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휴대폰은 놔두면서…한국선 왜 '자전거 도둑' 많을까
서울 양천구 목2동에 사는 이모(27)씨의 취미는 자전거 타기다. 출퇴근 때마다 약 13㎞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할 만큼, ‘라이딩’을 즐긴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설 때마다 늘 불안하다. 몇년전 자전거를 도둑맞은 기억 때문이다. 그는 “깜박 잊고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상태로 자전거를 두고 2~3시간 자리를 비웠더니 그 사이 누가 자전거를 훔쳐 갔다”며 “이후로는 반드시 자전거 자물쇠를 확인하지만, 자물쇠마저 절단하고 도망가는 자전거 도둑들도 많아서 항상 마음을 졸인다”고 말했다.
이씨의 걱정에는 근거가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선 다른 절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자전거 절도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지난 해 한해 동안 빈집털이는 3183건, 상점 절도는 4055건, 소매치기는 278건이 벌어진 반면 자전거 절도 사건은 1만 2033건에 달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한국인은 왜 휴대폰이나 노트북은 그냥 놔두면서, 유독 자전거만 훔쳐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큰 공감을 얻고, 관련 ‘밈’(meme·인터넷 유행어)들도 생겨날 정도다.
휴대폰 두고 자전거만… “낮은 검거율과 경각심이 원인”
유독 자전거 절도가 빈번한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분석이 나온다. 첫번째는 낮은 검거율이다. 지난해 발생한 자전거 도난 사건 1만 2033건 중 범인이 검거된 사건은 3989건으로, 검거율이 33%에 불과했다. 평균 절도 검거율인 62%보다 현저히 낮다. 처벌 받을 확률이 낮은 만큼, 해당 범죄에 대한 경각심도 낮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는 A 경감은 “절도한 자전거 자체를 도주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등, 절도범 추적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현직 경찰 다수가 “다른 범죄에 비해 자전거 절도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천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재물적인 이득을 얻기보단 호기심으로 남의 자전거를 타본 뒤, 곧장 다른 곳에 세워두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건들은 범인을 잡고 보면 10대 학생들인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자전거 등록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등록제가 활성화되면 자동차 번호판처럼 고유 식별 번호를 부여해 도난을 방지할 수 있고, 폐자전거 역시 관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 양천구와 강동구, 인천시 연수구 등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일부 지자체가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등록률은 낮은 편이다. 양천구의 경우 2016년 한때 2만 8000여대가 등록돼 있었지만, 개인정보 보관 기간 만료 후 재등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등록 대수가 크게 줄어 지난해 기준 371대에 그쳤다.
또 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광명시 등도 저조한 등록률 탓에 제도 시행 10여년만인 2021년과 2022년 각각 제도를 폐지했다. 서울시의 한 구청 관계자는 “등록제를 의무화 하면 도난 방지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의무가 되지 않으면 (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전거 도둑' 막으려 고육지책 짜낸 구청
이런 상황에서, 서울 내 25개 자치구 중 자전거 이용률이 2위(22%)인 양천구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도난 방지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1일 시행한 이른바 ‘자전거 지킴이 솔루션’이다. 구는 자전거 도난 신고가 빈번하게 들어오는 학원 밀집 지역 4곳을 ‘자전거 지킴이존’으로 지정하고, 주변 방범용 폴대에 안테나와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했다. 구청에 자전거를 등록하면 나눠주는 RFID(무선 인식) 칩 내장 자전거 번호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전거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해당 번호판을 단 자전거가 지정된 구역 안으로 들어서면 자전거 주인의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지킴이 구역 안에 자전거가 진입했다’는 알림이 울린다. 또 주차 이후 누군가 자전거를 이동시킬 때에도 주인에게 메시지가 전송되며, 내 자전거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자전거 절도 때문에 마음을 졸였던 이씨 역시 최근 구청에 자전거를 등록하고 번호판을 받았다. 10일 오후, 자전거를 탄 이씨가 신정동 지구촌교회 은혜채플 인근 광장에 있는 방범용 폴대를 지나가자, 즉시 휴대전화에 ‘자전거 지킴이존’ 안으로 들어왔다는 알림이 떴다. 또 이후 주차해 놓은 자전거가 해당 구역을 벗어나도록 움직이자, 역시 알림이 울렸고 이동 경로 역시 휴대전화에 나타났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주거ㆍ교육 시설이 밀집된 지역이라 자전거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도 많고 일방통행 도로 때문에 차량보다 자전거를 선호하는 주민도 많은데, 그만큼 도난 건수도 많아서 고민 끝에 위치 추적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면서 “시행 초기인 만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알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자전거 지킴이 존’도 확대하면서 도난을 줄여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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