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해달라는 화장품 가게 손님... 역대급 '진상 짓'의 결말

김성호 2023. 11. 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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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83] 제10회 부천노동영화제 <불멸의 여자>

[김성호 기자]

대학교 시절 가장 많이 찾았던 공간을 묻는다면 중앙도서관이었다. 책도 책이었지만 이 도서관 꼭대기층엔 특별한 공간이 있었는데, 세상 귀한 영화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비디오실이 있었던 것이다. 고학번 선배들의 취침실처럼 쓰였던 이 장소엔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오래되고 희귀한 자료들도 적잖이 들어 있어 소위 시네필이라 불리는 이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덕에 유럽과 남미에서 발표된 최신 영화도 꾸준히 소장되어 주머니 얄팍한데 영화는 보고 싶은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입학 첫해 나는 이곳에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이었다. 처음 선보였을 때부터 그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파격을 거듭했다는 평가와 함께 영화팬들을 격동케 한 역작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전율이 돋는 엄청난 작품이었다.

<도그빌>엔 많은 특별함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바로 형식이다. 연극 무대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은 독특한 연출은, 연극보다 한층 진화하여 자유롭다 여겨지는 영화가 연극적 요소를 품을 때 얻게 되는 효과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일깨웠다. 자연스러움을 포기하는 대신, 연극적 세트에서 과장된 연기를 담아냄으로써 극 이면에 자리한 의미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소금물에 시금치를 데칠 때 그 푸르름이 살아나듯, 연극적 연출법이 메시지를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 불멸의 여자 포스터
ⓒ 부천노동영화제
 
<도그빌> 연상케 하는 스테이지 시네마

<불멸의 여자>는 절로 <도그빌>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 쇼핑몰 화장품 매장을 연상시키는 공간만 두고서 87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을 오롯이 버텨낸다. 어두운 무대 위에 빛을 받는 건 오로지 화장품 매장 카운터 뿐, 두 명의 직원과 두 명의 손님, 지점장까지가 등장하는 인물의 전부다.

영화는 경력이 있는 희경(이음 분)과 초년생 승아(이정경 분)가 출근하며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양 만면에 웃음을 띤 직원들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들이 언제나처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던 중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환불에 대한 것이다. 주름방지용 크림을 사용한 뒤 오히려 눈가 주름이 더 늘었다는 불만에 매장으로 나오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화가 오간다.

그로부터 영화는 매장에 찾아온 고객의 진상짓거리와 이에 대응하는 일의 어려움, 또 직원과 지점장의 애정관계며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하지정맥류의 고충 따위를 다루기 시작한다. 무작정 환불을 요구하며 직원들을 한계로 몰아가는 진상고객의 모습이 충격적이기까지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넘쳐나는 블랙컨슈머들의 소식을 듣다보면 이와 같은 이가 우리 곁에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역대급 진상고객, 무너지는 점원들
 
▲ 불멸의 여자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마침내 직원을 제 앞에 무릎 꿇리는 진상고객의 행각은 불과 몇 년 전 뉴스로 전국에 알려졌던 백화점 고객의 진상짓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비단 어느 한 명의 이야기는 아닐 터, 영화 속 진상고객의 다양한 진상짓은 한국사회 서비스직이며 감정노동자가 마주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극적으로 내보인다.

종아리에 보기 흉한 흉터가 새겨진 희경의 사연 또한 관심을 잡아끈다. 종일 굽 높은 신발을 신고 매대 앞에 서서 손님들을 응대해야 하는 업무 탓일까, 그녀는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그녀는 근무로 바빠 병원 한 번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날은 제법 운이 좋아서 지점장(안내상 분)의 허락을 받고 오전에 병원에 다녀오게 된다.

