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이름으로 산 여자... 지명수배 중 또다시 잠적

이준목 2023. 11. 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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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이준목 기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가짜 인생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간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4개의 이름과 2구의 시신을 흔적으로 남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할리우드 영화의 이야기같지만 엄연한 실화다. 과연 그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11월 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완벽한 타인' 편을 통하여 4개의 이름을 가지고 타인의 삶을 훔쳐 살아간 한 여자의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2011년 8월, 30대 회사원 김수찬(가명)씨는 인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게된 김세아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34세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수찬씨는 이상형이었던 김세아씨의 매력에 푹 빠져 교제를 시작했고, 두 사람은 6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을 앞두고 수찬씨는 세아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어렵게 마련한 신혼집 대금 1억 5천만 원을 송금했다 그런데 세아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혼집 대금을 '박은지'라는 친구의 계좌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수찬씨는 예비신부에 대한 신뢰로 의심없이 돈을 송금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않아 김세아씨가 연락이 두절됐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찬씨는 김세아의 행적을 수소문하다가 놀랍게도 신혼집의 등기부등본, 그녀의 가족, 본가 등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수찬 씨는 결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얼마 후 수찬씨는 김세아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일산 경찰서로 달려갔지만, 그곳에서 만난 김세아는 수찬씨가 알고 있던 여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가짜 김세아의 이름, 나이 주소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수찬씨는 '멘붕'에 빠졌다.

상심에 빠져있던 수찬씨는 문득 자신이 돈을 송금했던 계좌의 주인인 박은지의 이름이 떠올랐다. 김세아의 정체는 어쩌면 박은지가 아니었을까, 경찰은 수찬씨의 제보로 박은지라는 이름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사 도중 박은지를 찾는 또 다른 남성이 있다는 사실이 포착했다. 30대 회사원인 안준우(가명)씨라는 인물은, 지난해 여름 나이트클럽에서 박은지를 처음 만났다고 밝혔고, 이는 수찬씨가 김세아를 만났던 시기, 방식과 모든 면에서 흡사했다. 경찰은 준우씨에게 가짜 김세아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녀가 박은지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은지는 준우씨에게는 자신이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는 엄마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수찬씨와의 차이점은 박은지가 준우씨의 회사에 직원 비위를 고발한다는 거짓 제보로 준우씨를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는 것. 이에 경찰은 박은지를 추적한 끝에 그녀를 찾아냈지만 이번에도 신상명세만 같을뿐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김세아에 이어 박은지도 타인의 프로필을 도용한 거짓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진짜 박은지씨에게 그녀의 이름을 사칭한 용의자의 사진을 꺼내보였다. 그러자 박은지씨는 용의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용의자는 진짜 박은지씨가 일하던 가게에 새로 온 종업원이었고 자신의 이름을 '최수진'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김세아, 박은지, 최수진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여자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최수진은 사업 실패로 시댁에 빚을 지고 쫓겨났다고 자신을 소개했으며, 박은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수진을 살뜰하게 챙겨줬다. 그런데 정작 최수진은 박은지의 명의를 도용하여 여러 남성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뒤통수를 쳤던 것이다.

김세아, 박은지, 최수진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이 여성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경찰은 용의자의 행방을 추적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녀를 찾아냈다.

2012년 8월 동두천, 경찰에 폭행 신고를 한 여성이 등장했다. 여성은 내연남에게 폭행을 당해 온몸에 멍이 가득하고 옷도 다 찢긴 상태였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이 신원 확인을 위하여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자, 여성은 주저하며 돌연 신고를 취소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경찰이 이름과 주민번호만이라도 대라고 하자 마지못해 그녀가 밝힌 이름이 바로 박은지였다.

수상함을 느낀 경찰이 여성의 지문 조회를 한 그 결과, 그녀의 정체는 34살로 두 아이의 엄마인 장서희(가명)라는 인물로 밝혀졌다.

장서희는 진짜 박은지씨 집에서 나온 뒤, 내연남 고씨를 만나 동거를 했고, 장씨가 고 씨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일로 두 사람의 싸움이 격해지며 폭행으로까지 이어진 것. 참다못한 장씨가 신고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자기 덜미가 잡히는 자승자박이 되어버렸다.

장씨의 사기행각은 생각보다 더 치밀했다. 장서희는 박은지씨의 이름으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며 위조 신분증까지 만들어 '완벽한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하지만 더 무서운 진실이 아직 남아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그녀는 단순한 사기범만이 아니라 '존속 살해 피의자'로 지명 수배되어 있던 인물로 드러났다. 장씨가 끊임없이 타인의 신분을 훔쳐서 가짜 인생을 살아가야 했던 진짜 이유였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장씨의 친모와 친부는 각각 의문의 화재사고와 추락사고로 5개월 사이에 연이어 사망한다. 공교롭게도 현장에 모두 장씨가 있었다. 초기 조사에서는 장 씨에게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여 그대로 묻힐 뻔했지만, '범죄 사냥꾼' 이대우 형사와 서대문 경찰서 강력팀은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고 사건을 끝까지 추적했다.

