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도 행복" 주종혁의 특별한 긍정 바이러스

이선필 2023. 11. 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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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만분의 일초> 배우 주종혁

[이선필 기자]

 영화 <만분의 일초>에서 재우를 연기한 배우 주종혁.
ⓒ BH엔터테인먼트
  
친형을 죽인 사람에게 검도를 알려준 아버지, 이를 바라보는 한 소년(주종혁)의 마음은 복잡했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검도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나간 그는 바로 그 살인자와 마주하게 된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거기에 인생이 달려 있다.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라도 분노의 마음을 놓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억눌러 온 자신의 감정, 그리고 아버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야 했던 소년은 어느새 성인이 됐다.

영화 <만분의 일초>는 검도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일생일대의 갈림길에 놓인 재우라는 캐릭터를 내세운다. 호구를 쓰고 온몸으로 연기해야 하는 중책을 배우 주종혁이 맡았다. 드라마 < D.P.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바로 그 배우다.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영화 속 재우와는 또다른 에너지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캐릭터 이해하기

많은 신예 배우가 그렇듯 주종혁 또한 여러 오디션을 경험했고, 경험해오고 있다. <만분의 일초> 김성환 감독 앞에 섰을 당시 주종혁은 "이 작품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즐거웠다. 꼭 참여하고 싶었다"며 "감독님이 제게 좋아하는 영화를 물으셨는데 그때 마침 보고 있던 <워리어> <예언자>를 말했더니 그게 <만분의 일초> 레퍼런스라고 하셔서 놀랐다"고 전했다.

인연이라면 인연일 것이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작품에서 난관을 만났으니 바로 재우의 감정선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성인이 될 때까지 안고 간 캐릭터의 감정을 즉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감독과 상대 배우(문진승)와 많은 얘길 하며 차근차근 다져나갔다고 한다.

"누구나 상처가 있을 텐데 실제 전 빨리 그것을 잊고 새로운 걸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재우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그런 상처를 바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안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다양할 수 있음을 생각하니 점차 다가갈 수 있었다. 제가 그랬듯 관객분들이 재우에게 공감하길 바라면서 촬영했다.

재우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이해가 안 갔을 것이다. 형을 죽인 사람을 가르치지 않나. 극중 관장님 말처럼 아버지를 한 검도인으로 보라는 말이 영화를 보니까 알겠더라. 검도 호면 자체가 재우의 마음이었다. 가려진 만큼 그 마음이 보이고, 눈동자에 아픔이 보인다. 분노만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아버지의 길을 가고 싶은 꿋꿋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태수에 대한 마음은 더 복잡했을 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잖나."
  
 영화 <만분의 일초> 관련 이미지.
ⓒ 영화진흥위원회
또 하나의 숙제는 감정 표현을 대사가 아닌 몸으로 해야 한다는 것. 주종혁은 "숨소리나 손, 눈빛으로 표현해야 했는데 관객분들이 재우의 마음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며 "한편으로 욕심도 났다"고 꽤 복합적이었던 당시 감흥을 드러냈다.

"갇힌 재우 마음을 표현하는 데 호구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론 좀 더 움직임을 과장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손을 살짝 떠는 걸 표현할 때도 보호장갑이 있으니 액션을 더해야 했다. 시선도 미세하게 움직여야 했다. 클로즈업 상태에서 호면에 제 눈이 보이도록 하는 게 힘들더라.

검도를 이번에 처음 접했다. 두 달 정도 수련했다. 촬영 기간 내내 용인대학교 학생들과 합숙을 했는데, 정말 기세의 스포츠더라. 단시간에 따라할 수 없는 운동이었다. 평소엔 그렇게 순박하고 착한 학생들이 호구를 입고 중단 자세를 취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 합숙하면서 그들에게 앉는 자세, 몸의 움직임 등을 물어보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여러 장면 중 주종혁은 두 번째 대련 장면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재우가 자기 자신과도 싸우고 있음을 상징하는 대목이었다. "정말 지금의 예산에서 나오기 힘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우의 내면과 잘 만나고 있는 게 보였다. 감독님이 잘 만들어주신 덕분"이라 말했다.

