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전문직인가

이준만 2023. 11. 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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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근무했던 학교의 외관. 동료 교사들과 교사의 전문성에 관해 주고받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 이준만
 
교사가 전문직(專門職)인지의 여부를 가지고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동료 교사 대부분은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사실을,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만큼 틀림없는 사실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동료 교사들도 나도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동료 교사들은 '교사가 전문직이 아니면 어떤 직종이 전문직이란 말이냐?' 정도의 이야기를 했고, 나는 '교사가 전문직이라고 불릴 만한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쯤의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전문직'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뒤져 보니,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나와 있다. 또 '교사'는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교사를 전문직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서의 핵심은 '가르친다'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어 교사로 퇴직했으니 국어 교사의 전문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만일 어떤 국어 교사가 언어 교육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마땅히 전문직 또는 전문가라고 불러야 할 터이다. 그런데 그런 교사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다른 사람 끌어들일 것 없이, 내 경우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우선 말하기와 듣기. 고백하건대 35년의 교직생활 동안 국어 시간에 말하기와 듣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한 적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국어 교과에 '화법'이라는 과목이 생겼다. 단독 과목으로 개설된 건 아니다. '화법과 작문'이라는 과목명으로 등장했다. 아무튼 이 과목에서 '말하기'를 가르쳐야 하는데, 이 과목을 가르치면서 '말하기'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화법과 작문'에 관해 10문제 정도가 출제되는데, 이 문제들을 풀 수 있을 정도의 수업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딱히 수업할 필요도 없다. '화법과 작문' 과목을 배우지 않더라도 수능에 나오는 '화법과 작문' 관련한 문제를 푸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말하기와 듣기를 가르치는 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쓰기도 말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문' 과목을 배우지 않아도 수능의 '작문' 관련 문제를 푸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전문성을 발휘해 '쓰기'를 가르쳐야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의 경우, 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 쓰기, 소설 쓰기, 논리적 글쓰기 등 여러 형태의 쓰기 수업을 진행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수업을 쓰기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진행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참고하여, 진행했을 따름이다. 또 이런 쓰기 수업은 학생들도 싫어한다. 수능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화법과 작문 수업 시간에 나 정도의 쓰기 수업을 시도하는 교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말이다.

이제 남은 분야는 읽기이다. 사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국어 수업은 '읽기'에 치중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국어 영역의 핵심이 읽기 능력 테스트이기 때문이다. 수능 국어 영역 50문항 중, 35문항 정도가 읽기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화법과 작문(말하기/듣기, 쓰기) 관련 문항 10개, 문법 관련 문항 5개를 뺀 나머지가 읽기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 물론 현행 수능 국어 영역은 공통 과목과 선택 과목으로 나뉘어 있어, 앞에서 말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나, 2028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과목을 없앴으니 무시해도 괜찮을 성싶다. 

자, 어쨌든 수능에 읽기 관련 문제가 많이 출제되니 일반계 고등학교 국어 수업은 읽기 능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수밖에 없다. 수능에 출제되는 읽기 영역의 제재는 크게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뉜다. 문학 제재는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으로 나뉘고, 비문학 제재는 인문, 사회, 예술, 과학 등을 소재로 하는 글로 나뉜다. 

문학 제재는 문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비문학 제재는 독서라는 과목을 통해 가르치게 되는데, 이를 가르치는 일반계 고등학교 국어 교사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문학 또는 비문학 제재를 잘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수능 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데 중점을 둘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후자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사들이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반계 고등학교 국어 교사들이 수능에 출제되는 문학과 비문학 제재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데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그런 교사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지는 않을 듯하다. 수능 문제해결 능력에 초점을 맞춘 나의 고등학교 3학년 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경우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근무한 지역의 다른 국어 교사들의 수업 시간 광경을 들어보아도 대동소이했다. 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능 문제해결 능력 향상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면, 또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교사들의 그런 전문성을 인정하다면 고등학교 3학년 교실 풍경이 그 지경이 될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 분야에서는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한 수 위라고 학생들이 인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터이다.

'교사는 전문직인가?'라는 물음에 교사들의 대답은 제각각일 터이다. 나의 교직생활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나는 교사는 전문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말하기/듣기'는 거의 가르쳐 본 적이 없으니, '말하기/듣기'에 대한 전문성이 있을 리 없고, 여러 가지 형태의 '쓰기' 수업을 시도하기는 했으나 어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꾸준히 수업을 하지 않았으니 또한 전문성이 있을 리 없다. 또 문학과 비문학 제재를 가지고 '읽기' 수업을 하면서 읽기 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수능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며 대충 시류에 편승했으니 전문성이 있을 턱이 없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만 국한한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교직생활을 하면서 나와 비슷한 교사들을 참 많이 보았다. 물론 전문성을 바탕으로 멋진 수업을 하는 훌륭한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문제다. 더 많은 교사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에 희망의 빛이 보일 것이다. 교육의 질은 절대로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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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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