그리고 수사팀은 장씨의 친부가 암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고, 사고 보름 전 장씨가 그 보험금의 수익자를 본인으로 변경한 사실을 알아냈다. 장씨는 부모님이 사망한 후 보험사에 보험금을 독촉하기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장씨를 존속 살해 혐의 피의자로 특정하고 조사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결백을 주장하던 장씨는 조사를 받던 도주했고 오랫동안 지명 수배자로 남은 상태였다.

뜻밖의 폭행 사건으로 덜미가 잡힌 장씨. 과연 그녀는 법의 처벌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그녀는 경찰서를 제 발로 걸어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검찰이 장씨의 부모 사망 사건을 보험 살인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기각해버린 것이다. 검찰은 보험 가입과 보험료 납부를 장씨가 한 것이 아니고, 무리한 수익자 변경과 보험금 독촉만으로는 보험 살인의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

'존속 살해 혐의'로 지명 수배까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경찰은 불구속으로 수사를 계속 진행했지만 장씨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경찰은 장씨가 베란다에서 추락했다고 진술한 그녀의 친부가 폐암 투병과 수술로 혼자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친모의 화재사고 역시 현장을 재현한 결과, 장씨의 진술대로라면 화재가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친모의 시신에서 검출된 수면제 졸피뎀 성분을 실제로 처방받은 것은 장씨였다는 진료기록서도 확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결정적 증거, 확실한 물증의 부재를 이유로 경찰이 요청한 구속영장을 또다시 기각했다. 도주의 우려가 있다 할지라도, 범죄 소명이 부족한 피의자를 구속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형사들은 정황증거만으로도 구속되고 유죄까지 받는 경우가 있음에도 장씨 사건에는 왜 이리 기준이 높은 건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장씨는 2012년 10월 방송된 SBS < 궁금한 이야기 Y > 방송에 직접 출연해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는 이유가 가정사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 때문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후로도 포기하지 않고 추가조사를 통해 장씨의 또다른 혐의들을 포착해냈다. 장씨가 가족, 친척들에게도 사기 행각을 벌여 무려 4억 5천만 원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주식에 도박처럼 심하게 빠져있었고 이로 인하여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돈이 생겨도 빚을 갚기는커녕 또 다시 주식에 올인할 정도였고, 친부모가 모두 사망할 무렵에는 빚이 4억 2천만 원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또한 경찰은 장씨의 내연남 고씨에게서 장씨가 부모님을 살해했다며 "내가 했는데"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대질 신문을 통해 두 진술이 일치하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재수사를 마친뒤 장씨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는 최종기소의견을 전하며 사건을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 후 수사팀은 각각 다른 부서로 흩어졌다.

그런데 얼마 후, 수사팀이 가장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피의자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장씨가 검찰 조사를 앞두고 또다시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진작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장씨를 구속수사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다급히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지금까지도 그녀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홍종현 담당 형사는 "수사를 엄청 방대하게 진행했는데 계속 잡았다가 놓치고 잡았다가 놓치고 이런 상황들이 너무 허탈하다. 당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면, 재판하는 과정 중에 충분히 자백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아서 사실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밝혔다. 기소는 중지되었고 현재도 행적이 묘연한 장씨는 지명수배되어 도주 중인 상태다.

과거 해당 사건을 조사했던 이대우 형사는 강력반으로서 마지막 사건이었던 장씨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회한이 컸다. 수사관으로 범인을 놓쳤다는 오점이 될 수 있었던 사건임에도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밝힌 이유다. 수사는 이미 검찰로 넘어갔지만, 이 형사는 조사가 가능한 선에서 장씨의 생활반응을 계속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별다른 단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형사는 장씨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다시 제3자의 명의를 훔쳐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 형사는 "그동안 장씨의 범죄 형태를 봤을 때, 분명히 누군가는 지금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걸 예방도 하고 빨리 조기검거를 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법정에 세워서 정말 진실이 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이 사건은 아직 모든 진실이 모두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은 미제 사건이다. 장씨의 사기죄는 확실하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존속살해범 여부는 아직 단정할수 없다.

하지만 장씨는 수사기관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숨어버렸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그녀로 인하여 억울한 피해를 당했지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부모의 죽음과 관련된 잔혹한 미스터리의 진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장씨 단 한 사람 뿐이다. 그녀가 하루 빨리 체포되어 더 이상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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