더군요. 미애쌤은 점진적인 산책 교육법을 제시했습니다. 인솔자가 먼저 앞장서고 분홍이가 뒤따라오면 간식으로 보상하는 식으로 걸음 수를 점차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한 걸음도 버거워하던 분홍이는 점차 대여섯 걸음을 떼더니 나중에는 인솔자를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습니다.
입양준비를 마친 2살 비숑, 분홍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 2.8kg 비숑, 2살 암컷(중성화o)
- 심장 수술 완료, 매우 건강하며 후유증 없음
- 사람을 좋아하고 배변패드를 잘 사용함. 잔짖음 없음.
-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 링크를 작성하시고 '국민일보 개st하우스를 보고 입양을 희망한다'고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입양신청서 링크 https://url.kr/l7mjor
■임시보호신청 링크 https://url.kr/h3k81o
■동물단체 다솜 후원 @ngo_dasom (인스타그램)
✔분홍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22번째 견공입니다(97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최수진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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