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던 하나회가 고른 방법, '서울의 봄'이 들춘 민낯
[김준모 기자]
▲ <서울의 봄> 포스터 |
ⓒ 플러스엠 |
역사의 아픔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의 자양분이 되어 꽃을 피우는 역할을 한다. 제1, 2차 세계대전, 식민지 전쟁, 대공황, 근래의 코로나 팬데믹까지 인류는 아픔을 지닌 사건을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켜 그 슬픔을 간직하며 경각심을 잊지 않고자 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는 아픔의 연속이었다. <서울의 봄>은 이런 고통이 끝나고 민주화라는 꽃을 피울 줄 알았던 때, 12.12 군사사태로 인해 신군부 세력이 들어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은 영화다.
▲ <서울의 봄> 스틸컷 |
ⓒ 플러스엠 |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아수라> 등 한국영화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김성수 감독은 학창시절 이 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만큼 이에 대한 경각심이 담긴 시선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총격소리를 들었으나 이것이 반란인 줄 몰랐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 진실을 알고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12.12 군사사태를 다루는 만큼 왜곡된 시선을 경계하고자 두 캐릭터 구성에 공을 들였다.
전두광의 캐릭터는 늙은 악동 기질을 강조했다. 하나회를 이끌며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패거리 정치를 일삼는 저급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와 대립하는 이태신 캐릭터를 원칙을 고수하는 강직한 군인으로 표현하며 상반된 캐릭터를 통한 강한 대립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군인은 모두 같은 편이라는 이태신의 말을 전두광이 반복하게 되는 변화양상을 통해 스토리적인 묘미를 자아낸다.
▲ <서울의 봄> 스틸컷 |
ⓒ 플러스엠 |
전두광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 건 하나회다. 후배들에게는 경제적인 문제로 육사를 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유능함을 지켜 세우고, 선배들에게는 권력에서 밀려나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로 자극을 가한다. 같은 군인이지만 자신들만의 강한 결속력을 지닌 하나회는 그 넓은 인맥을 통해 이태신과의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오랜 병폐로 지목되는 학연, 지연, 혈연이다.
<서울의 봄>이 지닌 정치 스릴러로의 매력은 끊임없는 판세의 변화에 있다. 명분이 없었던 전두광과 하나회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이 학연, 지연, 혈연을 이용해 각 부대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출동하지 못하게 만들면서 상대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부대마다 스파이가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이 상황은 작품이 주는 먹먹한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답답한 순간들을 장르적인 매력으로 승화한다.
▲ <서울의 봄> 스틸컷 |
ⓒ 플러스엠 |
병법서 <오자병법>에는 유능한 적보다 무능한 아군 간부들이 더 무섭다는 문구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군대 내에서 뼈 있는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처럼 군 상층부의 무능력함은 상황을 최악으로 이끌어 간다. 역사가 스포가 되는 작품의 특성상 이 하나하나의 순간들은 관객이 그 결말을 알기에 더욱 큰 안타까움과 가슴 속 응어지리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이끌어 낸다.
<서울의 봄>은 올 하반기 텐트폴 영화로 받고 있는 기대치를 충족시킬 만큼의 위력을 지닌 작품이다. 황정민과 정우성을 비롯해 적재적소에 이뤄진 캐스팅의 빛나는 앙상블과 역사를 흥미롭게 각색하면서 오락적인 측면을 게을리 하지 않은 영민함을 보여준다. 클라이맥스에서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건 물론, 두 주인공의 상반된 결말이 주는 간극으로 감정적인 깊이도 더한다. 여기에 두뇌싸움을 쉽게 풀어냈다는 점은 상업영화가 지닌 미덕으로 볼 수 있다.
고증의 측면에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사건이 가득했던 12.12 군사사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그 주동자였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 시점에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간 군부독재를 다룬 작품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 박정희 시대를 주된 배경으로 한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저변을 넓히는 이 시도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 기대가 된다. 동시에 '서울의 봄'이 극장가의 '봄'을 되찾아 주는 성공의 역사를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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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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