승아는 희경을 보고 일로 인해 하지정맥류가 생겼다면 산재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희경이 답한다. 이미 산재가 되는지를 알아보았지만 해당되지 않더라고 말이다. 왜 아닐까. 하지정맥류의 산재인정은 여전히 현장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곤 한다. 단순히 일어서서 오래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하지정맥류의 발생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한다. 업무형태와 발병 간에 밀접한 상관관계를 입증해야만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정맥류에도 산재는 포기... 그녀의 결정
 
▲ 불멸의 여자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일례로 한국에서 간호사가 처음으로 하지정맥류 산재 인정을 받은 건 2004년이다. 하루 평균 6시간 이상씩 서서 근무를 한 데다 방사선 방지가운 등 무거운 복장을 착용하고, 수술용 무거운 기구 등을 자주 옮기는 작업을 하는 등 하지정맥류를 유발할 수 있는 직업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입증해낸 결과였다.

KTX 승무원의 하지정맥류가 산재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그로부터 16년이 필요했다. 높은 굽을 신고, 하루 평균 5시간씩 서서 일하며, 휴식 또한 좁은 공간에서 서서 쉬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들이 문제가 됐다.

이처럼 특정 직역에서 하지정맥류로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는 넘어야 할 언덕이 적잖다. 하지정맥류로 고생하는 사람에 비해 아주 적은 수만이 산재를 놓고 다투게 되는 배경이다. 그중에서도 더 적은 사람이 산재 인정을 받는다. 대부분은 산재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한 번 알아보고는 나는 어렵구나 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저 오래 서 있는 직업이란 정도로는 산재를 꿈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승아의 질문에 희경이 내놓는 답변이 바로 이와 맥이 닿아 있다.

기실 영화 속 누구의 이야기만은 아닐 테다. 하지정맥류와 같은 질병은 신체가 잘리고 생명을 잃는 중한 사고에 비하여 산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매우 적다. 역시 제10회 부천노동영화제 상영작으로 앞서 '씨네만세'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한 철도노동자가 제가 입은 상처를 산재로 처리해 달라 요구했다가 거절 당한 사연이 등장한다. 그는 회사로부터 산재 인정을 해주면 회사의 평판이 추락한다는 답변을 들었다는데, 그 답을 오로지 그 혼자만 들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노릇이다. 실제로 가벼운 사고에 대해서는 회사가 굳이 산재처리를 하려들지 않는 모습을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인 희경의 일터 또한 그와 얼마 다르지 않을 터다.

감정노동, 비정규 노동... 21세기 노동의 민낯
 
▲ 불멸의 여자 스틸컷
ⓒ 부천노동영화제
 
뿐인가. 희경과 승아는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다. 마트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이들 중 정규직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비정규직이어서 낮은 임금과 고용보장에 쩔쩔 매는 상황에 더 자주 처한다는 건 다분히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고객과 직접 만나는 최전선에 있는 직원이 실제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여러 공정에 대해 이론만 배웠을 뿐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 이로 인해 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기 어렵다는 점은 영화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닌가 한다.

영화는 산재와 감정노동, 비정규직 외에도 일터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들춰낸다. 그중에선 젊고 예쁜 여직원에 대한 상급자의 추파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영화는 단순한 집적거림을 넘어 지점장과 불륜관계를 갖고 있는 승아, 또 한때 그와 만났던 희경의 이야기를 통해 극 후반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진상손님을 넘고 나니 더 심한 진상이 머리를 치켜드는 이 영화의 전개는 연극적 형식과 맞물려 삶의 부조리함을 일깨운다.

한국영화의 기수라 해도 좋을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스테이지 시네마'라는 새로운 영화형식으로 불러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전한다. <불멸의 여자>를 찍은 최종태는 봉준호와 함께 훗날 한국 시네필 사이에서 전설이 되는 '노란문'이라는 동아리를 만든 초기멤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다. 영화를 더없이 아껴 그에 인생을 건 이가 마침내 찍어낸 작품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목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역시 노동이 아닌가. 무엇보다 꿈에 가까이 다가서 찍어낸 귀한 노동의 결과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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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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