행복의 기억들

장편 영화로는 첫 주연작인 만큼 여러 감흥이 들 법했다. "태권도장을 오래 운영한 아버지 생각도 났다"며 그는 과거 유학 시절과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당시를 전했다. 주종혁은 열네 살 무렵 뉴질랜드에서 유학했고, 현지 대학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다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바텐더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홍보 영상에 참여한 뒤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한 회사가 진행한 통합 오디션 대회에서 700대 1 경쟁률을 뚫고 1위를 차지한다. 나름 치열한 상황을 이겨내며 8년 넘게 연기자 생활을 이어온 그는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며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전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왔다. 유학이야 부모님 생각이었지만, 호텔 경영 전공이나 군 제대 후 바텐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순전히 호기심에서였다. 바텐더를 하다가 크루즈 선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웃음). 취미로 현대 무용을 하다가 연기하는 분들을 만나고, 그래서 연기에 호기심이 생기고. 이런 과정에 정말 다 쓰임이 있더라. 과거 유학 경험 덕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한국이 싫어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분의 일초> 출연이 확정됐을 때 아버지께 전화드렸다. 검도 선수를 하게 됐다고. 그리고 훈련하러 갔는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래서 이런 스포츠 영화에 애정이 큰 것 같다. 언젠가는 태권도 연기도 할 날이 오지 않을까. 네 살 때 시작해서, 유학 가서도 했었다. 초등학교 땐 시범단이기도 했고."

이쯤되면 몇 번의 시련도 겪었을 법했다. 오디션 낙방이야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때도 즐거웠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를 해봐야지 결심한 후 카페 일이나 바텐더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쉬는 날에 제작사에 가서 프로필을 내곤 했는데, 나름 용기 내서 '오디션이 있나요?'라고 말 건네는 순간이 즐겁더라. 그렇게 같이 열심히 준비하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같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다. 물론 더 잘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모습을 멋있게 봐주는 칭찬도 좋았다. 친구 오디션에 따라가서 '저도 해보면 안 될까요?' 말해보기도 했다. 그게 사실 실례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나름 도전이었고 즐거운 기억이었다.

오디션장 갔는데 준비한 걸 보이지도 못하고 인사만 한 채 돌아간 적도 있다. 왜 안 봐주지?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런 건 빨리 잊는 편이다. 제 인생에 크게 영향이 있진 않다. 길게 보면 작은 점과 같은 경험이잖나. 당시엔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별 것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잘 되고 안 되고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잖나. 전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큼은 행복하게 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매순간을 즐기려 한다. 제가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만분의 일초>에서 재우를 연기한 배우 주종혁.
ⓒ BH엔터테인먼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 이후를 말하다

이런 마음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때도 이어졌다고 한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시간이 힘들긴 했다지만, 주종혁에게 이 드라마는 하나의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못나 보일 수도 있지만, 연기하는 순간보다 현장에 가서 사람들과 얘기한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온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작품이 잘되어서 제 인생에 앞으로 또 있을까 싶을 큰 관심을 받았는데, 그 순간이 다시 안 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본 적은 없다. 물론 부모님은 <우영우> 이후 제가 대스타가 된 줄 아셨다. 아버지는 선글라스까지 끼고 다니셨거든. 제가 딱 아버지 판박이다(웃음).

<한국이 싫어서>도 제겐 하나의 꿈을 이루게 한 작품이다. 부산영화제에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심지어 개막작이 됐다. <만분의 일초>도 상을 받았다. 매일 감사해도 모자랄 일이다. 사실 제 마음이 건강해야 부모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긍정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기도 하다. 예전에 사주를 봤는데 킹메이커라더라. 주위에 좋은 에너지를 준다고. 믿거나 말거나라지만 그게 또 너무 좋더라."

이런 마음의 바탕 한 편엔 연기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자세 또한 담겨 있어 보였다. 스스로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말과 함께 그는 "매번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잘하는 것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기를 전공한 친구들을 이길 수 없으니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단편 영화 현장 때도 항상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그래서 오디션에 떨어지거나 할 때도 날 왜 알아주지 않지? 생각하기 보단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받는 게 더 좋았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지금도 친하다.

제가 사실 성취욕이 없다. 그냥 이런 순간이 올 때 내가 이렇게까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인터뷰를 한다고? 출연한 영화가 개봉한다고? (웃음) 꿈을 크게 꾼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것을 매순간 잘 해내자는 생각이다. 근데 점점 책임감은 생긴다. 얼마 전에도 배리어프리 영화 홍보대사가 돼서 다녀왔는데 여러 생각이 들더라. 그냥 재밌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 끼칠 수 있는 일도 하는구나 너무 가볍게만 접근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회가 된다면 배리어프리 영화도 참여해보고 싶다."

최근 그는 함께 동고동락한 친한 배우들과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팀에서 베이스를 맡은 그는 내심 영화제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바텐더로 일할 당시 디제잉도 잠깐 배웠을 정도로 음악에 흥미가 컸다. 이후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는 말에 주종혁은 음악에 빗대 답을 내놓았다.

"종종 받는 이 질문에 잘 대답하고 싶다. 딥하우스 장르가 들을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장르잖나.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비슷한 역할이라도 새롭게 보일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욕심이 있다면 보시는 분들이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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