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순례길, 인물 탐구가 우선” 근대기독교 역사문화자원 활성화 심포지엄
근대 기독교 역사문화자원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인물 탐구가 우선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유물 유산 건축물 등의 활용법을 논하기에 앞서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이끈 선교사와 기독교인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적이란 하드웨어보다 스토리텔링이란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란 공감대가 이뤄졌다.
㈔한국순례길은 10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천영태 목사) 아펜젤러홀에서 ‘서울근대기독교 역사문화자원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이 깃든 전남 신안 12사도 길을 자문한 김농오 목포대 조경학과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김 교수는 “유적 활용방안을 논하기 전에 선교사들의 숭고한 살신성인 순교적 신앙의 행실 등 인물사를 더 자세히 연구하고 조사해 역사적 지표로 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기복주의 번영신앙의 늪에 빠져 방황하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첫사랑을 회복하고 이웃 사랑 십자가의 본을 보여준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 등 인생을 전해야 한다”면서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는 예레미야 6장 16절 말씀처럼 옛적 길 선한 길을 더듬어 찾아볼 수 있는 상봉 공간으로서 그 장소성을 고품질로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물이 가진 신앙, 그가 평생을 바라본 영성, 즉 인물 이야기가 빠지면 순례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밖에 불교의 사찰과 유교의 향교처럼 기독교의 근대문화유산도 국가적 보호 관리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북장로회와 남장로회, 감리교, 침례교, 호주 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등으로 나뉘어 선교한 역사를 인정하되 지역주의와 분파주의를 넘어 하나로 연합해야 선교 코스를 묶어 선교 벨트화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장정화 한국순례길 기획국장은 ‘서울의 근대 기독교 역사문화자원 현황과 현실’ 발표를 통해 서울엔 교회 교육기관 종교유적지 묘원 박물관 등 총 51개소의 장소가 있으며 강북 그중에서도 종로구와 중구에 밀집해 있다고 전했다. 신익현 양화진선교사묘원 안내팀장은 선교사와 가족 145명이 안장된 양화진을 설명하면서 연간 8만명의 참배객이 묘원을 찾는다고 밝혔다.
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정동 선교부지 이외에 서촌, 북촌, 양화진이 포함된 신촌, 종각, 종로5가와 동촌, 남산과 남촌, 서울역 중심의 남산 일원, 숭실대기독교박물관과 국립묘지의 관악 지역, 어린이 대공원과 망우리 묘원, 효창공원, 우이동 4·19 묘역, 도산공원까지 각각 걷는 길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지방은 서울보다 선교부지를 통한 교회 학교 병원의 근대화 전시 효과가 두드러졌다. 이를 증명하듯 순례길도 발달해 있다. 전재규 대신대 명예총장은 ‘청라 정신과 대구 경북의 근대역사문화’를 발표하며 청라언덕에서 출발하는 4가지 순례길을 소개했다. 길종원 조선대 교수는 양림동 유적을 중심으로 ‘광주 근대 기독교 역사문화 자원’을 전했으며, 서종옥 안력산의료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시 순례길이 만들어진 ‘순천 매산등 근대 기독교 의료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 사례’를 발표했다.
한국순례길은 천혜의 자연, 종교적 자원, 역사적 유적이 어우러진 길을 조성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지난 1월 창립됐다. 지난 5일 베트남 의료선교 일정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박상원 샘병원 미션원장이 이사장을 맡았다.
박 이사장은 갑작스러운 사고 직전 마감한 발간사 글을 통해 “방랑자에서 순례자로 바뀌는 첫 발걸음에 귀하신 여러분을 초대한다”면서 “심포지엄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뤄지는 기독교 문화유산 찾기 운동이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네트워킹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박 원장 추모의 시간도 마련됐다. 한국순례길 이사장뿐만 아니라 샘병원 미션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 합동신학대학원대 석좌교수, 한국로잔위원회 부의장으로 일해 온 박 원장을 위해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를 청중들이 함께 불렀다.
박 원장의 큰형인 영파선교회 회장 박재천 목사는 ‘크로스 로드 케이 코리아-십자가의 길, 한국순례길’ 헌시를 발표했다. 빈소를 지키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박 목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능력으로 헤아릴 길이 없다”고 짧게 말했다.
심포지엄에 앞서 교회사 전공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이사인 홍승표 아펜젤러인우교회 목사의 안내로 정동 일대 답사가 진행됐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이 참여해 순례길 걷기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해 이기붕 집터 위에 세워진 4·19혁명 기념 도서관, 김구 주석이 저격당한 경교장, 스코필드 기념관, 러시아 공사관, 이화박물관, 중명전,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끝으로 걷기가 마무리됐다.
홍 목사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의 지붕 아래 두루마리 모양 바탕에 새겨진 ‘欲爲大者 當爲人役(욕위대자 당위인역)’ 글귀를 설명했다. “큰 인물이 되고자 하거든, 마땅히 남을 섬겨야 한다.”
구한말 성균관보다 배재학당에 가야 출세한다고 소문났던 당시 밀려드는 양반집 자제들에게 아펜젤러 선교사는 마태복음 20장 26~27절의 예수님 말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를 들려주고 이 문구를 학당의 교훈으로 내걸었다.
홍 목사는 “기독교와 서구 문명이 처음 들어온 정동 일대 가스펠로드를 돌아보며 서양인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길 원했던 선교사들의 마음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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